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많이 들었다” 참다 못한 대전교사 남편, 직접 나섰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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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니다” “손이 뺨에 맞아” 학부모들 입장문 ‘역풍’
남편 “아내 고통 받으면서도 신고 옳지 않다 생각, 속앓이만”
9일 오후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와 관련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다고 알려진 유성구 한 가게 앞에 비난을 담은 시민들의 쪽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9일 오후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와 관련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다고 알려진 유성구 한 가게 앞에 비난을 담은 시민들의 쪽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을 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의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들이 잇달아 입장문을 냈다. ‘악성민원은 없었다’로 요약되는 이들의 주장은 여론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고, 참다 못한 유족이 나섰다. 

13일 주요 커뮤니티와 SNS에는 가해 학부모로 추정되는 2명이 올린 입장문이 공유되며 공분을 사고 있다.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체육관장의 아내 A씨는 지난 11일 오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사망 교사의 과거 학급에서) 문제행동을 보인 4명의 학생 중 1명은 제 아이가 맞다”고 인정했다.

A씨는 “2019년 학기 초 선생님과 2차례 상담을 하고 심리치료를 추천받아 꾸준히 가정 내 지도에 힘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지도에 불만을 품고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거나 학교에 민원을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자신이 악성민원에 가담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 역시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고충을 너무 잘 알아 선생님을 함부로 대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며 “아이가 2학년으로 진학한 뒤부터는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얼굴을 뵌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숨진 교사의 남편이 해당 게시글에 댓글을 달면서 학부모의 일방적 주장을 향한 분노가 더 커졌다. 교사의 남편은 “선생님 남편입니다. 이제 오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며 해당 학부모의 행동이 사망 교사의 일상에 여러 영향을 줬고, 유족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반박을 내놨다. 

해당 입장문이 올라온 당일  오전에는 A씨의 남편인 체육관장의 입장문도 게재됐다. 체육관장은 “기사와 댓글을 읽으며 손이 떨리고 너무 답답했다”며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한 마음으로 그러신 것을 알지만 저희는 이번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저희는 정말 아니다”며 “제발 마녀사냥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교사의 남편은 이 글에도 직접 댓글을 달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습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교사의 운구 차량이 9월9일 오전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자, 유족들이 운구 차량에 기대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교사의 운구 차량이 9월9일 오전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자, 유족들이 운구 차량에 기대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 다른 학부모인 B씨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글을 올렸다. 학부모는 억울함을 해명하기 위해 글을 올렸지만, 이를 확인한 시민들은 오히려 교사에 대한 갑질이 증명된 셈이라며 거센 질타를 쏟았다. 

B씨는 2019년 2학기부터 아이에게 틱장애가 왔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니 아이가 교장실에 갔더라”며 “같은 반 친구와 놀다가 손이 친구 뺨에 맞았고, 선생님이 제 아이와 뺨을 맞은 친구를 반 아이들 앞에 서게 해 사과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교사가 학생들 앞에 아이를 홀로 세워두고 어떤 벌을 받으면 좋을지 한 사람씩 의견을 물었고 이를 ’인민재판’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숨진 교사에게 ‘인민재판식 처벌방식’을 지양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아이를 일찍 등교시킬 테니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입장문을 확인한 네티즌들은 ‘뺨이 손에 맞았다’는 표현과 B씨가 입장문에서 밝힌 내용이 전반적으로 책임 회피에 가깝고 오히려 해명이 교사에 대한 악성민원이 실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의 유족들이 9월9일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 앞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악성민원으로 세상을 뜬 대전 초등 교사의 유족들이 9월9일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 앞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숨진 교사의 남편은 전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학부모들로부터 고통을 받아왔지만, 교사로서 이들을 신고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다”며 “저 역시 이를 지켜보면서도 지금껏 속앓이만 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아직 학교에 가려 하지 않아서 집에서 24시간 계속 돌보고 있다”며 “힘을 내려고 하는데도 많이 힘들다”고 애끊는 심정을 털어놨다.

대전교사노조는 이날 남편 등 숨진 교사 유족을 만나 가해 학부모에 대한 경찰 고소·고발 여부와 교사 순직 요청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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