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총선 6개월도 채 안 남았는데…연내 선거제 개편 사실상 무산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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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일인 12월12일까지도 ‘게임의 룰’ 합의 못할 듯
민주당 내부에서도 ‘현실론’ 들어 ‘병립형 비례제 회귀’ 목소리 점점 나와
이탄희 “병립형 회귀는 명백한 퇴행…양당 기득권 강화해 카르텔 만드는 것”

올해 신년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띄워 조명된 ‘선거제 개편’ 연내 성사가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선거제 개정안 쟁점을 두고 거대 양당 간은 물론, 각 당내에서도 의견이 여전히 통일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당 원내지도부도 연내 통과 ‘데드라인’ 격인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일(12월12일)까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대해, 남은 국회 본회의 일정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월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는 매일 독려하는데, 양당 의지는 ‘시들’

25일 시사저널의 취재를 종합하면, 양당 원내지도부는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일 전까지 선거제 개정안 통과 방침을 지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선거제 개정안과 관련해 여야 간 협의 진전이 거의 없었고 논의도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양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들은 시사저널에 “이번 11월 본회의까지는 선거제 개정안 협의와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양당이 대립하고 있는 가장 큰 쟁점은 ‘준연동형’과 ‘병립형’으로 구분되는 비례대표 의석 할당 방식이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비례대표 의석 수 50%를 보충하는 구조다. 제20대 총선까지 적용됐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와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정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은 제21대 총선에서 불거진 ‘위성 정당’ 부작용을 막기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과거로의 후퇴’라며 반대하고 있다.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를 위해선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의당·기본소득당 등 군소정당도 병립형 복귀 시 정당득표율이 과소평가돼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더 불리해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의원 정수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 비율 ▲선거구 합·분구 등 지역구 획정 등도 풀지 못한 숙제다. 앞서 여야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논의에서 1개의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기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3개 권역별(수도권·중부·남부)로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을 뿐이다.

양당의 협의가 진전되지 않은 가운데, 김 의장은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일 전까지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여야 원내지도부에 재차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선거법상 국회가 정해진 기간 내 선거구를 확정하지 않으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소송이 걸릴 우려도 있어서다. 선거제 개편 협의 사정에 밝은 국회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김 의장은 지난 24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도 현안 처리 외에 선거제 개편 이야기도 꺼냈고, 상시적으로 원내지도부를 독려하는 등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의 주문을 이행하려면 여야는 국회 국정감사 후 세 차례 예정된 11월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무조건 선거제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여야 원내지도부는 선거제보단 노란봉투법 등 다른 현안과 예산 정국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11월30일 예정된 예산정국 본회의를 빼면 사실상 법안 심사 본회의는 11월9일과 23일밖에 없다”며 “의장님 의지는 강하지만 결국 올해 안에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양당은 선거제 개편에 대한 의지도 서로 시들해졌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박광온 전 민주당 원내대표 때 조금 진행됐었지만 지금은 특히 국정감사까지 진행되면서 논의가 멈춰있는 상태”라며 “여야 의지도 많이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도 “여야 원내대표와 김 의장의 결심에 달렸는데, 결국 개정안에 대한 전체적 합의를 모아야 해서 쉽지 않다. 그리고 정의당 생각도 고려해야 해서 더욱 가시밭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여야 원내대표의 선거제 개편 논의용 추가 회동 일정은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도 지난 7월13일 마지막 회의 후 선거제 논의가 사실상 끝난 상태다. 정개특위 소속의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정개특위 논의는 사실상 다 끝났고 구체적인 협의안을 여야 원내대표한테 일임한 상태”라고 밝혔다. 선거제 개편을 위해 구성된 ‘2+2 협의체(여야 원내수석부대표·정개특위 간사)’ 회동도 감감무소식이다.

2022년 12월2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여 ‘2023년 정치개혁의 해’ 선포식을 열고 소선거구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탄희 의원실 제공
2022년 12월2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여 ‘2023년 정치개혁의 해’ 선포식을 열고 소선거구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탄희 의원실 제공

“민주당도 진심 아냐” “‘개악’이라면 내년에도 합의 안 돼”

양당 내부에서도 ‘준연동형’과 ‘병립형’ 비례대표제 방식을 놓고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두 비례대표제 선출 방식을 놓고 여전히 의견이 나뉘어있고, 국민의힘도 내부에서 완전 조율은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개특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주장에 진심은 아닌 것 같다”며 “해당 방식을 선택하게 되면 자기들이 또 위성정당을 안낼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진다. 또 지난 총선 때처럼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개특위 내부에서도 ‘병립형’으로 돌아가자고 한 민주당 위원들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대선 전 당론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약속했지만, 지도부 일각과 의원 일부에서는 ‘제1당을 빼앗길 수 있다’는 ‘현실론’을 들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개특위 소속의 이탄희 의원을 비롯한 당내 개혁파들은 “병립형 회귀는 명백한 퇴행”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탄희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선거법 개혁이 단순히 게임의 룰을 정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고 정치 개혁 차원에서 추진된 의제다. 그러면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선거법 합의를 해야지 정치를 ‘개악’하는 선거법 합의는 의미가 없다”며 “껍데기만 남는 합의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동형을 유지하지 않고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리는 건 선거법 개악”이라며 “촛불 전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양당의 기득권을 강화해서 결국 카르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병립형 회귀로의 합의는 12월이 아니라 내년에라도 하면 안 된다. 끝까지 국민의힘 요구를 거부하고 현행법대로 치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소신을 밝혔다.

정치권에선 21대 국회도 임기 종료를 앞두고 선거제 ‘개혁’을 포기했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앞서 국회는 지난 3월 법정 선거구 획정기한은 물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 지난 12일까지 요구한 2차 획정기한도 못 지켰다. 다른 국회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야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떠넘기기 하고 있는 것”이라며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선거제 개편)이라면 빨리 해야 하는데, 매번 계속 미루다 결국 이번에도 늦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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