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택 작가, 한국 미술시장의 히어로 되다
  • 심정택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3 09: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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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잇달아 최고가 경신하며 명성 드높여…불황으로 갤러리에서 외면받는 블루칩 작가들과 비교

1990~2000년대 시작된 홍경택 작가(55)의 펜(Pens), 서재(Library), 펑케스트라(funk+orchestra), 모놀로그(Monologue) 연작은 다채롭고 선명한 색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연필이나 책 혹은 일정한 패턴이 밀도 있게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는 서재 시리즈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1932~2016)의 《장미의 이름》이나 에코에게 영향을 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1899~1986)의 단편 소설집 《픽션들》에 나오는 ‘바벨의 도서관’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홍경택의 작품은 동시대 대중문화의 상징과 아이콘, 미술적 장치들과 스토리를 결합해 깊은 사고를 유도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형형색색의 필기구가 로켓처럼 캔버스 뛰쳐나와

홍경택 작가가 언론과 대중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국내 미술시장(고미술 포함)이 잠시 활황기에 접어든 2007년이었다. 당시 설립 7년밖에 되지 않는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원에 거래되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며칠 후 홍경택 작품 《연필(Pencil) 1》이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인 약 7억8000만원에 낙찰되면서 국내 언론의 모든 문화면을 장식했다. 홍콩은 소더비가 1973년에 사무소를 열 정도로 글로벌 경매사들의 전통적인 아시아 거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미술계는 없지만 미술시장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요 시장 중 한 곳이다.

이후 화면 전체에 들어찬 형형색색의 수많은 필기구가 로켓처럼 캔버스를 뛰쳐나오려 하는 《펜》 연작은 홍경택의 시그니처 작품이자 브랜드가 됐다. 11월에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00호 크기의 《서재》가 90만7500홍콩달러(약 1억838만원)에 낙찰됐다. 15호 크기의 《연필》은 66만7500홍콩달러(7971만9000원)에 낙찰됐다.

2008년 5월에는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 컨템포러리 아트’ 경매에서 홍경택의 작품 《서재2》가 6억1200만원에 팔려 한국 출품작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당시 화단 일부에서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 가격에 거품이 낀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비난에 앞장선 일부 중견 작가는 대리인을 내세워 국내 경매시장에서 자신의 신작을 직접 거래했다. 비난의 요체는 진정한 국제 경쟁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2019년 11월 홍콩 크리스티에서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우주 5-IV-71 #200》이 약 132억원에 거래됐다. 당시 국내 언론에는 김환기 작품에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애돌프 고틀리브(Adolph Gottlieb·1903~1974)의 영향이 보인다는 비판적인 보도도 있었다. 이후 컬렉터는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미술전문지 ‘아트뉴스(ARTnews)’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세아는 2022년 서울에 문화예술공간을 개관, 《우주 5-IV-71 #200》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를 열기도 했다. 자국의 작고 작가 작품을 내국인이 샀으니 국내 거래일까. 김환기는 말년을 미국 뉴욕에서 보냈다. 작품 대다수가 미국에서 거래됐다.

2013년 5월27일 홍콩 크리스티 이브닝세일에서 홍경택의 《연필(Pencil) 1》이 2007년에 이어 663만 홍콩달러(약 9억7100만원)에 재판매되며 기록을 경신했다. 홍콩 미술시장은 중국 시장과 별개가 아니다. 중국의 과도한 거래세 탓에 중국 갤러리들이나 주요 작가들은 대부분 홍콩에 계좌를 가지고 있다. 2023년 10월 홍콩 경매에서는 모딜리아니의 《폴레트 주르댕(Paulette Jourdain)》이 2억7300만 홍콩달러(약 453억원)에 낙찰됐다. 홍콩은 여전히 아시아 미술시장의 맹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글로벌 미술시장의 수도인 미국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는 지난 11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1932년에 그린 《시계를 찬 여인》이 1억3930만 달러(약 1820억원)에 낙찰됐다. 올해 전 세계 경매시장에서 최고가에 팔린 작품이 됐다. 이렇듯 좋은 작품은 불황 앞에서도 굳건하다. 피카소는 사망한 지 불과 4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렘브란트(1606~1669)의 작품이 350여 년간에 걸쳐 평가돼 왔듯이 피카소 작품도 수백 년간에 걸쳐 평가될 것이다.

2007~2010년, 국내 메이저 갤러리와 전속 관계인 소위 블루칩 작가들이 대부분 외면받거나 기타 원인으로 활동을 접었다. 컬렉터는 재판매 기회를 상실했고 작가는 작품 가격 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홍 작가도 이런 문제를 지적한다. “국내 대부분의 메이저 상업 갤러리들은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작가의 이름만 활용하고 인큐베이팅에는 관심도 없다. 지난해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가 서울에 진출하면서 외국 작가에 대항해야 되니 관심 갖는 정도가 전부다.”

❶ BTS 200x200cm acrylic & oil on linen 2019❷ Pens-Chaos 2015 oil on linen 130x162cm ⓒ홍경택 작가
BTS 200x200cm acrylic & oil on linen 2019 ⓒ홍경택 작가
❶ BTS 200x200cm acrylic & oil on linen 2019❷ Pens-Chaos 2015 oil on linen 130x162cm ⓒ홍경택 작가
Pens-Chaos 2015 oil on linen 130x162cm ⓒ홍경택 작가

작품력 인정받으며 꾸준히 가격 다져온 게 비결

하지만 홍경택 작가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홍경택의 작품은 2000년대 초만 해도 국내 화랑가에서 점당(100호 기준) 1000만원 미만에 거래됐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작품력을 인정받으며 가격을 다져온 결과 20여 년 만에 10배 이상 오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2013년에 약 10억원에 거래된 《연필(Pencil) 1》의 최초 판매가는 불과 3000만원이었다.

홍경택의 작품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영상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작품 하나에 수년을 공들인 2차원 평면의 회화가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시대를 기록하고 메시지를 발산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예술사학자인 아놀드 하우저는 저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예술을 사회의 환경 변화 분야와 경제활동의 일환으로 보았다. 예술을 특정 분야로 제약하기보다 더욱 많은 대중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50대 작가군에서는 국가대표급으로 평가받는 홍경택은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부띠끄 호텔 로비와 라운지, 별도의 갤러리 공간에서 두 달여 개인전을 여는 등 글로벌 시장으로의 재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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