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에도 차별이 있나요”…발달장애인 대체자료 5년 간 17건에 불과
  • 이동혁 인턴기자 (dhl4001@gmail.com)
  • 승인 2023.09.0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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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각색 과정서 저작권법 침해 가능성 토로…학계 “법적 보완책 마련해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8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난 8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발달장애를 가진 양혜리양(12)의 취미는 독서다. 모친 백선영씨(41)는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책일 정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혜리양은 여전히 유아용 서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일반적인 인쇄물을 읽을 수 없는 장애인들을 위한 대체자료를 제작·보급하고 있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백씨는 “보다 많은 대체자료가 마련돼 아이가 또래에 맞는 교양과 지식을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의 정보 접근 장벽은 비단 혜리양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8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시민단체는 발달장애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바 있다. 2020년 총선 당시 선관위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선거 공보물 제작에 소홀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는 장애인들의 학업과 직무, 자기계발 및 교양에 필요한 자료를 신청 받아 다양한 매체의 대체자료로 제작·보급하고 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와 녹음도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수화 삽입 영상 등이 대표적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로는 ‘읽기 쉬운 도서’가 있다. 쉬운 언어로 구성돼 있고, 내용 앞뒤로 부연 설명이나 사진이 추가돼 있는 형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찾기란 모래사장 속 바늘 찾기다. 실제, 국립장애인도서관 ‘대체자료제작현황’을 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총 35455건의 대체자료가 제작됐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는 17건(읽기 쉬운 영상 0건, 읽기 쉬운 도서 15건)이 전부였다. 전체 대체자료의 0.04%에 불과한 규모다.

대체자료 제작이 지지부진한 이유로는 저작권법이 지목된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조항’에 따라 이용자가 저작권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이로 인해 글을 점자나 오디오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는 원저작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대체자료 제작을 위한 저작권 허용 규정은 부재한 상황이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대체자료의 경우 복잡한 문장을 쉽게 바꾸는 과정에서 각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장보성 국립장애인도서관 자료개발과 사무관은 “발달장애인 대체자료 제작을 위해서는 출판사나 저자 동의를 일일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발달장애인 대체자료 15건을 제작했고, 올해도 20건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며 “추후 발달장애인 대체자료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발달장애인들의 정보 접근 확대를 위해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남형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입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조항을 폭넓게 해석한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에서는 원저작자 권리 침해 우려도 비등하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달장애인용 대체자료는 유치원생·초등학생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정도”라며 “대체자료가 본래 취지와 달리 어린이를 위해 사용될 경우 저작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작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저작권법 내 명시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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