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이재명 절대 안 만날’ 결심?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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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尹, ‘현재 이재명과 만남 적절하지 않다’고 해”
尹, 대선 후보 당시에는 “날 욕한 野와 적극 소통할 것”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모습이다. 이 대표가 대통령실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지만, 정부 여당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런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법적 리스크가 있는 야당 대표는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윤심’(윤 대통령 의중)을 대신 전했다. 정부 여당이 이 대표를 국정파트너로 사실상 인정하지 않으면서, 차기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정쟁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사진 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대통령(사진 위)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피의자는 안 된다? 한덕수 “만날 여건 아냐”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야당 대표를 만나라는 충언을 해 보신 적 있나”라는 안민석 민주당 의원 질의에 “말씀드린 바 있다”고 답했다. 다만 한 총리는 영수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사법리스크’를 이유로 이 대표의 회담 요청에 부정적 반응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현재의 여건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며 “(윤 대통령) 본인이 사법적 리스크가 있는 야당 대표를 만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어떤 시그널(신호)이라고 국민들이 이해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언페어(불공정)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적대감 탓에 이 대표를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은 저에게 ‘누구보다도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거리끼지 않는다’고 했고, 그것이 제가 아는 대통령과 같이 일하고 특히 법조계에 있는 많은 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사람을 좋아하고, 얘기하기 좋아하고, 토론하기 좋아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이 “이재명 대표가 있는 한은 만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라고 묻자 한 총리는 “여건이 좀 안 됐다는 얘기라고 저는 이해한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또 “지난번에 민주당 원내대표가 새로 뽑혔을 때 대통령이 만나겠다는 말을 저에게도 했다”며 “그러나 원내대표가 거부한 것으로 안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23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를 방문해 ‘23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습상황을 점검하며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월23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를 방문해 ‘23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습상황을 점검하며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尹후보’는 달랐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사석에서 한 총리가 전한 반응보다 더 거세게 이 대표를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 후 윤 대통령과 직접 만났다는 여권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정치 사범’이 아닌 ‘부패‧비리 혐의 피의자’로 보고 있다”며 “수많은 비리 의혹을 받는 사람을 야당 대표라 해서 대통령이 만난다면 검찰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고 반문했다.

다만 야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검사의 태도’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마치 검찰총장처럼 야당 대표를 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한 의원은 “‘검사 윤석열’이 사석에서 ‘피의자 이재명’을 만나면 문제일 수 있겠으나,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는 것이 왜 문제인가”라며 “야당은 엄연한 국정운영 파트너다. 윤 대통령의 현 태도가 오히려 검찰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 만남을 거부하는 가운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대선 후보 시절 발언도 회자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2년 전인 2021년 9월 시사저널과 만나 ‘대통령이 된 후 거대 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묻는 질문에 “야당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강조했다. 당시 윤 후보는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진다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진영에 관계없이 국가가 처한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낮에 국회의사당에서 제 욕을 듬뿍 한 야당 정치인들을 조속히 청와대로 모셔 식사 대접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취임 후 2년 동안 야당 대표와 만나지 않은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역대 대통령은 모두 취임 후 두 달 내 야당 지도부와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당과 연쇄 회동을 한 시기는 취임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달이 지나 여야 지도부를 만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한지 약 40일 만에 야당 지도부와 만찬을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에 여야 원내대표와 오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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