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수 우위’로 기울어진 한국 정치 지형 [최병천의 인사이트]
  •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5 13: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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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박근혜 탄핵’ 분기점으로 ‘보수→진보’ 조정
흩어진 촛불 효과, 진보에 합류했던 유권자들 보수로 원대 복귀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 정치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유시민 작가로 기억한다.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한창 플레이어로 활동할 때 했던 발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보수 우위’의 정치체제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축구 경기를 하는데 운동장이 보수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러면 보수는 골 넣기가 편하다. 진보는 골 넣기가 힘들다. 애초에 불리한 게임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부분을 보수가 집권했다. 민주당 계열은 1960년 4·19 직후 장면 정부가 약 1년간 집권했다. 1960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쭉 보수가 집권했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승리했다. 5·16 이후 민주화 세력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였다.

국민의힘 이준석 상임선거대책위원장, 권성동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 지도부가 2022년 6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6·1재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환호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진보 집권’을 이룬 ‘3개의 기적’

김대중의 승리는 사실상 기적이었다. 실제 ‘3개의 기적’ 덕에 가능했다. 첫 번째 기적은 1997년 11월 외환위기였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외환위기가 터졌다. 정권교체 에너지가 커졌다. 두 번째 기적은 DJP연합이었다. 김대중(DJ)과 김종필(JP)의 정치연합이다. 김대중은 박정희 독재와 맞서 싸운 야당의 지도자다. 김종필은 박정희 대통령과 5·16 군사 쿠데타를 함께 일으켰던 정치적 동반자다. 그런데 둘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연합을 했다. 정치연합은 한쪽에서 원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둘의 ‘합(合)’이 맞아야만 가능하다. 기적이었다. 

세 번째 기적은 이인제의 독자 출마였다. 1997년 김대중의 경쟁자는 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이회창이었다. 이인제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했다. 패배를 수긍하지 않고 대선에 독자 출마했다. 지금은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 경선 패배자는 본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이인제 방지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는 19.2%를 받았다. 약 490만 표다. 

대선 당일이었던 1997년 12월18일 김대중과 이회창의 개표 방송은 밤늦게까지 엎치락뒤치락했다. 자정을 넘긴 12월19일 새벽 2시경이 돼서야 김대중의 당선이 확정됐다. 최종 격차는 불과 1.5%포인트였다. 3개의 기적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 세력이 집권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상징하는 태블릿PC가 JTBC를 통해 보도된 날짜는 2016년 10월24일이다. 이후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론을 악화시키는 대응을 했다. 2016년 12월19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2017년 3월9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박 대통령 탄핵이 인용됐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에서 무난하게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2020년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2018년 지방선거 압승 이후 진보언론을 중심으로 ‘유권자 재정렬(Realignment)’ 담론이 퍼졌다. 유권자 재정렬이란, 유권자의 투표행태와 정치지형이 구조적으로 뒤바뀌는 경우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운동장이 진보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해당한다. 보수 우위 정치가 끝나고, 진보 우위 정치가 등장한 것 자체는 명백한 팩트였다. 문제는 진보 우위 정치구도가 ‘구조적인’ 변화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변화인지가 핵심 포인트였다.

2021년 4·7 재보선이 치러졌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새로 뽑는 선거였다. 국민의힘은 두 선거 모두를 압승했다. 2022년 3·9 대선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승리했다. 2022년 6·1 지방선거도 국민의힘이 무난하게 승리했다. ‘운동장’이 진보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유권자 재정렬 담론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관건은 최근 상황이다.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평균에 비해 낮다. 정당 지지율은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오차범위 바깥에서 앞서고 있다. 그럼 운동장은 어떻게 된 것일까? 

탄핵 이전으로 돌아간 보수 우위 구도

《표1》은 2016년 1분기부터 올해 3분기인 최근까지 진보와 보수의 응답자 변화다. 2016년 3분기까지 보수가 우위였다. 이 흐름이 2016년 4분기에 진보 응답자가 많아지며 역전된다. 최순실 태블릿PC가 공개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는 시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2017년 1분기 이후 진보 응답자는 경향적으로 줄어든다. 2021년 3분기를 기점으로는 다시 역전된다. 그렇게 올해 3분기까지 보수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 

《표2》는 《표1》과 같은 데이터다. 다만 진보에서 보수를 차감하고 그 격차를 정리했다. 2016년 1분기의 경우, 진보 평균은 231.4명이었다. 보수 평균은 311.3명이었다. 진보에서 보수를 빼면 –79.9명이다. 즉, 보수가 79.9명 더 많다. 2016년 2분기의 경우 –36.3명이다. 보수가 36.3명 더 많다. 

가장 최근인 올해 3분기를 보자. 진보 평균은 262.5명, 보수 평균은 289.8명이다. 격차는 –27.3명이다. 보수가 27.3명 더 많다. 2016년 12월9월 박 대통령 탄핵이 통과된 이후부터 2021년 4·7 재보선이 있을 때까지 진보 우위 시대가 작동했다. 지금은 다 사라졌다. 다시 보수 우위 시대가 됐다. ‘탄핵 이전’으로 돌아갔다. 민주당 입장에서 촛불 혁명의 달콤한 꿈은 사라졌다. 큰 마음을 먹고 진보에 합류했던 사람들은 다시 ‘보수’로 원대복귀했다. 

정당 지지율과 구분되는 진보·보수 이념성향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수면 밑에 잠재된 여론’을 말해 준다. 정당 지지율은 사건에 따라 일희일비가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념성향은 ‘내 마음속 정체성’이다. 내년 4월에 총선이 있다. 민주당은 보수 우위 정치구도로 재편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만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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