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LH를 어찌할꼬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2 11:05
  • 호수 1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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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인력 감축이나 조직 개편으로는 혁신 불가능
이참에 경쟁 없는 공공부문의 한계 다시 살펴야 

지난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이 붕괴됐다. LH는 곧바로 검단 아파트처럼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아파트의 안전점검에 나섰다. 3개월간의 조사를 거친 후 91개 아파트 단지 가운데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5곳은 빠진 철근이 적고 안전에도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조사 대상에서 아예 11개 단지를 빼먹은 사실도 드러났다. 과정은 황당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기도 화성시의 LH 단지 감리현장 점검에 나섰다가 무량판 방식이 아닌 줄 알았던 이 단지 주차장도 같은 방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8월11일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사장이 인사하고 있다. ⓒ
8월11일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사장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 혁신’ 공염불

이렇듯 LH 발주 공사의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모든 단계에서 무사안일과 비리가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철근이 빠진 15개 단지 공사 참여 업체 중에서 설계 9개와 감리 11개 업체가 LH 출신 인사들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원희룡 장관은 LH에 전관 업체와의 용역계약 절차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8월11일 대통령실은 밤 9시가 넘은 시점에 건설 카르텔 혁파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자력으로 조직 내부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전체 임원의 사직서를 받아 상임이사 4명의 사표는 바로 처리했으며 자신의 거취도 임명권자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관련자에 대한 징계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취업 제한의 엄격한 적용을 포함한 내부 통제 강화는 당연하다. LH가 자체적으로 혁신할 능력은 없다. 자리에서 물러난 임원들도 사실상 임기가 이미 끝났거나 임기 만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정부 차원의 혁신 작업이 불가피하다. 조직의 권한과 규모 축소가 논의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토지와 주택 사업의 분리, 비핵심 기능의 분산, 공공택지 입지조사 업무의 국토교통부 환원 등의 대책이 거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두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들이다. 정확하게 2021년 6월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 이후 나왔던 말과 같다. 3기 신도시 땅 투기에 LH 임직원들이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당시 정부는 LH에 대해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 혁신”을 선언했다. 강력한 통제장치 구축을 통한 전관예우 근절도 약속했었다. 발표된 개혁안은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력은 8% 줄어드는 데 그쳤고, 기능 분할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로 옮겨진 것은 관련자 처벌과 임직원 부동산 보유 내역 의무공개 정도가 전부다. 전관예우 근절도 실효가 없었다. 2년 동안 전관 특혜 근절책으로 취업이 제한됐던 사례는 단 한 건뿐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조금은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예산과 인력을 감축하고 조직의 군살을 빼겠다는 건 필요한 개혁의 극히 일부다. 인력 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은 흔히 혁신방안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감원 자체는 혁신이 아니다. 현실적으로는 대대적인 직원 감축도 어렵다. 업무량은 각종 주택사업으로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장기적으로 공공기관의 인력과 업무의 질을 떨어뜨리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고 LH를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해체하더라도 다른 기관이 LH의 현재 업무를 맡으면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2021년에도 조직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LH는 이명박 정부 공기업 선진화 정책의 하나로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따라 2009년 10월1일 당시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병하면서 출범했다. 업무 중복을 해소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목표였다. 민간의 토지를 수용해 택지나 주택으로 개발한 후, 이를 민간에 다시 판매해 이익을 얻는 것이 업무의 기본 골격이다. LH가 지금까지 국내에 지은 공공주택은 임대 167만 채, 분양 129만 채 등 모두 296만 채다. 전국 주택 수 2200만 채 중 13.5%다. 국민 20명 중 1명꼴인 250만 명이 LH의 공공임대주택에 산다.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LH의 역할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270만 호 주택 공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42만 가구가 공공택지 개발로 공급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주거체제에서 국가가 담당하는 개발의 역할은 주로 LH를 통해 실행된다. 공공부문이 기득권 카르텔 혁신의 대상인 것은 물론이다. 건설 카르텔은 우리 사회에 얽힌 뿌리 깊은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급한 불은 우선 꺼야겠다. 제대로만 만들면 자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무량판 구조가 공포감을 키워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LH 직원들과 퇴직자들, 이들이 취업한 기업들과의 유착 관계는 끊어야 한다.

 

기득권 카르텔은 LH만의 문제일까

사실 통합 조직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계파가 존재하고 자리 나눠 먹기가 일상적이 되며 부문 간의 칸막이는 당연해진다. 이런 조직 환경에서 기강 문란이나 도덕적 해이는 자연스럽다. 모두 혁신의 대상이다. 그러나 LH의 상황을 조직의 결함으로만 보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 전관예우는 LH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정부 부처에 있고 법원과 검찰에도 있다. 불법행위에는 당연히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부패는 위험스럽지만 남는 장사가 가능해 보일 때 발생한다. 부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감시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득권 집단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LH 사태와 같은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는 경쟁이 없는 공공부문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지대추구(Rent-seeking)는 기득권을 이용해 자기 몫 이상을 챙기는 행위다. 기득권 집단의 지대추구는 사회적 불공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저해한다. 문제의 본질은 언제나 그렇듯이 구조다. 제도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은 공공기관은 시장에 의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부문 개혁은 효율성 제고와 함께 정책 추진 과정의 투명성 확보로 이뤄져야 한다. 높아진 투명성은 부패를 방지하고 범법행위의 유인을 줄인다. 투명성 제고는 스스로 손목을 묶는 일이다. 결국, 특권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여야 한다. 혁신의 방향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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