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치면 분당, 품으면 분열? 이재명의 ‘非明 딜레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4 17: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명 복귀 초읽기…가결파 향한 메시지 주목
친명‧비명 깊어진 갈등골에 총선 앞 내홍 불가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여진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이른바 ‘체포동의안 가결파’로 지목된 비이재명(비명)계를 향한 ‘숙청’ 요구가 당 안팎에서 제기되면서다. 아직 칼자루를 쥔 이재명 대표의 의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야권 일각에선 이 대표가 ‘딜레마’에 빠졌다는 시각도 있다. 자신의 퇴진을 바라는 비명계를 내쳐도, 자신의 팬덤을 저격한 비명계를 품어도 당의 분란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월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발언을 마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월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발언을 마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실화된 내홍…‘적’이 된 동지들

최근 민주당 내 비명계와 친명계는 ‘체포동의안 정국’ 이후 관계가 크게 틀어진 상태다. 이재명 대표가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직후 잠시 화해 기류가 흘렀지만,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관계가 악화됐다. 결국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친명계는 비명계를 동료가 아닌 ‘적’으로 간주하는 모습이다.

당 지도부는 비명계 의원들을 향한 징계 가능성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현재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는 공개적으로 가결을 표명한 비명계 의원 5인(이상민·김종민·설훈·이원욱·조응천)에 대한 징계 청원 동의가 5만 명을 넘어 지도부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는 이들에 대한 징계 여부를 윤리심판원에 회부할 것으로 보인다.

강성 친명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2일 페이스북에 “만약 구속영장이 가결(인용)됐다면 이재명 대표 사퇴하라고 즉각 주장했을 것 아닌가. 그런데 기각됐다. 그럼 (체포동의안) 가결파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라고 썼다. 친명계인 서은숙 최고위원도 1일 페이스북에서 “가결표 색출은 반대하지만, 당대표가 구속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친문재인계로 분류되는 박광온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것도 비명계에겐 악재가 됐다. 박 전 원내대표에 비해 친명 성향이 강한 홍익표 원내대표는 9월26일 당선 소회를 밝히면서 “일부 당원, 지지층에서 (가결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잘 알고 그런 부분을 책임 있게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원외에서도 비명계를 향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친명 성향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4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을 향해 “스스로 용퇴를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추 전 장관은 해당 의원들이 용퇴를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징계 조치라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공천을 가지고 또는 체포동의안 표결 가지고 당대표를 겁박했다면 그러한 콩가루당은 있을 수가 없는 거니까 당내 규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동료들의 압박에 비명계는 반발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은 9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번에 (체포동의안을) 가결한 의원들 덕분에 민주당은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가결 투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9월25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최근 당내 가결파 색출 조짐에 대해 “자기주장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독재”라고 주장했다.

 

총선 앞 분열될라…장고 거듭하는 李

당내 분란에도 이재명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는 사석에서도 비명계와 관련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지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하면서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내홍 상황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게 당의 분란을 더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불구속수사를 받게 됐지만 이 대표가 당을 분열시킨 책임이 크다. 처음부터 (사법리스크를) 직접 털어냈어야 한다”며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비명계 ‘축출’과 ‘통합’ 중 어떤 메시지를 내더라도 당의 내홍이 쉽사리 정리되기 어려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 대표가 비명계를 징계하거나 공개적으로 저격할 시 친명계 지도부에 힘이 실리면서 강성 지지층의 규합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철퇴를 맞은 비명계가 격렬히 반발하거나 분당을 선언할 시 총선을 앞두고 야권 표심이 분산될 위험이 커진다. 실제 비명계뿐 아니라 일부 중도 성향의 의원들도 사석에서 ‘당 지도부가 비명계를 징계하면 탈당하겠다’ 선언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반면 이 대표가 비명계와의 ‘통합’을 선언하더라도 이미 깊어진 계파 갈등의 골이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 대표는 수 차례에 걸쳐 강성 당원들에게 폭탄문자 자제를 촉구했으나 효력은 없었다. 결국 이 대표의 의중과 관계없이 당의 내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명계를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속어)으로 낙인찍은 친명계와 이들을 떠받치는 강성 당원들, ‘개딸’(이 대표 지지층)을 ‘민주당의 적폐’로 규정한 비명계의 공존 시나리오가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