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있으실 분이 아니신데요.” “더 큰물에서 노셔야죠.” “지방에도 이렇게 훌륭한 기자가….” 최근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연수가 미디어오늘에 쓴 칼럼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밝은 미소는 아니고 고소(苦笑)였다. 김연수는 “지역신문 기자라면 한 번쯤, 아니 열 번도 넘게 들었을 아리송한 칭찬류”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말을 듣는 지역신문 기자는 불편한 마음을 애써 삼킨다. 상대는 호의로 한 말이겠지만 그 밑바닥에는 두 가지 생각이 깔려 있다. 첫째는 서울이 중앙이고 지역은 변방이라는 인식이고, 둘째는 지역신문을 불신하는 마음이다. 두 전제와 ‘지방에 있을 분이 아니신데요’라는 말 사이에는 ‘당신도 서울에서 일하고 싶으실 테죠’라는 추측이 끼어있다. 한마디로, 서울에 진출하지 못해 지역신문으로 ‘일보 후퇴’한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신문 기자만 그런 말을 듣는 건 아니다. 뜻한 바 있어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그와 비슷한 말에 시달려야 한다. “아니 너 같은 능력자가 왜?” “너라면 당연히 서울로 갈 줄 알았는데.” “여기서 썩히기엔 네 재능이 너무 아까운데.” 아마도 사회과학도라는 직업병 탓이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정치경제적 제도 개혁’과 ‘문화적 의식 개혁’ 사이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갈등이라곤 하지만, 둘 다 필요하다는 모범답안이 제시된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독재 시절 각종 관제 운동에 시달린 탓인지 의식 개혁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지방 소멸 위기에 대해서도 ‘정치경제적 제도 개혁’만 거론될 뿐 의식 개혁 이야기는 전무하다.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의식 개혁이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 그걸로 캠페인을 벌이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김연수의 칼럼이나 이 칼럼처럼 “이런 사고방식은 좀 우습지 않나요?”라고 부드럽게 호소하거나 꼬집는 수밖엔 없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한동안 지방 문제와 관련해 많은 글을 썼다. 의식 개혁의 문제이니 댓글을 열심히 찾아 읽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아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지방 문제만 나오면 광분하면서 지방을 비하하는 악플러가 많다. 그런 비하에 호남 모욕을 곁들여서 하는 이도 많다. 보수나 극우만 그러는 게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면서 그러는 이도 많다. 나는 지방·호남을 비하하는 건 극우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기에 “왜 극우가 진보 코스프레를 하지?”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지방·호남 문제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정치적 성향과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수개월 전 어느 진보적 인사가 진보의 가치를 부르짖는 책에서 “서울의 명문대 교수도 아닌 지방대 교수, 그리고 호남 출신이라는 변방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나를 비판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그 한계 때문에 ‘독선과 오만을 낳는 아웃사이더 의식’에 갇혀 있다는 주장이었다. 속물적 위계와 서열을 존중하는 보수라면 모를까 진보를 내세운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차라리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고 했으면 웃기라도 했을 텐데.
의식이 질긴 건 분명하지만, 여건이 달라지면 의식도 빠른 속도로 바뀌기 마련이다. 훗날 지방을 비하하는 의식을 먼 옛날 이야기로 회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선 “지방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부터 없애자. 서울에 있을 사람들이 지방에서 많이 살아야 세상이 더 빨리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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