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나가당 성타 대종사’ 열반적정(涅槃漃靜)에 들다
  • 이승표 영남본부 기자 (sisa540@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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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겨울 달이 집 앞 연못에 떨어져 출렁이도다"
이철우 경북 지사·주낙영 경주 시장 "경의와 극락왕생" 조의

 

나가당 성타 대종사ⓒ 불국사 제공
나가당 성타 대종사 ⓒ 불국사 제공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경주 불국사의 회주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인 나가당 성타 대종사(那伽堂 性陀 大宗師)가 8월19일 오전 영결식과 다비장(茶毘場)을 끝으로 불가를 하직하며 열반적정(涅槃漃靜)에 들었다.

지난 15일 법납 72년 세수 83세로 불국사 정혜료에서 원적에 드신 성타 대종사는 ‘如是來 如是去 批生死 不可言’(이와 같이 왔다가 이와 같이 가는 구나 이것이 나고 죽음이니 가히 말로해서 무엇 하리)란 짧은 열반게송(涅槃偈頌)만 함께 했던 승려와 중생들에게 남기고 부처님이 계시는 도솔천으로 홀연히 떠났다.

이날 불국사 무설전에서 운성스님과 성상스님의 영결법요와 불국사 관장인 종상 큰스님의 헌향, 신도회의 헌화에 이은 법주사 조실 지명스님의 분향과 운암스님의 행장소개로 이어진 영결식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자광스님과 총무원장인 진우스님, 중앙종회 의장인 주경스님과 금오문도 자숙대표인 함주 월복 대종사, 불국사 주지 종천 큰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말사의 스님들과 신도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스님의 극락왕생을 축원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스님과 신도들이 만장을 들고 다비장으로 가고 있는 모습ⓒ시사저널 이승표 기자 

영결식에서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자광 큰스님은 “성타 대종사께서는 은사이신 월산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늘 상대를 배려하고 하심(下心)하는 삶을 실천하셨으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는 수십 년 동안 도움의 손길을 주저하지 않는 등 남몰래 나눔과 배려의 삶을 즐기시고 자애했다”며  불가에서 쌓은 스님의 숨은 공덕을 높이 받들었다.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도“나가당 성타 대종사이시여! 필경에 진리의 일구는 어떠하겠습니까. 마침내 찬 겨울 달이 집 앞 연못에 떨어져 출렁이도다”라는 법어로 스님께서 진리의 삼매락을 누리시길 축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큰스님은 ”설사 잠잠해진 푸른 파도라 해도 감포 바다를 떠나지 않았으며 사라지는 흰 구름 역시 때가 되면 토함산으로 다시 찾아 올 것”이라며 대종사의 열반을 비통해하면서 추도했다.

조계종 중앙총회 의장인 주경 큰스님도 조사에서 “원력보살로 불국정토를 다시 일으키신 주인공이자 항상 천진한 웃음을 잃지 않은 자비도인(慈悲道人)으로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다 내주신 참 스승이셨다”며 포교와 보시로 평생을 살다 열반한 스님의 생애를 다시금 새겼다.

동국대학교 이사장인 돈관 큰스님은 “이제 대종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후학을 위해 길을 찾고 청년 대학생이 세상의 모범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돌보는 것으로 삼겠다”며 스님의 불제자 양성과 포교를 위한 헌신에 감사했다.

스님과 신도들이 성타 대성사의 법구가 안치된 연화대에 점화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승표 기자

조사에 나선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50년이 넘도록 불국사를 지키며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우리 불교문화의 우수함을 알리고자 ‘불국사 박물과 개관’에 원력을 세워 후대에 큰 보물을 남기셨다”며 불교문화발전에 각별히 애쓴 스님의 공적에 경의를 표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성타 대종사가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한 공적을 언급하면서 “한없는 존경과 그리움으로 향을 사르며 26만 경주시민의 이름으로 합장을 올려 극락왕생을 빕니다"고 애도와 조의를 표했다.

영결식이 끝나자 성타 대종사의 법구는 불국사 뒤편에 자리한 다비장으로 옮겨진 후 소박하게 마련된 연화대에서 정진을 함께 했던 불제자들과 중생들의 축원을 받으며 이승에서의 고된 삶을 모두 태우고 극락세계로 인도됐다. 이번 불국사 다비장에서의 다비식은 1997년 9월 월산 대종사의 다비식 이후 두 번째로 알려졌다. 

성타 대종사는 1941년 경남 울주군에서 태어나 1952년 불국사에서 월산 큰스님을 은사로 동진(참 동자승)에 출가했다. 그해 울산 학성선원에서 금오 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불교에 귀의한 스님이 지켜야 할 10가지 규율)를, 1958년 가야산 범어사에서 동산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남성 출가자인 비구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지했다.

대성사의 법구가 모셔진 연화대에서 연기가 일어 하늘을 향하자 스님과 신도들이  극락왕생을 축원하며 합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승표 기자

1961년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에서 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후 법주사 강원의 강사를 역임한 스님은 후학 양성에 나섰다. 1974년엔 은사이신 월산 큰스님을 모시고 사형사제들과 함께 지극한 정성과 절약으로 솔선수범하면서 당시 살림이 어려웠던 불국사를 중흥케 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1982년에는 조계종 교무부장을 맡아 종단의 교육 불사에도 기여하면서 무려 6차례나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1998년 스님께서 출가를 했던 불국사 주지에 임명되자 종단의 호계원장까지 맡아 종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수호 하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특히 약자를 보듬는 사회운동과 조계종 초대 환경위원장을 비롯한 대자연환경보존회장 등 환경 NGO 이사장으로도 열정적인 활동을 했다.

또한 경주경실련 창립을 주도하고 국책사업이었던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역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남다른 공적을 남겼다. 특히 스님은 바쁜 승가의 일정 속에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금오집’과 ‘자연과 나', 마음 멈춘 곳에 행복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백암사상’과 경허의 선사상‘ 등 다수의 논문도 집필했다. 지난 2022년 11월에는 70년 수행자의 길을 담은 회고록 ’노을은 달을 벗 삼아‘ 출간을 끝으로 스님이 걸어 온 삶을 총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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