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웃다가 문득 재발견하는 인간애...이래서 ‘코미디 명작’
  • 강윤서 인턴기자 (codanys@naver.com)
  • 승인 2023.10.0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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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11월12일까지 안톤 체호프 단편 원작·닐 사이먼 각색 《굿닥터》 공연
김승철 연출 “인간의 본질과 매력이 극 전체를 아우르는 힘”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6일부터 11월12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굿닥터(The Good Doctor)》 출연 배우들 ⓒ서울시극단 제공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6일부터 11월12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굿닥터(The Good Doctor)》의 출연 배우들 ⓒ서울시극단 제공

 

“바보처럼 답답한 인물들이 우습다가도 어느새 그들에게 비친 우리를 발견한다.” 

글이 도통 써지지 않아 고민인 작가가 무대에 서 있다. 잠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식히던 그는 불현듯 소재를 떠올리고 본업으로 돌아간다. 작가의 종잡을 수 없는 대화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암전된다. 동시에 관객들은 그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극중 인물들은 마치 우화 속 주인공처럼 극단적이고 우스꽝스럽다. 관객들은 이질감 속에 실소를 터뜨리다가도 왠지 모를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10월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연극 《굿닥터(The Good Doctor)》 공연이 시작됐다. 이날 첫 번째 공연에 앞서 프레스콜이 열렸다. 《굿닥터》에 대해 김승철 연출은 “우리를 넋 놓고 웃게 만들면서도 씁쓸하고 안타까운 감정도 자아내는 진지한 형식의 코미디”라며 “금방 증발하고 마는 웃긴 코미디를 넘어 ‘인간애’라는 묵직한 영혼을 남기는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6일부터 11월12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굿닥터》의 티저 포스터 ⓒ서울시극단 제공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6일부터 11월12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굿닥터》의 티저 포스터 ⓒ서울시극단 제공

 

문학 거장과 브로드웨이 전설이 합작한 명품 공연 

《굿닥터》는 브로드웨이의 전설이라 불리는 작가 닐 사이먼이 러시아 문학 거장 안톤 체호프가 쓴 단편들을 각색해서 만든 옴니버스 극이다. 197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며 수많은 관객을 끌어모아 왔다. 

명품 공연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데 있어 작품성 못지않게 중요한 게 연출이다. 특히 동시대의 사회적 공기를 잘 읽어내 반영하는 연출은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이번에 서울시극단은 김승철 연출과 함께 동시대적 감각으로 《굿닥터》를 풀어냈다. 원작의 ‘재채기’, ‘가정교사’, ‘치과의사’, ‘늦은 행복’, ‘물에 빠진 사나이’, ‘생일선물’, ‘의지할 곳 없는 신세’, ‘오디션’ 등 총 8개 챕터를 선별했다.  

이날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프레스콜에선 ‘재채기’, ‘가정교사’, ‘치과의사’ 등 세 챕터를 공개했다. 무대 전체를 꽉 채우는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공간 연출은 연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시연이 끝나고 김 연출과 배우들은 《굿닥터》를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성취를 취재진에게 털어놨다. 

바보 같지만 따뜻한 존재들…오래 사랑받는 《굿닥터》의 비결 

소소한 소재로 구성된 각 챕터를 아우르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김승철 연출 “재채기라는 사소한 실수에 집착하는 인물, 불합리한 처우에 무기력하게 수긍하는 인물 등 한없이 유약한 캐릭터들이 나온다. 처음에는 작품을 분석하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다가도 그렇게 순수하고 여린 천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인물들이 때로 관계의 윤활유 역할이 되기도, 각박한 삶에서 인간애를 키우기도 한다. 그러한 따뜻함을 전하는 인간의 본질과 매력이 극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라고 느꼈다. 관객들에게도 그 힘이 전달되길 바란다.” 

차별화된 연출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김승철 연출 “《굿닥터》는 국내에서 연기 입시의 단골 작품일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차별화를 주기 위해 관객들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특히 무대 공간 자체를 활용해서 극중 작가의 머릿속을 연출해 봤다. 반투명 커튼으로 무대를 여러 겹으로 분할해서 관객들이 마치 극중 작가의 머리에 들여다보는 효과를 주고 싶었다. (풍자와 해학을 극대화시키고자) 과장성을 키운 것도 있다. 오늘 시연한 ‘치과의사’ 등 일부 챕터의 경우 무대 위에 돋보기나 현미경을 들이대 이야기를 확대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연기할 때 각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김수현 배우(작가 역) “작가는 관객과 무대에 절반씩 걸쳐 있는 역할이다.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전하다가도 갑자기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런 전환 과정에서 느낀 괴리감이 있었다. 그 괴리감을 풀어나가는 게 제일 어려웠다.” 

▶정원조 배우(‘치과의사’ 챕터의 사제 역) “‘치과의사’ 챕터는 남의 고통을 즐기는 재미에서 (유머가) 시작된다. 그래서 충치로 고통 받는 연기를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과장하는 게 중요했다. 실제로는 안 아프지만 챕터 내내 고통스러운 척 하는 데 굉장한 에너지가 들었다.” 

《굿닥터》의 원작인 안톤 체호프 단편들은 러시아의 1900년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김 연출과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고전적인 등장인물과 풍경이 묻어나는 원작 그대로 즐겨도 좋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애’를 느껴볼 것을 제안했다. 김 연출은 “관객들에게 ‘아무리 힘든 상황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웃을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굿닥터》는 11월12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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