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팬데믹은? “조류 인플루엔자·코로나바이러스 유력”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2 12:05
  • 호수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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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간 전파 강한 인플루엔자 돌연변이 출현하면 ‘재앙’
코로나 역시 코로나19 변이나 새로운 종 나올 수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은 최초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이 다가올 팬데믹을 경고하며 내놓은 메시지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동물 서식지를 침범한 인간은 박쥐·모기·진드기 같은 감염병 매개체와 접촉할 기회가 늘어났다. 그 결과, 우리는 코로나19처럼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 시대에 살고 있다. 감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은 ‘감염병의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고 진단했고, 영국의학저널(BMJ)은 ‘다음 팬데믹은 무엇일까?’라는 특별기고문까지 발표했다. 

특정 감염병이 팬데믹이 되려면 3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인간에게 면역이 없는 신종이어야 한다. 또 많은 중증·사망 피해를 줄 만큼 병독성이 강해야 하며, 사람 간 전파력도 커야 한다. 코로나19처럼 이들 조건을 갖춘 감염병은 언제든 팬데믹이 될 수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팬데믹 3가지 조건과 과거의 경험을 종합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즉 변이를 잘하는 RNA 바이러스이면서 전파력이 센 호흡기 바이러스가 다음 팬데믹이 될 것인데, 인플루엔자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력하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호주 대륙만 빼고 세계 모든 대륙에 퍼진 상태여서 산발적으로 매년 발병한다. 최근 미국에서 보고된, 사람으로 옮아간 돼지 인플루엔자도 팬데믹 후보다. 이들 인플루엔자는 사람 간 전파력이 약해 팬데믹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나 언젠가 그 능력을 갖춘 돌연변이가 출현하면 재앙 같은 팬데믹이 올 수 있다. 또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스·메르스로 꾸준히 출현하다가 결국 코로나19로 팬데믹이 됐다. 새로운 종이 나오든 코로나19에 큰 변이가 생기든 ‘제2의 팬데믹’ 가능성은 짙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10일 서울 신돌림동에 설치된 선별진료소는 검사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사저널 박정훈

매년 변이하는 인플루엔자·코로나바이러스

인플루엔자는 지난 세기 동안 매년 독감을 일으켰고 4차례(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이 됐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를 다음 수십 년 동안 팬데믹을 일으킬 위험성이 가장 큰 위협 요소로 예측한다. 잠복기가 일주일 미만으로 짧고 전파 속도가 빠르며 많은 사망을 초래한다. 특히 조류 인플루엔자가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야생 물새에서 유래한 조류 인플루엔자는 본래 조류에서만 유행했으나, 어느 날 닭·오리 같은 가금류와 돼지 같은 포유류를 거쳐 변이한 후 사람에게 옮아가는 방법을 찾았다. 아직 사람 간 전파력이 약해 팬데믹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년 발병하므로 언젠가는 사람 간 전파력이 센 돌연변이가 출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H5N1과 H7N9를 주시하고 있다. H5N1은 1997~2019년 861명이 감염돼 455명이 사망해 치명률 53%를 기록했고, 치명률 40%인 H7N9는 2013년 가족 간 감염이 의심되는 사례가 보고됐다. 

가벼운 증상을 일으키는 낮은 등급의 병원체로 간주됐던 코로나바이러스는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간에게 경고를 보냈다. 이들 모두 20개국 이상에서 수천 명을 감염시켰고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았다. 사스와 메르스는 사람 간 전파력이 강하지 않아 팬데믹이 되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러다가 사람 간 전파력이 빠른 새로운 돌연변이가 2019년 출현해 3년 이상 코로나19 팬데믹을 유지했다. 현재도 수백 종의 코로나바이러스가 돼지·박쥐 등 동물에서 유행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야생동물 시장에서 판매하는 한 농장의 동물 80%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항체를 확인한 바 있다. 이들 동물 속에서 어떤 변이가 출현할지 모른다.

 

치명률 최대 90%인 출혈열, 인간 사회 위협

출혈열은 출혈과 고열을 동반하는 감염병이다. 출혈열은 치명률이 매우 높아 팬데믹이 되면 인류에 재앙이 된다. 사실 치명률이 너무 높으면 전파하기 전에 숙주가 죽기 때문에 전파력은 약하다. 따라서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발병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간 사회에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런 출혈열로 니파·에볼라·라사·마버그·황열·크림-콩고출혈열·치쿤구니야·리프트 계곡열이 꼽힌다. 대부분 백신과 치료제가 없다. 

니파(Nipah) 바이러스는 1999년 말레이시아 양돈 농가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거의 매년 유행한다. 2018년 인도에서 19명이 감염돼 17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이 40~70%로 높다. 유행 지역은 방글라데시·인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 등이며, 특히 방글라데시와 인도 국경에는 니파가 수시로 발병하는 이른바 ‘니파 벨트’가 있다. 자연계 니파 숙주는 과일박쥐다. 박쥐는 사람·동물과 빈번히 접촉하므로 사람 간 전파력이 강한 돌연변이가 출현할 수 있다. 그러면 한 사람이 12~18명을 감염시킬 것으로 조사됐다. 니파 발병은 돼지·과일박쥐와 관련이 있으므로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에 가축·야생동물 감시 시스템 구축을 권고한다. 

치명률이 최고 90%인 에볼라(Ebola)는 1976년 콩고 에볼라강 근처에서 발견됐다. 최근 대규모 유행은 2014~16년 기니·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에서 발생했는데 2만8616명이 감염됐고 1만1310명이 사망했다. 치명률이 너무 높은 탓에 감염 초기에 환자가 무력해지거나 사망하므로 전파할 기회가 적다. 또 2020년 유럽과 미국이 승인한 백신도 있어 팬데믹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자연계 숙주가 과일박쥐여서 어떤 돌연변이가 출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 간에는 주로 체액으로 전파되는데, 드물지만 호흡기 비말로 전파된 사례도 있다. 만일 호흡기로 전파되는 돌연변이가 우세종이 될 경우 인간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 

2014~16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유행할 때 인근 국가 베냉에서는 에볼라와 유사한 라사(Lassa)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했다. 평소 훈련한 에볼라 대응력으로 큰 확산은 막아냈다. 1969년 처음 보고된 라사는 서아프리카 풍토병으로 매년 10만~30만 명이 감염돼 약 5000명의 사망자를 낸다. 치명률이 약 35%인 라사 바이러스는 특정 들쥐와 사람 간 접촉으로 전파된다. 잠복기가 최대 3주까지로 길고 감염자의 80%가 무증상이어서 해외여행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지기 쉽다. 미국·유럽으로 유입된 사례가 있다. 

에볼라 사촌 격인 마버그(Marburg)도 치명률이 약 90%에 이른다. 마버그 감염으로 1967년 독일과 베오그라드에서 코·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31명이 사망했다. 2004년 앙골라에서는 250명 감염자 중 90%가 사망했다. 대부분 감염 후 8~9일 이내에 사망한다. 감염 후 회복돼도 눈·고환·모유 등에 바이러스가 생존할 수 있다. 박쥐·녹색원숭이·돼지 등을 통해 사람에게 옮아온 이 바이러스는 혈액·체액 등으로 사람 간에 전파된다. 잠복기가 2~21일로 길어 해외 이동으로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다. 유럽·미국의 발병 사례도 있다. 세계 의학계는 호흡기와 같이 더 쉬운 방법으로 전파하는 라사·마버그 돌연변이가 발생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당수 상점과 음식점이 휴업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감염병 유행 대응에 앞서 대비 먼저 해야”

19세기 유럽·아프리카·미국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황열(Yellow fever)은 아프리카·중남미 풍토병으로 약 90%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매년 약 20만 명이 감염되고 3만 명이 사망하며 치명률은 20~50%다. 문제는 황열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 서식지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숲모기는 이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서식하는데 이 지역에 약 20억 명이 산다. 일부 전문가는 황열에 대한 면역이 없는 아시아에서 황열이 유행하면 에볼라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충격이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백신이 있으나 공급량이 많지 않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팬데믹이 발생하면 백신 부족 현상이 빚어진다. 

크림-콩고출혈열(CCHF)은 2008년 수단에서 정육점 주인이 설사와 코피 증세를 보이다 5일 만에 사망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주요 매개체는 진드기다. 사람 간에는 혈액·체액·접촉으로 전파되며 공기 감염 우려도 있다. 실제로 정육점 주인을 돌보던 친척과 간호사는 물론이고 다른 입원 환자와 간호사 가족도 감염됐다. CCHF는 유럽·중국·중앙아시아·아프리카·인도 등에서 발견됐다.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는 CCHF를 국가 안보와 공중보건에 가장 높은 수준의 위험을 초래할 질병으로 지정한 바 있다. 

1952년 처음 발견한 치쿤구니야(Chikungunya)는 본래 지구 북반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다가 최근 아시아·유럽·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흰줄숲모기에게 물린 후 치쿤구니야에 감염된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문제는 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 서식처가 북반구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흰줄숲모기는 우리나라의 숲과 주택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치명률은 낮은 편이지만 만성 관절 통증이 수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 

소·양·염소·낙타 등 가축에서 유행하는 리프트 계곡열(Rift valley fever)은 사람에게 넘어오면 그 자체가 큰 재앙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치명률은 1% 미만이지만 신경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19년 연구에서 리프트 계곡열에 걸린 임신한 소 90~100%가 유산·사산하는 결과가 나왔다. 사람의 경우 태아에 위협이 된다는 의미다. 1931년 케냐 리프트 계곡에 사는 양에서 바이러스를 처음 확인한 후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로 퍼졌고 현재 약 30개국에서 발견됐다. 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모기는 약 50종인데 특히 숲모기류는 이미 유럽·아메리카·아시아에도 서식한다. 아직 사람 간 전파 사례는 보고된 바 없으나 감염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이 혈액과 조직 접촉으로 감염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감염병은 보통 10~30년 주기로 유행하는데 그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만 보더라도 사스-신종플루-메르스-코로나19까지 주기가 6년에서 4년으로 좁혀졌다. 그만큼 ‘제2의 코로나19’에 필요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김우주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응은 잘하는데 대비는 다소 약한 듯하다. 그래서 코로나19 초기에 모두 감염병 대비를 강조했으나 지금은 또 아무도 감염병 대비를 말하지 않는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등으로 감염병의 병독성과 전파력을 추적·감시하고 평가하는 등의 대비를 해야 다음 감염병 팬데믹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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