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정부 R&D 예산 감축은 재고돼야 한다 [쓴소리 곧은 소리]
  • 민동필 서울대 명예교수·전 기초기술연구회이사장 (dpmin@snu.ac.kr)
  • 승인 2023.09.09 16: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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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비 16.6%, 5.2조원 삭감”…5% 이상 변화 주면 과학기술계는 ‘패닉’
젊은 연구인력 축소·전기 공급 중단 등으로 대형 연구시설 휴면도 불가피

8월 하순 사흘 사이에 러시아 달 착륙선은 폭발해 실패하고, 인도의 탐사선은 달 남극에 무사히 착륙해 안정적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나라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과학기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2024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 대비 16.6%인 약 5조2000억원 삭감했다. 새로운 지식을 개척하고 축적하며 인재를 키우는 R&D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고 발전의 초석을 놓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 중요성을 몰라서 이런 갑작스러운 삭감 정책을 취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R&D 예산이야말로 미래를 생각하며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기획해야 한다. 많은 선진국에서 국가 R&D 예산의 한 해 변화를 5% 이내로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작스러운 R&D 변화는, 확대든, 축소든 합리적인 적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예산 삭감은 변동 폭, 변동 속도, 변동 기준에서 적절치 못했다.

과학기술 R&D를 담당하는 기구는 크게 대학, 국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그리고 기업연구소로 구분된다. 기업연구소는 그 기업의 필요에 맞춘 R&D에 중점을 두는 반면 대학에서의 연구는 지식을 생성해 내는 기초연구를 담당하게 된다. 출연연은 국가적 요구에 맞춘 연구를 담당하면서 대학과 기업 사이의 가교 역할, 즉 응용연구를 담당한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오른쪽 가운데)이 8월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산업기술 R&D 추진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연구 담당하는 출연연에 가장 큰 영향

예산 측면에서 보면 대학이나 기업은 장기간에 걸친 대형 연구를 추진할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는 출연연이 대형 연구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게 돼있다. 그런데 이 출연연의 내년 주요 사업비 예산은 전년 대비 거의 25%나 삭감되었다. 또한 대학의 기초연구 예산도 삭감되어 대학원생들의 인건비 지원도 어려워질 형편이다. 이번 편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곳이 바로 대형 연구를 담당하는 출연연이다. 항공우주연구원, 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해 기초과학연구원의 중이온가속기연구소 등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초대형 기반 연구시설에 대한 예산들도 급격한 예산 감축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연구소 중에는 거의 30%에 달하는 예산 감축을 통보받은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급작스러운 감축은 출연연들이 정부 예산의 의도에 적응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예측할 수 없었던 그 속도다.

과학기술자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서 자신의 연구에 대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연구자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고 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서는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그들은 함께 연구할 젊은 박사급 연구원 채용을 포기하거나 대학원생들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줄일 것이다.

젊은 신진 연구인력 감소는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이런 상태로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과학인력 인프라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이번에 정부가 희망한 것은 아마도 낭비 내지는 경쟁력 없는 연구에 대한 지출을 막아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엄정하고 지속적이며 전문적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연구행위에 대한 평가는 신중하고도 정확한 기준과 방향 제시가 먼저 이루어져 연구 커뮤니티를 선도해야 한다. 평가의 결과도 예측 가능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선진국 정부들이 가장 노력하는 부분이다.

 

예산 삭감 변동 폭·속도·기준 적절치 않아

특히 이번 예산 편성이 과학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제까지 길러온 연구 인프라 시설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대학이나 출연연이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여 구축한 대형 시설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면서 심지어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기·가스 비용도 줄였다. 연구시설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 예산의 삭감이 무엇을 초래할 것인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과학기술 연구를 위한 대형 시설은 그 이용자가 국내외 관련 과학기술자들이며 국제적인 협력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다. 이 시설들은 국제적인 경쟁에 필수적이며, 그 경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최고의 성능을 유지하도록 부단히 발전시켜야 하는 시설이다. 대형 시설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설 유지·개발비 및 전기, 가스와 같은 기본적 운영비가 없어 가동이 중단돼 시설들이 잠자게 된다면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대형 시설의 R&D 지원은 장기적 성과를 염두에 두고 지원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기획이 요구되고, 이에는 예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필수적이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외치고 “실패의 두려움 없이 연구하라”며 지원을 약속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단기적인 시각으로는 미흡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성실한 연구는 장기적으로는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어떤 큰 업적도 기대할 수 없다.

연구활동의 예산지원은 대학과 연구기관의 연구와 인력 양성의 전체 생태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생태계가 가진 속도를 고려하면서 섬세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것이 낭비를 막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길이다. 예측이 가능하도록 변화의 속도를 조정해야만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강구될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정신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번에 추구하는 예산 변화는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성현의 말씀을 되새기며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외국에서는 표본으로 삼고 부러워한다. 우리의 경제 발전 뒤에는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높은 교육열과 정부 주도적인 과학기술 지원 정책이 있었다. 그 결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축적해 기술의 발전을 이룩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의 추격자 위치에서 선도자 위치로 바뀌어야 한다. R&D 지원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의한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환을 기대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민동필 서울대 명예교수·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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