[전영기의 과유불급] 잼버리 사태보다 무서운 ‘국정원 간첩수사’ 금지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1 08: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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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국가정보원이 62년간 수행해 왔던 업무 가운데 ‘간첩(대공 용의자) 수사권’이 올해 말 폐지된다. 우리나라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릴 것이다. 9월 정기국회가 열 일 제쳐놓고 이 안보 공백을 메우는 문제를 논의해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야 간 내용 합의가 어려우면 최소한 수사권 종료의 발효 시점만이라도 초당적인 해법이 나올 때까지 한두 해 미뤄줬으면 한다. ‘간첩 잡는 국정원’이 내년 1월1일부터 한순간에 기능을 잃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 실질적인 위협은 전체 국민에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 원훈석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교체됐다. ⓒ국정원
윤석열 정부 들어 국정원 원훈석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교체됐다. ⓒ국정원

 

2024년부터…9월 국회에서 발효를 1~2년 미뤄줄 수 없을까

혹자는 경찰도 대공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 있지만 경찰은 치안 유지와 형사사건 수사가 전공인 기관이다. 경찰은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이 남한 간첩을 접선해 암호자재(暗號資材·암호문 잠금장치로 통상 컴퓨터 메모리 카드 안에 내장됨)를 건네주는 것을 추적한 경험이 없다. 국정원은 올 초 간첩 혐의자 석권호 민주노총 조직부장(52)의 사무실에서 암호자재를 압수해 확률적으로 슈퍼컴퓨터를 1만 년 돌렸을 때 풀 수 있는 것을 한 달 반 만에 해결했다고 한다. 경험이 풍부한 국정원 전문요원의 밤낮 없는 노력과 감각에다 행운이 따라줘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런 암묵지(暗黙知)를 양도하는 데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그때 암호 해독의 키워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민주노총 중앙집행부를 자주세력이 장악하지 못하면 (조선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의 의도에 맞게 끌고 가는 데 커다란 난관이 조성될 수 있음” 같은 북한 지령문은 아무도 해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경찰이 한국의 안보 수사를 국정원 없이 홀로 전담할 만큼 미덥지 않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 국정원의 인권침해 사례들이 간첩수사권 삭제의 입법 배경이 된 점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건 심했다. 이대로 내년을 맞게 되면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지지자들도 국민 전체에 닥칠 안보 붕괴의 피해를 균등하게 입게 된다. 안보 위험의 크기는 잼버리 대회를 무책임하게 새만금에 유치해 놓고 수년 동안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벌어진 최근 참사와는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민주당 사상 최악의 입법, 결자해지 자세로 풀어주길

국정원 인권침해에 대한 해법으로는 미국 FBI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미 FBI에서도 오랜동안 고질적인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은 대안으로 FBI 감시 책임을 법부부 장관과 국가정보장(DNI·18개 정보기관의 컨트롤타워) 두 곳에 나눠 맡겼다. 특히 법무부 장관은 촘촘하게 짜인 ‘국내정보수사 가이드라인’으로 FBI의 인권 문제를 예방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예에서 힌트를 얻는다면 국정원의 인권이나 준법감시 임무를 법무부 장관에게 부여하고 간첩수사권은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국정원법 개정을 토론해볼 만하다고 본다. 말하자면 국정원의 머리를 두 개 두자는 것이다.

국정원에서 2024년부터 간첩수사권을 삭제하는 ‘국정원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2020년 11월이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은 그해 4월 총선에서 180석 가까이 의석을 획득해 힘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하는 학폭 일진 비슷했다. 정권의 절정기였다. 그들은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 연설)를 표결로 간단히 중지시키고 국정원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국가정보기관의 첫 번째 존재 이유인 ‘적국 스파이 잡기’를 적절한 대안 마련 없이 잡초 뽑듯 삭제해 버린 국정원법은 필자가 보기엔 안보를 도박한 민주당 사상 최악의 입법이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민주당이 풀어주길 소망할 뿐이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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