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과 광기의 릴레이 질주, 넷플릭스 《마스크걸》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6 15: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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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 등 사회적 혐오 기제 전면에 내세워 
원작 웹툰과 높은 싱크로율…차별화 고심한 흔적도

‘끝내주게 못생기고 끝내주게 몸매 좋은 여자, 김모미’. 웹툰 《마스크걸》의 공식 소개글이다. 꽤나 직설적이지만 이보다 더 주인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도 없다. 무대에서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을 듣는 게 좋아 연예인을 꿈꿨던 소녀는,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점점 못생겨지는 외모 때문에 좌절한다. 그래서 택한 마스크는 어느덧 그를 뜻하지 않은 인생의 경로로 이끈다. 동명 웹툰의 각색을 거쳐 넷플릭스 오리지널 7부작 시리즈로 탄생한 《마스크걸》은 원작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가져온다.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잔혹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조준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흥미로운 문제작’을 기꺼이 자처한다.

아름다움은 돈이 된다. 비약이라고 느껴진다면 현실을 보자. 연예인들의 완벽한 외모는 인기의 가장 쉬운 척도이자, 동경과 찬사의 대상이다. 재능의 유무는 그다음 문제다. 비연예인이었던 누군가가 출중한 외모 덕에 하루아침에 유명해지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상은 이들에게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 같은 이름을 붙여준다. 심지어 범죄자가 근사한 외모를 지닌 경우 머그샷이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인터넷 개인방송은 훨씬 더 적나라한 평가와 보상의 세계다. 외모를 무기 삼아 실시간으로 돈을 버는 것은 이제 일부 BJ의 일탈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문화다. 그러니까, 새삼스럽게도 이게 다 외모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의 한 장면 ⓒ넷플릭스

뜻하지 않은 살인, 악연의 세월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 밤에는 인터넷 방송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몸매를 뽐내며 춤을 추는 《마스크걸》 속 김모미의 캐릭터는 요즘 같은 시대 배경 안에서 충분한 현실성을 가진다. 이 정도의 이중생활은 흔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마스크걸》은 극의 진행을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모미를 둘러싼 상황들은 예측 불가능한 선을 그리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간다. 그 중심에 살인이 있다. 《마스크걸》은 단기간의 관찰이 아닌, 의도치 않은 살인 이후 신분을 바꾸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김모미의 인생 궤도를 긴 시간에 걸쳐 추적한다. 그 안에서 모미는 성형수술을 감행한 후 ‘쇼걸’ 아름이로, 이후에는 ‘죄수 번호 1047’로 불리는 인생을 산다. 이한별, 나나, 고현정까지 각기 다른 세 배우가 모미를 연기한 배경이다.

모미의 시점으로만 진행되는 원작과는 달리, 《마스크걸》은 중심인물이 계속 바뀌는 다중 캐릭터 플롯을 택했다. 김용훈 감독은 피 묻은 돈가방을 둘러싼 인물 군상들의 사연을 그린 스릴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에서 같은 포맷을 선보인 바 있다.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나뉘는 게 아니라, 누구의 관점을 경유하느냐에 따라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이 조금씩 달리 보이는 효과가 극대화된다. 1화 ‘김모미’를 시작으로 7화까지 《마스크걸》의 각 에피소드에는 그 회차의 중심이 되는 인물의 이름이 부제로 붙는다. 마스크걸의 광팬이자 음울한 성적 욕망을 지닌 주오남(안재홍), 행방불명된 아들 오남을 찾기 위해 모미를 집착적으로 쫓는 삶을 살게 된 김경자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저마다의 모양으로 뒤틀린 내면의 욕망이다.

《마스크걸》은 모든 인물에게 양면성을 부여한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길 원했던 모미는 범죄를 저지르고, 마스크걸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했던 오남은 그릇된 방식으로 모미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김경자는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어머니지만, 동시에 자신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않은 아들을 부끄러워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 결과 종교적 믿음과 도덕적 신념을 앞서는 맹목적 추격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자 구원의 동아줄이 된다. 크게 보면 《마스크걸》은 만날 일 없던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얽힌 채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의 삶을 끝없이 추락시키는 피폐한 대결이기도 하다. 잘못된 사회적 인식의 피해자이자 범죄의 가해자로 얽힌 이들을 사랑할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아니면 연민할 것인가. 《마스크걸》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입장은 깔끔하게 한 방향으로 수렴될 수 없다.

애초에 《마스크걸》은 유쾌한 공감보다는 불편함에 서는 쪽을 택한다. 여러 사회적 혐오 기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비롯해 왜곡된 성(性) 의식, 자식을 향한 비뚤어진 사랑, 부모의 죄를 어린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비윤리 등 인물들을 둘러싼 상황은 모두 쉽지 않은 배경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 동시대에 만연한 풍경이기도 하다. 《마스크걸》의 연출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보다는 메시지들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방식과, 일종의 만화적 판타지를 허용하는 방식 모두를 저글링하듯 유연하게 활용한다. 속도감과 유머는 작품의 좋은 무기다.

ⓒ넷플릭스

자신만의 사회적 마스크를 쓴 모두의 이야기

원작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그 이름, 원한의 귀신들과 함께 구천을 떠도는 운명’으로 모미의 선택들을 단죄하는 듯한 결말을 택한 것에 반해, 《마스크걸》은 조금은 다른 선택지로 가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을 남긴다. 모미를 비롯한 인물들은 위악적으로 타고난 성정인 아닌 상황에 따른 선택들에 의해 악인 혹은 그림자가 된 사람들이다. 4화의 중심인물인 김춘애(한재이)가 모미의 연적에 가까웠던 원작에서 벗어나 쌍둥이 같은 의미의 조력자로 각색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마스크는 김모미가 성형수술을 한 이후부터 필요성이 사라진 물건이지만, 그 의미가 계속 이어진다. 물리적으로 썼던 마스크가 사라진 ‘모미들’의 얼굴에는 본연의 모습이 아닌 정체성이 자꾸만 덧대어진다. ‘마스크걸’은 인생에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혹은 사회가 호명하는 모습을 위해 자신만의 마스크를 쓰는 모든 이를 대변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일단 1화를 한번 재생하면 7화까지 앉은자리에서 정주행으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은 시리즈다. 8할은 연기의 공이다. 배우들이 흡사 바통을 서로 넘기며 계주를 하듯 ‘연기 보는 맛’을 선사한다. 각기 다른 시기를 연기한 세 명의 모미가 각자의 매력으로 나뉘는 사이, 어쩔 수 없이 분절되는 이야기의 전체를 하나로 꿰매듯이 통과하며 끌고 가는 실질적 힘은 김경자 역의 염혜란에게서 나온다. 그가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에 압도당하지 않기란 어렵다. 소심한 것을 넘어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 인터넷상에서는 비뚤어진 욕망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주오남의 이중적 태도를 섬뜩하게 연기해 낸 안재홍의 변신도 눈길을 끈다.

 

■기적에 가까운 캐스팅

성형수술을 감행하기 전 모미를 연기한 이한별은 《마스크걸》이 찾아낸 신예다. 그에게는 이 작품이 데뷔작으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캐스팅 공개 후 원작 그림체와의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았다. 제작진이 1000명에 가까운 배우를 검토하던 중, 한 모델 에이전시 컴퓨터 모니터에 우연히 띄워져 있던 사진 한 장이 계기가 되어 바로 캐스팅으로 이어진 사례다. 알고 보니 이한별은 일주일 전쯤 해당 에이전시에 프로필을 접수하고 간 상황이었다고. 때로 캐스팅은 운명이자 기적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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