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든지” 교사 고통 외면…교장·교감으로 번진 분노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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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영승 교사 ‘페트병 사건’ 당시 교감 근무지로 근조화환 및 항의전화
‘그때 당신은 무엇을 했나’ ‘후배 팔아 그 자리 오르니 자랑스럽나’ 비판
8월24일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초등학교 앞에 2021년 잇달아 사망한 고(故) 김은지 교사와 이영승 교사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8월24일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초등학교 앞에 2021년 잇달아 사망한 고(故) 김은지 교사와 이영승 교사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의정부 호원초등학교 교사 사망과 관련해 학부모에 이어 학교 관리자들에 대한 신상까지 공개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고(故) 이영승 교사가 수 년간 고통받았던 이른바 '페트병 학부모' 사건에서 학교 관리자들은 교사의 어려움을 사실상 방치한 채 개인적 해결이나 합의를 종용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당국은 관리자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잇단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학부모들의 신상 정보를 폭로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26일 근조화환이 길게 늘어선 한 초등학교의 후문과 교내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학교는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곳으로 '페트병 사건' 당시 호원초에 있던 교감이 현재 교장으로 근무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근조화환에는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자랑스러우십니까? 어린 후배 팔아 그 자리 오르니' '신규 교사 고통 외면한 OOO 교장, 직무유기 유죄' '그 자리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끝까지 기억하겠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학교 관리자들의 신상이 폭로되면서 이들이 현재 근무 중인 학교로 근조화환과 함께 항의성 전화와 비난글도 쇄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 교사 부임 첫 해인 2016년 해당 반에서 한 학생이 커터칼로 페트병을 자르던 중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고 이후 학부모가 수 년에 걸쳐 이 교사에게 치료비 등을 요구하며 연락했다. 

학부모는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수술비와 치료비 등을 받았지만 이 교사가 군에 입대한 이후로도 지속 연락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사는 전역 이후인 2019년 4월부터 매월 50만원씩 8개월에 걸쳐 총 400만원을 학부모 계좌로 송금했다. 

이 교사가 학부모에 치료비 명목의 돈을 건네기 전 호원초 관리자가 "치료비를 주든지 돈을 주든지 학교로 전화 안오게 하라"며 사비를 들여 합의할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 유족 측 주장이다. 

호원초 학부모 신상공개 SNS계정 게시물 캡처본 ⓒ연합뉴스
호원초 학부모 신상공개 SNS계정 게시물 캡처본 ⓒ연합뉴스

이 사건으로 군에서도 고통 받았던 이 교사는 제대 후에도 페트병 사건을 비롯한 여러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렸고 결국 2021년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당시 관리자들의 방관에 이어 새로 부임한 교장과 교감도 이 교사의 극단 선택을 단순 추락사로 교육청에 보고,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네티즌들은 악성 민원으로 교사를 고통에 빠트린 학부모도 사실 관계 확인 후 처벌 받아야 하지만 교내에서 발생한 일을 교사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사건 은폐에만 급급했던 교장과 교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공분하고 있다. 

게시글 작성자는 교장과 교감 신상 폭로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 대해 "교권침해에 대한 지대한 일조를 하는 이들이 바로 학교 관리자, 즉 '방관자'라고 생각한다"며 "후배 교사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자신들의 승진과 영전에만 신경 쓰고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그러한 방관자는 교직에 있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육 현장에서 교권 침해가 빈번히 발생해도 후배 교사에 책임을 전가하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도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도교육청은 이 교사 사망을 단순 추락사로 처리한 경위를 조사하는 등 호원초 교장과 교감 등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경찰은 추석 연휴 이후 페트병 학부모를 포함해 이 교사에 지속 연락하며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한 학부모는 2021년 장기결석한 자녀에 대한 출석 처리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이 교사와 394건의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학부모는 이 교사 장례식장에 찾아와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학부모는 2021년 12월 자녀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공개 사과를 할 것을 이 교사에게 요구했고, 이 교사가 난색을 보이자 수차례 전화하고 학교에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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