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로 옮겨간 ‘★(별)들의 전쟁’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1 14: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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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한화오션, 중장 출신 부사장 영입으로 역대급 수주전 대비
KDDX 사업, 전략사 창설 등 굵직한 이벤트 앞두고 복잡해지는 셈법

계급장이 ‘별’로 표시되는 각 군 장성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적에 대응해 싸우는 것 못지않게 내부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한다. 맡는 보직이나 성과, 평판,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군복을 벗을 수도 별 하나를 추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별들의 불꽃 튀는 경쟁이 재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전투함·잠수함 등 군함을 만드는 양대 민간기업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최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3성 장군(중장) 출신 인사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각자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전략 수립에 매진하는 중이다.

ⓒ일러스트 정찬동
ⓒ일러스트 정찬동

 

해군 3스타 출신 한화오션 부사장, 활동 본격화 

한화오션이 지난 8월 영입한 정승균 전 해군 중장(해군사관학교 44기)은 합참 전략기획부장, 해군 잠수함사령관,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등 합참과 해군 내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해사 44기 수석 입학 후 미국 해사 파견 생도로 선발돼 4년간 유학한 이력이 있어 영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이 정승균 부사장 영입을 두고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해외사업 강화다. 정 부사장에게 부여한 직책도 특수선(군함)사업부 해외사업단장이다. 글로벌 특수선 시장에서 수주전을 지휘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 부사장의 쓰임새가 해외사업에만 국한되진 않을 듯하다. 한화오션이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 준장(1성 장군)이나 소장(2성 장군) 출신을 스카우트한 적도 있지만, 이번 ‘중장 출신 부사장’은 역대 최고위급 영입이자 보직 부여다. 해외사업 강화 이상의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추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화오션 관계자도 “정 부사장의 경력이나 역량이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며 “주변 평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스카우트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도움’이라는 표현은 한화오션의 정 부사장 영입 두 달 후인 10월 김종배 전 육군 중장(육군사관학교 36기)을 특수선사업부 부사장 자리에 앉힌 HD현대중공업도 똑같이 사용했다. 방위사업 전반에 전문성을 갖춘 김 부사장이 회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고 HD현대중공업 측은 설명했다. 

HD현대, 육군 3스타 출신 부사장 영입으로 ‘맞불’ 

김종배 부사장 역시 합참 합동작전과장과 작전1처장,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더구나 HD현대중공업의 육군 출신 인사 영입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함정 운용에 있어 육·해·공군 통합방위의 개념이 과거보다 더욱 중요해졌다”며 “군의 연합훈련 시스템 확립과 고도화를 이끌었던 김 부사장이 우리 회사에 통합방위 개념을 접목하고 강화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각각 ‘해외사업’과 ‘통합방위 개념’ 키워드를 꺼내들었으나, 본질은 경쟁에서의 승리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어떤 상황을 맞았기에, 또 무슨 도움을 원하기에 중장 출신들을 앞세워 혈투를 예고하고 있는 걸까. 재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민간 방산기업이 군 출신을 영입하는 목적은 군납 수주를 원활히 확보하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군함 수주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역대급 영입으로 정보력과 로비력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양사 앞에는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 전략사령부 창설, 캐나다 해군 신형 잠수함 도입 계획 등 회사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굵직굵직한 수주 건이 놓여 있다. 

군함 수주전의 트랙에 올라가 먼저 달리기 시작한 ‘별’은 정승균 한화오션 부사장이다. 한화오션은 11월5일 캐나다 기업 4곳과 잠수함 사업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캐나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는데, 이 MOU 체결을 정 부사장이 주도했다. 캐나다 해군은 노후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3000톤급 신형 잠수함 8~12척을 해외로부터 도입할 계획이다. 사업 규모는 총 60조원에 달한다. 이르면 2026년 계약자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중공업도 해당 사업 수주를 준비하고 있다. 

정 부사장은 이날 MOU 체결 현장에 얼굴을 비치며 “한화오션은 기술력과 도덕성을 갖춘 대한민국 대표 방산기업으로서 국익과 우방의 안보 수호를 위한 최적의 솔루션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도덕성’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과거 기밀자료 탈취로 법적 처분을 받은 사실을 외부에 환기하는 공격적이고 전략적인 표현이다. 그는 10월19일 항공우주전시회인 ‘서울 아덱스 2023’에도 참석해 다양한 국내외 군 당국자와 접촉했다.

정승균 한화오션 부사장(왼쪽)이 캐나다 기업 제이 스퀘어드 테크놀로지의 톰 켈리 COO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오션 제공
김종배 HD현대중공업 부사장(왼쪽)이 육군교육사령관(중장) 시절인 2014년 11월26일 정영선 당시 대전과학기술대 총장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KDDX 수주전, ‘별(부사장)들의 전쟁’ 될 듯 

김종배 HD현대중공업 부사장은 정승균 부사장과 달리 아직 이렇다 할 공개 행보에 나서지 않고 있다. 향후 KDDX 사업, 전략사령부 창설 등이 본격화하면 김 부사장의 역할과 존재감도 커질 전망이다. 

KDDX 사업과 전략사 창설은 양사의 중장 출신 부사장 영입 목적이 완전히 일치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실전 배치하겠다는 목표로 추진 중인 사업이다. 방위사업청은 내년에 KDDX 사업을 발주할 예정이다. 이미 수주전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2파전으로 흐르고 있다. 함정 건조는 ‘개념 설계’ ‘기본 설계’ ‘상세 설계·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등 순서로 진행되는데,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각각 개념 설계와 기본 설계 입찰자로 선정된 바 있다. 후속 단계인 상세 설계·선도함 건조 계약을 따내는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된다. 

지금으로서는 HD현대중공업이 감점 1.8점을 적용받고 있어 한화오션이 다소 유리한 상황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KDDX 기본 설계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한화오션의 개념 설계 도면을 빼돌린 혐의로 2020년 9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로 HD현대중공업은 2025년 11월까지 모든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 감점을 적용받게 됐다. 

감점 탓에 HD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 울산급 호위함 배치(Batch)-Ⅲ 5, 6번함 건조 사업(7917억원 규모)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에 0.1422점 차이로 밀려 고배를 마셨다. 불복한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에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가 기각됐다. 이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방사청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도 기각돼 사면초가에 몰렸다. 법원의 가처분신청 기각과 김 부사장 영입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HD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난국을 타개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플러스 알파’의 대안이 절실했다. 그래서 군의 주류인 육군 출신에 합참 경력도 탄탄한 김 부사장 영입이 한화오션의 정 부사장 영입보다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들어 육군 출신들은 군 관련 요직을 독식하며 승승장구해 왔다. 현재 국방부 장차관, 방사청장이 모두 육사 출신이다. 김 부사장은 육사 기수로 신원식 국방부 장관(37기)보다 1기수, 김선호 국방부 차관(43기)보다 7기수, 엄동환 방사청장(44기)보다 8기수 앞선다. 

 

끝 모를 무한경쟁에 우려도 감돌아 

전략사 창설과 관련이 깊은 합참의장은 HD현대중공업이 김종배 부사장을 영입할 당시 육군(김승겸·육사 42기)이었다가 10월29일 해군으로 전격 교체됐다. 10년 만의 해군 출신 합참의장, 53년 만에 중장에서 대장(4성 장군)으로 진급시키는 동시에 합참의장 발탁 등 인사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 세간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공교롭게도 신임 김명수 합참의장(해사 43기)은 정승균 한화오션 부사장과 군 생활 대부분을 함께한 해사 1기수 선배다. 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유사시에 대응하고자 전략사 창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창설 목표 시점은 내년이고, 미사일부대와 사이버작전사령부, 우주작전부대, 전자기스펙트럼작전부대, 특수임무작전부대, F-35A 전투기 및 잠수함 부대 등 육·해·공군 병력을 아우르게 된다. 군은 전략사를 국방부와 합참 중 어느 예하로 둘지 검토 중이나,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는 방향이 유력하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민간 방산기업들은 전략사 창설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창설 이후 수주전에서 밀리지 않도록 ‘전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란 이름을 걸고 벌어지는 별들의 전쟁은 앞으로 더욱 격화할 예정이다. 업계와 군 일각에선 국가 안보에 관한 사업을 둘러싸고 민간 방산기업들이 과도한 수주 경쟁을 벌이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HD현대중공업의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의 한 관계자는 7월27일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한화오션과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수주할 수 있을지도 안갯속”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그는 “특수선 사업은 국가 전략적으로 공공재를 양산하기에 시장에서 무한경쟁하는 쪽으로만 맡겨두지 않는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안정되고 물량 배분도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진단이 무색하게 양사는 중장 출신 부사장들을 속속 스카우트한 후 끝 모를 무한경쟁 모드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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