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죽음의 냄새” 가자지구 병원, 마취없이 제왕절개·두개골 수술
  • 김민지 디지털팀 기자 (kimminj2028@gmail.com)
  • 승인 2023.11.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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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손상·의약품 부족으로 의료시스템 붕괴…의사들도 “견딜 수 없어”
WHO “만성질환자 생명 위태…정신적 피해도 심각”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 외상 병동에서 지난달 24일(현지 시각)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포격에서 살아남은 어린이를 안고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 외상 병동에서 지난달 24일(현지 시각)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포격에서 살아남은 어린이를 안고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본격적인 시가전에 돌입한 가운데 무차별적 공습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붕괴돼 처참한 상황이다.

미국 구호단체 ‘메드글로벌’(MedGlobal)에서 활동 중인 여성 라자 무슬레(50)씨는 2일(현지 시각)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의 냄새가 곳곳에 있다. 피의 냄새가 곳곳에 있다”라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최대 병원인 알시파 병원의 비참함을 전했다.

무슬레씨는 “병원들의 상황은 처참하다. 울게 만든다”며 알시파 병원에 피란한 다수의 사람이 복도 바닥에서 잠을 자고 부상자들을 치료할 장비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한 여성은 다리에 피가 흐르는 채 병원 바닥에 초점 잃은 눈빛으로 앉아 있고 목과 다리에 붕대를 두른 한 젊은 남성은 핏자국이 군데군데 보이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병원 응급실은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로 가득 차있고 이들 중 일부는 울거나 두려움에 몸을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의료진은 환자들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기진한 모습이다.

알시파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알라 시탈리는 “인간이자 담당 의사로서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며 “마취제가 동나고 있고 환자를 치료할 항생제와 붕대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35개 병원 중 16개가 이스라엘군 공습 등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암 병원인 튀르키예-팔레스타인 우정병원은 금주 초 이스라엘군 공격에 산소와 물 공급 장비가 손상돼 연료 부족 등을 이유로 운영을 멈췄다.

운영되는 다른 병원들의 상황도 알시파 병원처럼 침울하다.

특히 임신부와 신생아 등 취약층의 상황은 극도로 위험하다.

구호단체 케어인터내셔널은 가자지구의 임신한 여성들이 마취제도 없이 제왕절개수술을 받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 고통에서 다음 달까지 하루 평균 160명의 임신부가 출산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병원 내 신생아들이 있는 인큐베이터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2일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온 어린이들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카말 아드완 병원에는 자발리아 난민촌을 겨눈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발생한 시신이나 부상자들이 많은데 일부 어린이는 신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 병원의 의사 아부 사피야 씨는 “죽고 싶다. 끔찍한 장면을 보는 것보다 그것이 더 편하다”고 토로했다.

카말 아드완 병원에서도 의사들이 의료품 부족으로 마취제 없이 중상자들의 수술을 집도하고 상처를 소독하는 데 식초를 사용하고 있다고 NYT가 의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사피야 씨는 “수술 중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밖에서도 들린다”며 “두개골 수술을 마취제 없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약품이 부족한 상황은 장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생명에 치명적이다.

BBC 방송은 가자지구에서 만성 질환자들의 위험이 증가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를 인용해 가자지구 내 당뇨·암·심장병 환자가 35만 명, 신장투석 환자가 1000명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지난달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발발 전에는 가자지구 내 환자 100명이 매일 이스라엘이나 요르단강 서안을 드나들며 특별치료를 받았지만 현재는 불가능하다.

가자지구뿐 아니라 이스라엘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도 심각한 상태다.

WHO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주민들의 정신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고 dpa 통신은 보도했다.

이스라엘 내 WHO 대표인 미셸 티에렌씨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생존자와 피랍자 가족, 목격자 등이 정신적 외상을 겪는 중이며 이 트라우마가 바이러스처럼 이스라엘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가자지구 주민 모두에서 심리 지원이 필요함을 주장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WHO 대표인 릭 페퍼코른씨는 “그들은 완전히 절망하고 우울하며 삶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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