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지방 비하엔 보수·진보의 차이가 없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3.11.03 17: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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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있으실 분이 아니신데요.” “더 큰물에서 노셔야죠.” “지방에도 이렇게 훌륭한 기자가….” 최근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연수가 미디어오늘에 쓴 칼럼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밝은 미소는 아니고 고소(苦笑)였다. 김연수는 “지역신문 기자라면 한 번쯤, 아니 열 번도 넘게 들었을 아리송한 칭찬류”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말을 듣는 지역신문 기자는 불편한 마음을 애써 삼킨다. 상대는 호의로 한 말이겠지만 그 밑바닥에는 두 가지 생각이 깔려 있다. 첫째는 서울이 중앙이고 지역은 변방이라는 인식이고, 둘째는 지역신문을 불신하는 마음이다. 두 전제와 ‘지방에 있을 분이 아니신데요’라는 말 사이에는 ‘당신도 서울에서 일하고 싶으실 테죠’라는 추측이 끼어있다. 한마디로, 서울에 진출하지 못해 지역신문으로 ‘일보 후퇴’한 것이라고 넘겨짚는 것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월14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지역신문 기자만 그런 말을 듣는 건 아니다. 뜻한 바 있어 지역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그와 비슷한 말에 시달려야 한다. “아니 너 같은 능력자가 왜?” “너라면 당연히 서울로 갈 줄 알았는데.” “여기서 썩히기엔 네 재능이 너무 아까운데.” 아마도 사회과학도라는 직업병 탓이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정치경제적 제도 개혁’과 ‘문화적 의식 개혁’ 사이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갈등이라곤 하지만, 둘 다 필요하다는 모범답안이 제시된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독재 시절 각종 관제 운동에 시달린 탓인지 의식 개혁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지방 소멸 위기에 대해서도 ‘정치경제적 제도 개혁’만 거론될 뿐 의식 개혁 이야기는 전무하다.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의식 개혁이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 그걸로 캠페인을 벌이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김연수의 칼럼이나 이 칼럼처럼 “이런 사고방식은 좀 우습지 않나요?”라고 부드럽게 호소하거나 꼬집는 수밖엔 없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한동안 지방 문제와 관련해 많은 글을 썼다. 의식 개혁의 문제이니 댓글을 열심히 찾아 읽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아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지방 문제만 나오면 광분하면서 지방을 비하하는 악플러가 많다. 그런 비하에 호남 모욕을 곁들여서 하는 이도 많다. 보수나 극우만 그러는 게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면서 그러는 이도 많다. 나는 지방·호남을 비하하는 건 극우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기에 “왜 극우가 진보 코스프레를 하지?”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지방·호남 문제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정치적 성향과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수개월 전 어느 진보적 인사가 진보의 가치를 부르짖는 책에서 “서울의 명문대 교수도 아닌 지방대 교수, 그리고 호남 출신이라는 변방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나를 비판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그 한계 때문에 ‘독선과 오만을 낳는 아웃사이더 의식’에 갇혀 있다는 주장이었다. 속물적 위계와 서열을 존중하는 보수라면 모를까 진보를 내세운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차라리 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고 했으면 웃기라도 했을 텐데.

의식이 질긴 건 분명하지만, 여건이 달라지면 의식도 빠른 속도로 바뀌기 마련이다. 훗날 지방을 비하하는 의식을 먼 옛날 이야기로 회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선 “지방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부터 없애자. 서울에 있을 사람들이 지방에서 많이 살아야 세상이 더 빨리 달라진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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