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참패’ 정국 돌파 카드는 2기 인사…그러나 “인사에 감동이 없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1 12: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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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올인 정치’로 강서·엑스포를 ‘尹 선거’로 만들어 리스크 키워”
신설 정책실장에 이관섭…김대기 비서실장 역할 축소
인사 폭은 대대적·속도는 순차적…“국정 기조 전환·미래 비전 제시 필요” 지적

‘119 대 29’. 대한민국 부산이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받아든 최종 성적표다. 개최지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선정됐다. 정부는 당초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2차 결선투표에서 리야드에 역전하겠다고 자신했지만, 호언장담과는 달리 결선투표에도 이르지 못한 채 리야드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득표수에 머물면서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예상을 넘어선 참패에 당장 정치권에 후폭풍이 불어오고 있다. 우선 정부의 취약한 외교력과 정보력이 노출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차 투표를 통해 역전을 노리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수차례 밝힐 만큼 비등한 경합을 예측했던 정부가 객관적 상황 분석이 아니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움직였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 유치위원장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내년 4월 총선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당장 실망한 민심을 달랠 뾰족한 카드가 없는 만큼 ‘총선에서 부산은 물론 경남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우려가 여권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던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곧이어 날아올 청구서도 부담스럽다. 윤 대통령은 최근 외치에서의 성과를 강조하며 잦은 해외순방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는데, 엑스포 유치 실패로 ‘윤석열의 외치 성적표’에 대한 국민적 물음표가 점점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0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엑스포 유치 실패 책임론, 윤 대통령에 쏠려

엑스포 유치 실패의 후폭풍과 관련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이 대목에서 발견된다. 바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윤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 불발 소식이 전해진 11월29일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지는 대통령으로서 우리 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에게 실망시켜드린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 모든 것은 제 부족함”이라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지만, 사실 직접 나서 사과를 안 하면 안 될 만큼 엑스포 유치에 ‘올인’하며 판을 키워 책임질 여지를 그만큼 키웠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취재에 따르면, 총선을 앞두고 지금 여권이 제일 뼈아파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이 엑스포 유치전을 스스로 ‘대통령의 선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물론 윤 대통령 스스로도 최근 몇 달간 계속 엑스포 유치에 ‘올인’하는 모습을 주요 메시지로 발신했다. ‘유치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도 계속 정부발(發)로 나왔다. 실제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에 나설 때마다 언론은 대통령의 엑스포 유치 노력과 활동을 주요하게 다뤘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의도했고, 계산했다는 뜻이다. 유치에 실패하면 정치적 부담을 대통령이 오롯이 지게 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강행한 것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이지만, 대통령실은 물론 여권 전체가 엑스포 유치전에 전략적 사고 대신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식으로 임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봐도 상황 인식의 실패와 관리의 실패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라는 이야기가 된다”며 씁쓸해했다. 

여권 입장에서 문제는 윤 대통령이 ‘올인 정치’로 불확실성을 키워 정국에서 어려움을 겪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여당이 혁신위원회를 가동할 만큼 위기에 내몰린 이유인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도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판을 키워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하나의 구청장 선거가 될 수 있던 판을 윤 대통령이 선거를 주도하면서 ‘총선 전초전’이자 ‘전국 선거’로 키워버렸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은 김태우 후보 사면부터 공천까지 사실상 강서구청장 선거를 주도했다. 5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강서구청장직을 잃은 김 후보를, 윤 대통령은 8월 광복절에 사면복권시켰다. 대통령실은 무공천 방침을 고집하던 여당 지도부를 힘으로 눌러 공천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여권의 기대와는 달리 김 후보는 17%포인트 격차라는, 수도권에서는 나오기 힘든 차이로 참패했다. 후폭풍은 당시에도 상당했고 윤 대통령은 큰 내상을 피할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이 판을 키워, 윤 대통령의 선거가 됐고, 대통령의 패배로 끝난 셈이다. 

여권 입장에서는 지금 그 무엇보다 정국 돌파와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인사(人事)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 임기 2년 차를 맞아 단행되는 ‘윤석열 정부 2기’ 인사는 개각과 맞물려 ‘폭은 대대적’으로, ‘속도는 순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당·정·대(대통령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사가 곧 진행된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자주 소통한다고 알려진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부산엑스포 참패로 당초 예상보다 폭넓은 인사개편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당·정·대 모두를 흔드는 인사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장관 출사표, 이재명 대표와 대결”

우선 대통령실은 ‘중진 험지 출마론’ 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국민의힘의 경우 12월은 일단 현재 체제로 가야 한다는 방향에 더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수도권 출마와 불출마 선언 등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 야당이 밀어붙이는 쌍특검(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에 대응해야 하는 게 급선무이니만큼 지금 당을 흔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리가 힘을 받았다는 것이다. 

개각은 이르면 12월초, 늦어도 12월 중순을 넘기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개각은 내년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정치인 출신 인사들의 교체가 중심이다. 추경호 기획재정부·박민식 국가보훈부·원희룡 국토교통부·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들은 이번 개각에서 당으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당초 유임이 유력하게 거론됐다가 엑스포 유치 실패에 따라 교체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개각 대상자 중 단연 주목받는 인물은 원희룡 장관이다. 원 장관이 최근 내년 총선에서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맞붙을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원희룡 대 이재명’의 대결이 성사된다면 계양을은 단숨에 총선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게 될 전망이다. 여권으로서는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이재명 대표를 지역구에 묶어두는 효과를 노려볼 수도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개각에 포함될지 여부도 관심사다. 한 장관은 현재 여권에서 수도권 험지 출마부터 선거대책위원장 역할론 등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될 만큼 총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조커’로 평가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수석비서관 전원이 교체됐다. 정무수석에 한오섭 국정상황실장, 홍보수석에 이도운 대변인이 승진 임명됐다. 시민사회수석에는 황상무 전 KBS 앵커, 경제수석에 박춘섭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사회수석에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각각 기용됐다.

대통령실 인사 교체 대상자 중 가장 주목받았던 김대기 비서실장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유임됐다. 대신 대통령실은 정책실장직을 신설해 기존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 등 2실장 체제를 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 등 3실장 체제로 바꾼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신설되는 과학기술수석 자리도 정책실장이 관장한다. 신임 정책실장에는 이관섭 현 국정기획수석이 승진 기용됐다. 지금까지 정무와 정책을 모두 담당한 비서실장의 영역이 줄어드는 모양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사정에 두루 밝은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실을 3실장 체제로 개편하는 것에는 다중적 의미와 포석이 깔려 있다”면서 “여당 일각에는 ‘당정은 다 흔들고 책임을 물으면서 대통령실은 무풍지대로 두느냐’는 불만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심에 김대기 실장이 있다. 당의 불만을 의식해 대통령실을 개편하면서 김 실장의 역할을 덜어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만큼 윤 대통령과 손발을 맞출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연합뉴스

“‘이재명 싫은 표’만 모아서는 승리할 수 없어”

여권에서는 지금의 정국을 돌파할 유일한 카드가 인사임을 인정하면서도, 대대적인 인사 교체가 상징하는 내용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다수의 여권 관계자는 이번 인사로 ①엑스포 참패라는 악재에 인사로 책임을 물어 성난 민심을 달래고 ②느슨해진 공직사회 등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③윤 대통령이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긍정 평가했다. 반면에 ①국민통합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물이 없고 ②경제와 민생을 상징하는 인물이 없고 ③미래지향적 의제를 상징하는 인물이 없다는 점 등에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출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인사가 지향하는 방향과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바로 ‘2기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의제에 집중하려고 하는지, 어떤 혁신과 통합을 이루려고 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에서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핵심 관계자는 현재의 여권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 여권 전체에는 ‘더 좋은 대한민국’ 비전과 ‘혁신과 통합’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즉 정권교체 ‘다음’이 없다. 미래 비전이 절실한데, 아직 국정 브랜드도 못 세웠다. 대통령도, 대통령실도, 국민의힘도, 혁신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여권 전체가 주야장천 인적 쇄신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다. 인사는 쇄신 대상으로 지목받은 인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데, 고인 물을 비워서 새 물로 무엇을 할지가 보이지 않으니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러니 계속 전선을 대선의 연장전 구도인 ‘윤석열이냐 이재명이냐’로 친다. 문제는 내년 총선이 윤석열 정부의 중간 심판 구도로 치러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재명이 싫은 표’만 긁어모아서는 승리할 수 없다. ‘우리가 좋아서, 우리가 필요해서 찍겠다’는 사람이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 이 이유를 못 만들어주고 있다. 문제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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