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을 출마” 원희룡의 승부수…이재명과 맞붙어 한동훈 밀어내기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1 10:0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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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출마로 ‘차기 주자’로서 존재감…‘이재명 가두는’ 효과도
“이재명과 정면승부, 尹에 빚지지 않겠다는 선언”…한동훈과 차별화 전략

“원희룡이 치고 나가고 있다.” 최근 여권에서 부쩍 이 남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으로 여권의 ‘총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여당에서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간판’으로 내세워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두 사람이 내년 총선의 ‘키 플레이어’로 떠오른 가운데, 특히 원 장관은 최근 여권의 다른 인사들과는 차별화되는 공격적인 행보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원 장관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주목도가 높아진 이유는 ‘이재명 대 원희룡’의 빅매치가 내년 총선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 장관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이자 보수정당의 대표적 험지인 인천 계양을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당초 1기 신도시 재건축·재개발 현안이 있는 경기 고양갑에 출마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맞붙는 시나리오도 검토됐으나, 원 장관이 ‘험지 출마’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신설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은 2010년 보궐선거 단 한 번을 제외하면 계속 민주당 계열 후보가 당선된 지역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3·9 대선에서 낙선한 후 그해 치른 6·1 보궐선거에서 계양을에 출마해 초선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시사저널 박은숙·임준선

‘윤석열 대 이재명’ 아닌 ‘원희룡 대 이재명’

취재에 따르면, 실제 원 장관은 최근 당 지도부 핵심 의원을 만나 인천 계양을 출마와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원 장관은 이 자리에서 계양을 출마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 장관은 이후 공개 석상에서도 이 같은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12월4일 개각 발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어떤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경북·대구 장로총연합 지도자대회’에 참석해서도 “딱 한 사람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을 붙잡고 제가 헌신하고 희생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상대로 한 ‘자객 출마’로 총선 역할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한 셈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원 장관은 왜 이 대표와의 맞대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을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원 장관은 이 대표와의 승부로 ①존재감(험지 출마로 차기 주자 각인 효과) ②실익(이 대표를 묶어두는 전략적 효과) ③차기(대권 경쟁자인 한 장관보다 앞서는 효과) 효과 등 다양한 득점을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표와의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여권의 확실한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승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빚지지 않고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원 장관은 자신의 승부수가 내년 총선의 구도를 바꾸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의 구도였던 ‘윤석열 대 이재명’을 내년 총선에서 ‘원희룡 대 이재명’으로 바꿔낸다면 윤 대통령과 여권의 부담은 덜고, 자신의 존재감은 대선주자급으로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공천 문제도 매듭을 스스로 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지역구를 두고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 갈등을 빚는 일도 피했다. 원 장관은 지난가을 즈음부터 총선은 물론 그 이후까지 내다본 소규모 캠프를 극비에 꾸리고 다양한 시나리오 등을 검토하며 차분히 준비해 왔다는 후문이다. 즉 지금의 움직임이 즉흥적 결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심사숙고해 내린 정무적·전략적 판단이라는 뜻이다. ‘여권 잠룡’ 원희룡이 ‘야권 주자’ 이재명을 겨냥해 노리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효과, 그 셈법과 속내는 무엇일까.

 

친윤·중진과 차별화되는 행보로 존재감

원 장관이 당초 출마 지역구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서울 양천갑이나 경기 고양갑이 아닌, 상대적 험지인 인천 계양을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가장 먼저 얻은 정치적 자산은 ‘존재감’과 ‘언론의 주목’이다. 이 두 가지 자산은 바로 ‘차별화’에서 나온다. 지난 한 달여간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총선 승리를 위해 주류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며 국민의힘 지도부·친윤·중진의 험지 출마나 불출마를 요구해 왔지만, 그 어떤 메아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여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가 바로 ‘헌신’과 ‘희생’인데, 원 장관은 이재명 대표와 맞붙겠다고 먼저 나서니 단연 차별화되는 존재감을 갖게 됐다. 인 위원장이 “(험지 출마에)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을 정도다. 여권에선 원 장관의 결단이 지도부·친윤·중진이 전향적 태도를 보일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원 장관은 최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재명 대 원희룡’이라는 거물급 구도가 성사될 기미가 보이니 여론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고, 덩달아 언론의 주목도도 높아지는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원희룡’ 검색량을 ‘김기현’과 비교해 보면, 원 장관은 최근 압도적인 검색량을 기록 중이다. 원 장관이 개각 발표 후 기자간담회에서 계양을 출마 의사를 내비친 12월4일 원희룡 검색량은 63으로, 김기현(24)보다 2.6배 많았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더 알려진 12월5일에 원희룡 검색량은 100(일 최대 검색량이 100)으로, 김기현(25)보다 4배 많았다. 지금 여론이 가장 주목하는 한동훈 장관과 비교해 봐도 12월5일 기준 ‘한동훈 37’ ‘원희룡 22’로 크게 뒤지지 않는다. 

물론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다. 여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그가 이 대표와의 정면승부에서 승리한다면, 단연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된다. 특히 윤 대통령에게 빚지지 않고 승리한다는 점은 향후 원 장관의 정치 행보에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비로소 ‘원희룡의 정치’를 펼칠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는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틀 윤석열’ 한동훈 장관과는 대조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원 장관이 멀리 내다보고 크게 정치를 하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낙선이라는 리스크도 물론 존재하지만, 질 때 겪게 될 후폭풍보다는 이겼을 때 얻게 될 정치적 자산이 훨씬 커 보이는 게 사실이다. 원 장관이 이 대표를 꺾는다면 여권에서 대권주자이자 구심점으로 정치적 공간이 확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서는 계양을이 보수정당의 험지이지만, 판세가 꼭 원 장관에게 마냥 불리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만큼 총선을 앞두고 재판 결과에 따라 판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또 설사 낙선하더라도 원 장관의 출마로 이재명 대표가 지역구에 묶여 전국 유세 등에 제약을 받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총선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이낙연 민주당 후보에게 발이 묶였던 상황을 역으로 재현하겠다는 셈법이다. 다만 여권에서는 이 대표가 계양을에 출마하지 않고 비례대표 등으로 출마할 가능성도 대비해 ‘먼저 출마 선언을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월21일 오전 대전광역시 한국어능력 등 사회통합프로그램 CBT 평가 대전센터 개소식에 참석, 차에서 내리며 지지자와 셀카를 찍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승부수” 

원 장관의 승부수에는 한동훈 장관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셈법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언론은 물론 여권에서도 내년 총선의 핵심 인물로 한 장관을 가장 먼저 꼽고 있다. 3선 중진이자 두 번의 제주지사를 지내는 등 정치 경력만 20년이 넘는 원 장관 입장에서는 아직 ‘정치 신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 장관에게 계속 밀릴 순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이번 개각에서도 원 장관은 다른 장관과 함께 발표됐지만, 한 장관은 별도로 연말 ‘원포인트 개각’으로 특별 대우를 해주려는 ‘용산’의 모습이 연출됐다. 원 장관으로서는 결코 유쾌한 장면은 아니다. 

원 장관의 앞날에 꽃길만 펼쳐져 있지는 않다. 당장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 국민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된 구체적인 성과나 실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지금도 많은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는 전세사기와 관련해서도 대책 마련이나 피해자 구제 등에서 분명한 정치력이나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며 몸집을 키웠지만, 정작 사업은 진전이 거의 없는 상태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12월4일 정치 재개 첫 일정으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경주에서 개최한 보수 기독교 집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서도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보수 색채는 짙어지고 개혁적·중도적 색깔은 옅어진 점도 숙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한 축으로 오랜 세월 동안 보수 개혁소장파 간판으로 활약하던 그지만, 중량감이 쌓인 만큼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은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평가가 있다.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원 장관은 12월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의 소신은 보수의 혁신과 통합, 그리고 중도 외연 확장”이라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누구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썼다.  

■ 분당을 두고 김은혜 vs 박민식…“양보 없다”

연말 ‘원포인트 개각’ 가능성이 큰 한동훈 장관은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는 ‘조커’다. 전체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험지 출마는 물론 비례대표 출마, 당선이 보장되는 서울 강남권 출마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교통정리가 필요한 곳도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18대 총선 때부터 4번 출마한 부산 북·강서갑(18·19대 재선)이 아닌 경기 성남 분당을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최근 국민의힘에 전달했다. 분당을은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출마를 원하고 있어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여당에서는 경기지사 선거에 나섰던 김 전 수석이 수원으로 방향을 틀기를 원하지만, 김 전 수석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역 의원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에서 3선에 도전한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충남 천안을,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 중·영도, 이영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서울 서초을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강승규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4선인 홍문표 의원 지역구인 충남 홍성·예산 출마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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