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배터리 향해 칼 뺀 EU, 한국이 반사이익 얻나
  • 황건강 중앙SUNDAY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8 07:3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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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불공정 무역에 대한 조사
한국 업체 수혜 기대감 크지만 경계론도 나와

“우리는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유럽 태양광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억한다. 글로벌 경제에서 공정성이 중요한 이유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9월13일(현지시간) 연례 정책 연설을 통해 중국 정부의 보조금 관행에 칼을 빼들었다. 중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업체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EU는 향후 13개월가량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유럽과 중국 현지 언론들은 EU 조사 결과에 따라 10~15%가량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뉴시스
EU가 최근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의 보조금 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결과가 주목된다. 사진은 중국에서 운영되는 전기택시 모습 ⓒ뉴시스

조사 결과에 따라 10~15% 관세 부과 전망

EU가 긴장할 만큼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상승했다.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 5.9%, 올해 7월에는 1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3년 전만 해도 1%도 차지하지 못했던 중국산 전기차가 어느새 위협적인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런 급성장의 비결로 꼽히는 건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산 전기차는 통상적인 유럽 내 전기차 가격보다 2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EU 집행위원회에서는 “이대로 뒀다간 2년 내에 중국 업체들이 시장의 15%를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약진할 것이란 예상은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내연기관 기술에서 뒤진 중국은 전기차 업체들을 집중 육성한 바 있다. 덕분에 세계 10대 완성차 업체에도 중국 업체인 BYD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선 그동안 전면적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일찌감치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 등 공급망 전반을 견제하던 미국과 달리 유럽은 자동차 강국이란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가령 폭스바겐과 BMW, 르노 등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들은 모두 본사가 유럽에 위치해 있다.

유럽 입장에서 자동차 산업은 유럽 전체 경제의 7%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이런 유럽 자동차 산업에 중국은 주요 고객으로 꼽힌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통상 유럽 업체들이 판매한 자동차 3대 가운데 1대는 중국에서 팔렸다. 이렇게 중요한 국가를 두고 보조금을 문제 삼았다가 무역 분쟁으로 비화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실제로 이번 보조금 조사를 두고서도 자동차 산업 강국인 독일은 여전히 강경한 조치를 내리는 데 미온적이란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추세에 변화가 감지됐다. 중국 완성차 시장에서 유럽 업체들의 점유율 하락세가 선명해진 것이다. 자동차 산업 분석 전문기관인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 7월 폭스바겐그룹의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까지 떨어지며, 중국 업체인 BYD(11%)에 역전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보급 정책에 의해 폭스바겐그룹의 중국 내 점유율은 BYD보다 낮아진 상황”이라며 “EU 입장에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처지라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U의 칼날은 전기차에서 멈추지 않는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게다가 EU는 배터리 분야에서 이미 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나선 상황이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중국이 원자재 무기화에 나선 것을 목격한 탓이다. 지난 3월 EU는 핵심원자재법을 내놓기도 했다. 이 법안의 초안에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산업과 방위 산업에 필수적인 전략원자재의 EU 채굴·가공·재활용 역량을 높이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해 특정 전략원자재에 대해선 한 국가에 65% 이상 의존하지 않겠다는 목표도 포함됐다. EU에선 현재 희토류(98%)와 리튬 (97%), 마그네슘 (93%) 등을 90% 이상 중국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EU의 행보에 중국산 전기차와 함께 중국산 배터리가 타격을 입을 경우 이를 대체할 만큼 규모를 갖춘 곳은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LG엔솔은 폴란드를, 삼성SDI와 SK온은 헝가리를 거점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컬리어스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71%로 추정된다. 전혜영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결국 유럽에선 유럽 내에서 생산한 배터리 사용 비율이 높아질 전망”이라며 “연간 170기가와트시(GWh) 이상의 유럽 내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업체를 향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1년 북부 두에에 들어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엔비전 AESC의 공장 부지를 방문해 이 회사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 ⓒEPA 연합

“단기간에 중국 업체 배제하기 힘들 것”

다만 일각에선 아직 한국 업체들의 수혜를 단정 짓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EU 내에서도 중국과 완전한 관계 분리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탓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열린 EU 27개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에선 새로운 대중 정책을 언급하면서 디커플링(관계 분리)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처럼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위험이 따른다”며 디리스킹의 방향을 설명한 바 있다. 중국과의 관계 조정이 필요하지만, 전면적인 관계 분리가 아닌 위험 완화에 무게를 두겠다는 얘기다.

이번 중국산 전기차 보조금 조사를 발표하면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됐다. 어디까지나 불공정한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조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불공정한 행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협력해야 하는 주제들도 많기 때문에 중국과의 대화는 개방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도 단기간에 큰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긴 했지만 결정된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 업체들을 대체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EU가 섣불리 중국과 선을 긋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물론 전 세계가 EU의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정책을 주시하고 있지만 강력한 관세 등으로 단기간에 중국 업체를 배제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유럽 시장에서 경쟁이 계속될 것이란 가정 아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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