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싸움 지치지 않아…아들 향한 사랑 변한 적 없다”
  • 김경수 기자 (2k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3 12:05
  • 호수 17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 인터뷰]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눈물 머금고 마약 한 아들을 신고한 이유

1998년 33세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내리 5선 의원과 경기지사를 역임한 남경필 J&KP 대표. 정치 인생 정점에선 대선주자로 거론될 만큼 영향력이 컸다. 화려한 이력을 갖춘 그였지만, 50대 중반에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14년 경기지사 당선 직후 전처와의 이혼, 2017년도에는 장남의 마약 투약 사건이 터졌다. 도덕적인 면에서 깔끔한 이미지를 갖춘 그에게 커다란 흠집이 생긴 것이다. 결국 이듬해 경기지사 재선에 실패했다. 첫 공직 선거 패배였다. 이후 남 대표는 ‘정치 황금기’인 55세에 홀연히 정계를 떠났다.

ⓒ시사저널 이종현

“장남, 중독 치료 받던 중 또 마약 구입”

정계를 떠난 그가 언론에 다시 등장한 건 큰아들의 마약 문제 때문이었다. 장남인 남씨는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아파트에서 필로폰을 투약했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같은 달 25일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남씨가 풀려났다. 그는 닷새 만인 30일 또다시 필로폰을 투약했다. 이번에도 가족은 그를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남씨는 체포됐다.

남씨는 지난해 7월 대마를 흡입하고, 그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아파트 등에서 16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까지 흡입했다. 당시 남씨는 마약중독 치료 및 재활을 받는 중이었지만,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9월14일 1심에서 재판부는 남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또 약물치료 강의 수강 80시간 이수와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검찰은 상습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남 대표 장남에 대한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꼬리표처럼 붙던 장남의 마약 사건. 남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남 대표는 마약이 어떻게 가족의 삶을 망가뜨렸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그래서일까. 그는 부모의 보호 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을 취했다. 장남이 재차 마약에 손을 대자, 남 대표는 큰아들을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10월30일 오후 시사저널 스튜디오에서 만난 남 대표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국가가 나서 치료해 줬으면 해서 신고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남 대표는 수년간 아들의 마약 중독을 고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고 했다. 유명한 병원도 가고,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기도원도 가봤지만 결국 마약을 치료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마약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남 대표는 ‘사회로부터 아들을 격리하는 방법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냈다. 지난해 8월 경남 창녕군에 있는 한 병원에서 마약 관련 치료를 받던 도중 큰아들은 마약에 손을 댔다. 가족의 끈질긴 설득 끝에 처음으로 경찰에 자수했다. 이후 올해 1월에도 같은 경찰서를 찾아가 다시 자수했다. 구속 등의 아무런 법적 조치가 없자,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병원에 입원시켜 단약 치료를 받게 했다.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만 퇴원이 가능한 병원이었다.

그러나 입원한 지 두 달여 만에 병원에서 갑자기 감염병(수두)이 돌면서 남씨는 퇴원했다. 당시 남 대표는 부인과 함께 성지순례를 위해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남씨는 그새 또 마약에 손을 댔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자”는 가족의 약속에 따라 둘째 아들이 형을 경찰에 신고했고, 남 대표는 급히 귀국했다. 치료 목적이기 때문에, 장남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영장은 기각됐다. 남씨가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이번에는 남 대표가 직접 아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장남은 결국 구속됐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남경필 전 경기지사의 장남이 3월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감옥 가거나 강제 입원 등 사회적 격리 외에 방법 없어”

큰아들은 징역 2년6월이라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남 대표와 가족들은 감사했다. 실형만 선고된 게 아니라 치료감호 또한 법원이 인용해서다. 공권력을 통해 아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치료감호는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경우 치료감호소에 수용해 최대 2년간 치료하는 보호처분이다. 남 대표는 “우리나라는 마약을 치료하는 병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감옥에 들어가거나 병원에 강제 입원을 통해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방법 말곤 없다”고 한탄했다.

남 대표는 마약중독 환자들이 유기적인 치료·재활을 받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 끊기 어려운 게 마약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마약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라고 한다. 마약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대검찰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8월까지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1만8187명이다. 전년(1만2230명) 대비 48.7%나 증가했다. 치료기관은 어떨까.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기관으로는 올해 기준 24개 의료기관이 지정돼 있다. 2018년보다 두 곳이 줄어들었다. 기관에서 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또 어떨까. 2018년 173명에서 2022년 114명으로 59명(34%)이나 감소했다. 매년 마약에 따른 치료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전문의나 지정병원은 줄어들고 있다. 마약사범에 비해 치료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치료 시스템의 부재 때문인지, 마약중독자 가족이 안은 상처가 적지 않다. 남 대표는 가족 중에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그 가정은 풍비박산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는 “마약 하는 사람들은 보통 숨어서 하므로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이 안 되고, 카드빚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핸드폰 고지서에 엉뚱한 비용들이 붙어 날아오면 마약에 중독돼 재정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무엇보다 가족 간 신뢰가 깨지는 게 큰 문제다. 가족이 서로를 못 믿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국가가 즉시 구축해야 한다. 사회가 빨리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 대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마약 전담 기구(마약청)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사회의 마약범죄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강남 학원가에서 음료수 시음 행사를 가장해 10대 청소년들에게 ‘마약 음료’를 배포하는가 하면, 클럽에서 동료에게 몰래 마약을 탄 술을 먹여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마약 하는 법을 배운다. 쉽게 마약을 구매하기도 한다. 최근 이선균, 권지용(지드래곤), 재벌 3세 등 유명인이 잇따라 마약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마약 청정국’ 대한민국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이제 ‘마약 소비국’으로 불리고 있다. 마약은 신체에도 치명적이다. 마약으로 인해 뇌가 자극되면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가 급증한다. 이후 혈중 도파민 농도가 떨어지면 과민반응이 나타난다. 마약은 한 번의 투약으로도 뇌 손상을 일으킨다. 강한 중독성도 유발한다. 그래서 마약은 한 번만 접해도 중독되기 쉽다. 마약이 몸에 들어오면 뇌신경 변형으로 더 강한 자극을 원해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마약 재범률은 50% 수준, 2명 중 1명은 마약에 다시 손을 댈 정도로 끊어내기 어렵다.

전국 마약류 중독자 치료 전문병원 21곳 중 인천 참사랑병원, 경남 창녕 국립부곡병원 등 2곳이 마약 중독자를 대상으로 치료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문 의료진 부족 등에 따라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정부 예산도 들여다보자. 최근 보건복지부가 요청한 내년 마약 중독자 치료 관련 예산은 85% 삭감됐다. 올해와 같은 4억1600만원만 편성됐다. 마약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예산은 제자리다.

지난해 10월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꼭 승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범죄에 엄정 대응할 것”을 검찰에 지시했다. 철저한 수사로 공급을 사전 차단하고, 마약 유통 조직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마약중독자에 대한 관리와 치료 환경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스타트업 사업가로 왕성한 활동 중인 남 대표는 스스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이 ‘마약’이라고 강조한다.

ⓒ시사저널 이종현
10월30일 서울 용산 스튜디오에서 남경필 대표가 얼마 전 실형 선고를 받은 장남으로 인해 겪게 된 마약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밝히며 재활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카드 빚 갑자기 늘거나 핸드폰 고지서에 엉뚱한 비용 붙기도”

남 대표는 큰아들 마약 사건을 계기로 마약 퇴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큰아들로 인해 마약으로 영혼이 피폐해진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습 마약 투약 혐의로 복역 중인 장남이 출소하면 함께 ‘마약 퇴치 운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 대표는 “2년6개월이 지나면 큰아들과 손잡고 전국을 돌며 마약 퇴치 운동을 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계속 아른거린다. 벌은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남경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벌받는 것보다 1000배쯤 욕을 먹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 평균 주 1회 아들이 보고 싶어 면회하러 간다. “씩씩하게 잘 지낸다”고 웃으며 말하는 큰아들을 보면 괜히 눈물이 나온다. 주어진 면회가 끝나고, 뒤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아들의 등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고 싶다. 남 대표는 “사랑하는 아들이 치료를 잘 받고 건강하게 나올 것이라 믿는다. 아들이 형기를 잘 마치고 나오면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마약 퇴치 운동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사업가로 나선 지 4년. 스타트업을 이끄는 남 대표는 창의성과 열정 있는 젊은 CEO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들과 한 약속이 있다. 수익을 내면 그 일부는 마약 퇴치 운동과 같은 공적인 곳에 의미 있게 쓰거나, 스스로 사회공헌을 하자는 것이다. 물론 모두 찬성했다.

남 대표는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구나’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마약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가족, 사회 공동체, 정부가 함께 마약 퇴치를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 유명 연예인부터 재계 30위권 대기업 오너 등 재계와 연예계까지 남 대표를 도와 마약 퇴치 운동에 나서고 있다. 남 대표는 “마약중독은 어떤 중독보다 무섭고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 누구라도 발견하면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즉시 주변에 알리고, 전문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야 한다”면서 “심할 경우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단 마약과의 관계를 끊어놓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경필은 누구인가

•미국 예일대학교 한인학생회 회장 •제15대 국회의원 •제16대 국회의원 •제17대 국회의원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 •제19대 국회의원 •제34대 경기지사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