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취약층 아동 ‘생활고’에도 잠자는 지원계좌…미인출 금액 2000억 넘어
  • 변문우 기자·이동혁 인턴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10.1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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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층 아동의 사회 진출 ‘종잣돈’…해지에 어려움 겪기도
시중 이자보다 금리 낮은데 82%가 만기 후 미인출 상태 유지
최재형 “‘정보의 사각지대’로 허점 있다…제도 개선에 힘쓸 것”
보육원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아동복지법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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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운영하는 아동발달지원계좌인 디딤씨앗통장이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해지하지 않아 미인출 금액이 누적 20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 등에서 생활하는 보호 대상 또는 저소득층 아동이 사회에 나갈 때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인 ‘디딤씨앗통장’은 아동이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국가가 그 2배를 매칭해 적립해준다. 적립한 돈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자립정착금과 함께 자립 초기에 큰 도움이 되는데, 정작 이 종잣돈이 해지의 어려움이나 정보 사각지대의 문제 등으로 통장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기준 적금 만기 아동 5만4252명 중 4만4637명은 적금을 해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만기 후 계좌유지율도 2022년 78%에서 82%까지 올랐다. 특히 만 24세가 넘었는데도 적금을 해지하지 않은 아동도 4009명에 달했다. 그렇게 계좌 누적 미인출 금액도 2020년 1044억7200만원에서 2년 새 2073억4900만원까지 급증했다.

해당 적금계좌에 가입하는 18세 미만 취약층 아동 수는 해마다 6~7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도 7월까지 6만3798명이 신규 가입했다. 여기에 만기 요건인 만 18세가 경과한 가입 아동 수도 올해 9월 기준 5만4252명에 이른다. 이중 만 24세 이상은 자유롭게 인출이 가능하지만, 만 18~24세의 경우는 인출 시 자립목적 증빙서류가 요구된다.

ⓒ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 양선영

일부는 해지 방법 몰라서 유지…저소득층은 교육 기회도 적어

가입 아동들이 계좌를 해지하지 않는 이유로는 금리를 고려하거나 당장 필요한 목적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해지에 어려움을 겪거나 정보를 몰랐던 경우도 꼽혔다. 보육시설을 통해 가입한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우는 복지부의 온라인 설문조사(440명 대상)에서 222명(55.4%)이 ‘의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해지 가능한지 몰라서 유지한 경우는 60명(15.0%)이었으며, 상품 정보를 몰라 당초 가입하지 않은 인원도 39명(8.9%)으로 집계됐다.

저축계좌 만기도래 정보에 대한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했다. 자립준비청년 대상 설문조사에서 저축계좌의 만기도래 정보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고 응답한 수는 284명(70.8%)인 반면, 안내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수는 117명(29.2%)로 나타났다. 또 계좌와 관련해 모바일 정보조회가 가능한지 알고 있는 수는 107명(26.7%)이었지만, 몰랐다고 응답한 수는 294명(73.3%)에 달했다.

특히 기초수급가구아동의 경우는 적금계좌에 대한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분위기다. 퇴소 이후에도 기관을 통해 관리가 이뤄지는 자립준비청년과 달리 교육 전담 기관이 전무해서다. 한 지방자지단체 소속 관계자는 “취약계층 아동 대상 사업의 경우 주로 자립준비 아동, 시설 퇴소 아동을 위주로 하고 있다”며 “기초생활수급 아동에 대해선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적금을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아동 심리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내비쳤다. 황정아 아동권리보장원 자립지원부장은 통화에서 “보호시설에서 자란 아동의 경우 경제·심리적으로 기댈 언덕이 부족하다”며 “언제든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해지를 꺼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서울자립지원전담기관에선 가입 아동들이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것을 막는 차원에서 일부러 가입 아동들의 계좌유지를 유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적금계좌의 미인출 기간이 길어진다고 가입 아동들이 큰 이자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금계좌의 미인출금액에 적용되는 금리가 시중 금리보다 턱없이 낮아서다. 미인출금액에 적용되는 금리는 만기 후 1개월 미만일 경우 2.3%, 6개월 미만일 경우 1.6%, 이후 더욱 낮아지는 구조로 설계돼있다. 일반적인 저축성 금융상품의 평균이자율이 연 3.83%(올해 1월 기준)임을 고려하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일각에선 아동들이 혜택을 사업 취지대로 누리도록 정부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재형 의원은 “지난해 광주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학비 등 생활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아동발달지원계좌 사업 등 다양한 지원책이 있음에도 정보의 사각지대에 있어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경우도 여전히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아동들의 자산형성을 도울 수 있도록 사업의 허점을 보완하고 제도를 개선하는데 힘을 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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