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생각’만 알아내도 자살률 1위 꼬리표 뗀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0 10:05
  • 호수 17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최저 출산율에 높은 자살률은 국가적 중대사
전국 병·의원이 모든 환자에게 ‘진료 전 설문’ 시행해야 

최근 들어 70~80대 노부부, 40대 공무원, 20대 교사, 10대 고등학생 등 모든 연령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23 자살예방백서’(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2021년 한 해에만 자살 사망자가 1만3352명에 이른다. 하루 약 36명꼴인데 2010년 31명보다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유행기인 2020~22년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약 3만2000명)보다 자살 사망자(약 3만9000명)가 더 많다. 

2015년 설치됐다 사라진 마포대교의 생명의다리 문구 ⓒ시사저널 박은숙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더 많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8월 발표한 자료(2022년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 관리 사업)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 80개 병원 응급실로 실려온 자살 시도자는 2만6538명이다. 10년 전인 2013년 1721명에서 1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자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24시간 상담할 수 있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에 걸려온 전화는 2021년 한 해에 약 19만 건으로 하루 500건이 넘는 수치다. 

이는 세계적인 기록이다. 2021년 기준 한국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26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11명의 2배를 넘는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씻어내지 못했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9월10일)을 앞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다루면서, 특히 한국 여성의 자살 사례가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여성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3.4명으로 세계 4위 수준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비교하거나 국내 수치만 살펴봐도 자살 실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상황까지 고려하면 한국의 자살 상황은 국가적 중대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는 5년마다 자살예방책을 세운다. 올 4월에도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7년)이 발표됐다. 2021년 기준 26명인 자살률을 2027년 18.2명으로 30% 낮추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5년 전의 계획과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2018년에도 자살률을 2016년 대비 30% 줄여 2022년 자살자 수를 8000명대로 낮추겠다고 했으나, 2022년 자살자 수는 약 1만2700명에 이른다. 

이 예방책의 세부 계획은 수동적인 데다 실효성도 낮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에 ‘생명존중안심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마을 주민 중 우울해 보이거나 무기력한 사람을 알아채고 전문기관에 연계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홍승봉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이웃 주민이 우울해 보이는 동네 사람을 붙들고 자살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을까. 설사 물어본다고 해서 자살 생각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자살 위험이 일반인보다 25배 높은 자살 시도자를 관리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자살 시도 후 응급실에 실려온 사람 중 일부(1만1321명)를 관리했더니 자살 위험도가 높은 사람의 비율이 15.6%에서 6.5%로 약 60%나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응급실에서의 초기 개입(상담·치료)이 자살 위험을 낮추는 것이다. 이 효과는 연구로도 확인됐다. 

연세대 의대 의생명시스템정보학교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2002~20년 고의적 자해로 병원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564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방문과 자살로 인한 사망 간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고의적 자해 환자가 자해 전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면 자살을 시도했더라도 생존하는 비율이 93.4%로,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보다 자살로 인한 사망 위험을 10% 이상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는 교량 등 자살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를 관리한다. 예컨대 인천대교에 주황색 플라스틱통을 설치해 차를 세우기 어렵게 만들면 실제로 방지 효과가 있다. 마포대교는 난간 펜스를 사람 키보다 높이거나 손으로 잡는 부분에 롤러를 설치해 매달리기 어렵게 만들었다. 투신 지연 효과가 있어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처럼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방법은 국내외 연구로 그 효과가 입증됐다. 

그러나 자살 시도자의 사후관리 등은 수동적 자살 예방법에 불과하다. 상당수는 자살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을 찾아내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능동적 자살 예방법이다. 능동적 자살 예방법 중 하나는 의료인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그래서 정부는 20~70대 성인을 대상으로 10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정신건강검진을 신체건강검진처럼 2년 주기로 단축하기로 했다. 검진 결과, 자살 위험이 있는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전국 261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해 치료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1차의료기관, 자살 고위험자 가장 많이 만나”

정신건강검진보다 더 진보한 방법도 있다. 전국 모든 병·의원 의사들이 자살 생각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증상이나 질환이든 동네 병·의원을 찾는 모든 환자에게 의사는 혈압이나 체온을 확인한다. 이처럼 병원을 찾은 모든 환자가 ‘진료 전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해서 자살 고위험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와 한 동네 의원(하나로내과의원)이 공동으로 가슴 답답함·두근거림·소화불량·피로 등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의원을 찾은 환자 474명을 상대로 ‘진료 전 설문지’를 통해 조사한 결과가 있다. 39%(188명)에서 우울증이 발견됐고 이들 중 12%는 당장 치료가 필요한 상태(중등도 이상)였다. 자살 생각이 있는 사람은 7.4%(35명)로 집계됐는데 이들 중 2명은 실행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홍승봉 회장은 “이 조사 결과는 1차의료기관에서 우울증과 자살 생각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전국 모든 병·의원을 찾는 초진 환자든 재진 환자든 ‘진료 전 설문지’를 작성하면 된다. 그중에서 자살 고위험자가 있으면 의사가 상담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상담료는 정부가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자살률을 낮추지 못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예산으로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상담 후 자살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자살예방센터 같은 전문기관과 연계해 추가 상담과 치료를 받도록 할 수 있다. 계산해 봤더니 자살 생각을 하는 사람 10만 명을 찾아내 상담하고 치료해 1년에 5000명의 생명을 구하면 자살률을 40%나 낮출 수 있다. 그러니까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를 14.7%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살을 미화하는 일본과 총기가 많은 미국은 우리보다 자살률이 높아야 한다. 그러나 그 나라들의 자살률은 14명 수준으로 우리나라(26명)보다 훨씬 낮다. 그 나라들에서는 진료과와 무관하게 모든 의사가 환자의 우울증과 자살 여부를 확인해 조치한다. 한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였던 핀란드도 능동적 자살 예방법을 강력하게 시행해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홍승봉 회장은 “많은 자살 예방 전문가를 양성해도 이들이 자살 고위험자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1차의료기관 의사들이 자살 고위험자를 가장 많이 만난다. 따라서 내과·가정의학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외과 등 동네 병·의원을 자살 예방의 중심에 두는 정책이 시급하다. 일본과 미국처럼 한국도 모든 의사가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자살률은 빨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핀란드는 자살률 1위에서 어떻게 탈출했나?

핀란드는 한때 세계 1위 자살률을 기록했지만 정부의 의지로 불명예 꼬리표를 떼는 데 성공했다. 1990년 핀란드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30명으로 세계 최고였다.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겨울에 해가 뜨지 않는 극야와 같은 환경을 지닌 핀란드에서는 세계적인 복지 체계로 경쟁보다 개인주의가 발달했다. 인간 교류가 적은 만큼 고립감과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

인구가 550만 명에 불과해 높은 자살률은 생산노동인구 감소 문제가 됐고 국가 존립까지 위협했다. 정부는 1992년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단행하면서 약 1300명의 자살자를 대상으로 심리적 부검을 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자의 행동·환경·주변인 인터뷰 등을 통해 자살 원인을 밝히는 과정이다. 그 결과, 자살자의 3분의 2 이상이 우울증을 앓았지만 이 중 15%만 치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 정부는 다른 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한 모든 환자에게 우울증과 자살 충동 여부를 점검해 자살 고위험자를 찾아냈다. 학교와 각 기관에도 상담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자살 고위험자에게는 약물 치료·상담·사회적 치료를 병행했다. 자살 충동을 악화시키는 술 판매에도 제한을 뒀다. 가령 보드카처럼 도수가 높은 술은 특정 가게에서만 특정 시간과 요일에만 팔도록 했다. 총기와 같은 자살 가능 도구도 규제했다. 2014년 핀란드 자살률은 14명까지 떨어졌고 2020년에는 12.9명으로 더 낮아졌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