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통일교 해산’ 청구, 자민당에 핵폭탄 될 수 있다
  • 유재순 재일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2 08:05
  • 호수 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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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관계자 “판도라 상자 열렸다…자민당이 피눈물 흘리는 날 올 것”
아베 사건으로 자민당-통일교 밀월 드러나…“기시다 정권, 겉으로만 단절”

10월13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통일교에 대한 1차 철퇴가 내려졌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5000여 점의 통일교 위반 사항 증거자료를 들고 통일교에 대한 해산명령을 도쿄재판소에 청구했다. 작년 7월 선거 유세 중 통일교 신자 가족의 총에 맞아 숨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서거 이후 1년3개월,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만에 일본 정부가 마침내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당시 나라시 야마토 사이다이지역 광장에서 가두연설을 하던 아베 전 총리가 야마카미 데쓰야의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자인 아베가 타계하자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아베와 통일교가 밀월관계였다는 점이다. 아베를 저격한 야마카미는 통일교가 양산해낸 전형적인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야마카미의 어머니는 통일교에 입신한 후 남편이 생전에 운영하던 회사, 전답, 심지어 자식들을 먹이고 입혀야 했던 기본적인 생활비까지 탈탈 털어 통일교에 헌금으로 바쳤다. 그 여파로 야마카미의 형이 자살했고, 야마카미 자신도 자위대 시절에 한 차례 자살을 기도했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한국의 통일교 본부에 가 있었고, 아들의 자살 미수 소식을 듣고서도 나머지 일정을 모두 마친 후에야 일본으로 돌아왔다. 통일교로 인해 한 가정이 완벽하게 풍비박산한 것이다.

 

한 가정이 통일교 때문에 완전 풍비박산

야마카미는 아베를 살해한 이유로 통일교와 아베의 밀월관계를 거론했다. 사회악으로 치부하고 있는 통일교를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옹호·지원하고 있어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베 정도의 밀월은 애교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베라는 거물 정치인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일본 정치, 즉 자민당의 역사와 통일교의 일본 내 성장 역사가 궤를 같이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과 막역한 사이로 일본에서 통일교가 번창하도록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었던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1987년 사망)를 필두로 자민당의 내로라하는 거물 정치인이 대거 통일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실들이 연일 언론에 폭로된 것이다. 캐도 캐도 끝없이 엮여 나오는 고구마 줄기처럼 말이다.

이 같은 상황과 마주한 일본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2022년 9월, 자민당이 고해성사하듯 자당 소속 379명의 의원 중 179명(나중에 1명 늘어나 180명이 됨)이 통일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자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에는 10월13일 중의원 의장직은 사임하지만 의원직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호소다 히로유키 중의원 의장도 있었다. 그는 통일교 행사에 8번 참석만 했다고 고백한 바 있으나, 실제로는 아베 못지않게 통일교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온 거물 정치인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1980년대부터 나카소네 야스히로-모리-고이즈미-아베 내각에 이르기까지 모두 통일교 산하 ‘비전회’에서 작성한 정책안을 그대로 실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나카소네의 이름이 ‘문선명 발언록(615권)’에 693회나 등장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시 노부스케 이후 통일교 문선명과 가장 관계가 깊었던 정치인이 바로 나카소네 당시 총리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뒷받침하듯 1986년 중·참의원 총선거에 문선명은 자민당의 승리를 위해 자그마치 60억 엔 이상을 선거 비용으로 지원했다(마이니치신문 1월31일자 보도)고 한다. 실제로 나카소네 총리는 그 덕분에 한 번 더 연임할 수 있었다. 통일교가 자민당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자민당이 이 같은 사실을 그동안 극구 부인해 왔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자민당 의원들의 통일교와의 밀착관계를 폭로한 데 대해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잡아떼 왔지만 아베 살해 사건을 계기로 통일교 문제가 일시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통일교 관련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덕분에 아베를 살해한 야마카미는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적 영웅이 된 측면도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살인자로 범법자지만,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일본의 정치를 통일교로부터 구해준 의인이라고 평가하는 일본인이 의외로 많다. ‘아베’라는 초대형 거물 정치인 살인 사건이 아니었으면 통일교 문제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유야무야 얼렁뚱땅 넘겨버리거나 정치적 힘으로 소송 협박을 가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국민의 생각이다. 야마카미가 생활하고 있는 교도소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영치금도 3년 동안 먹을 만큼 쌓여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야마카미의 고향에 살고 있는 먼 친척 집에까지 사람들이 찾아와 먹을 것과 입을 것, 영치금을 전달하고 가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EPA 연합
일본 통일교 간부 노부오 오카무라(오른쪽)가 10월16일 일본 정부의 ‘통일교 해산’ 청구와 관련, 변호사(왼쪽)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

도쿄재판소, 통일교 해산명령 청구 수리

10월13일, 일본 정부에 의해 도쿄재판소에서 통일교 해산명령 청구가 수리되자 일본 통일교 본부는 “종교법인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즉각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6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기왕에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법정에서 전면적으로 싸워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요미우리와 마이니치신문 등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 내 통일교 신자들은 ‘연수회’라는 명목으로 대거 한국에 입국해 해산명령을 청구하는 10월13일 전날까지 경기도 가평에 있는 통일교 본부에서 철야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해산명령을 청구하는 재판소의 판사 이름을 1000번씩 외치며 해산명령을 중지해 달라는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 의해 종교법인 해산명령 청구를 한 것은 통일교가 세 번째다. 사린가스 사건으로 대량 인명 피해를 내 일본 열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오움진리교와 사기 사건으로 사회문제가 된 묘가쿠지가 법원으로부터 해산명령을 받았다. 오움진리교는 7개월, 묘가쿠지는 법리 다툼으로 해산명령을 받기까지 3년이 걸렸다.

하지만 통일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1차로 법원에서 해산명령이 내려질 경우, 당연히 통일교는 불복해 고등재판소에 항고할 것이고, 고등재판소에서도 같은 결정이 내려지면, 통일교는 헌법 위반 등을 주장하며 최고재판소에 특별항고를 신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은 대체로 3~4년 이상 걸릴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해산명령을 받았다고 종교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임의 단체로 종교활동을 할 수 있지만 ‘종교법인’ 자격이 박탈돼 세제상 우대 혜택이 전면 금지된다. 즉 종교법인으로서 세금 면제 혜택이 사라지는 것. 문제는 재판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통일교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지금까지는 먹이사슬처럼 같은 배를 탔다고 생각해 자제해 왔지만 재판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통일교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경우, 그동안 캐비닛 속에 넣어두었던 자민당의 통일교 관련 치부를 만천하에 공표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의 수위가 기시다, 혹은 자민당 정권에 치명상을 입힐 핵폭탄급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EPA 연합
2022년 7월11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빈소에서 한 여성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EPA 연합

통일교 재산, 한국으로 이전되고 있나

당장 통일교가 당면한 과제는 자체 재산 보전 문제다. 만에 하나 해산명령이 내려질 경우, 일본 정부는 법적으로 통일교 보유 재산에 대한 ‘청산인’을 내세워 재산 검증 및 정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도 통일교 보유 재산으로 정산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통일교 내에서 재산 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부터 경기도 가평 통일교 본부에서 행해지고 있는 연수회에 참가한 6000명의 일본인 신자가 1인당 100만 엔 이하 현금을 나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공식적인 공지를 통해 100만 엔 이상이면 신고해야 하니 꼭 100만 엔 이하 현금을 가지고 와야 한다고 고지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통일교가 주장하는 일본 내 통일교 신자 수는 약 60만 명이다.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재산 보전을 위한 임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해산명령까지만 정부의 역할이고 재산 보전 문제는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일단 자민당은 표면적으로는 통일교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니 그렇게 자민당 의원들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하루아침에 절연하고 뒤돌아설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의원들의 비서나 보좌관, 지역사무소 직원과 선거운동원, 그리고 후원회 조직까지 지난 수십 년 동안 통일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결국 이번에 일본 정부가 통일교에 대한 해산명령 청구를 재판소에 냈다고 하지만 이는 당장의 ‘국민적 여론’이라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기시다 정부의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주에 기시다 지지율이 26.3%로 나와, 정치적 색깔이 없다고 평가받는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통일교라는 소나기를 피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해산명령이라는 퍼포먼스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해산명령 청구는 선거 의식한 퍼포먼스”

실제로 10월12일자 시사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자민당과 통일교가 완전히 결별했다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해산명령 청구를 한 것은 선거를 의식한 퍼포먼스적 요소가 강하다. 절대로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자민당 각료 출신 의원의 말을 빌려 “기시다 총리가 해산명령 청구를 한 것은 중의원 해산, 총선거를 염두에 두고 선거 불안 용인을 하나 제거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다만 쫓기고 있는 통일교 측이 반격해 올 염려가 있다. 통일교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타격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고 전하기도 했다. 통일교의 폭로 내용에 따라 기시다 정권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통일교 50대 남성 신자는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어차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민당이 이렇게 나오면 우리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한다. 반드시 피눈물 흘리며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의원들에 대한 폭로는 위에서 결정할 일이다. 다만 우린 무조건 결사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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