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매도 문제, 거래 중단만이 능사는 아니다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8 17:05
  • 호수 17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1월초 정부가 갑자기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중단하기로 발표한 것은 아마 우리나라 자본시장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불공정한 공매도 거래가 많기 때문이라는 명분도 안쓰럽다. 불공정 거래가 많다면 관리를 하고 단속하면 된다. 그걸 해야 하는 게 정부의 임무일 텐데 골치 아프다고 그냥 공매도 자체를 금지해 버린 것은 결국 관리와 단속을 못 하겠다고 손을 든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들의 표심을 얻어보겠다는 생각이었더라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공매도가 금지된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가 촉구하는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이 놓여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공매도가 금지된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가 촉구하는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일단 벌어진 일이니 어떻게든 수습해 주식시장을 빨리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있다. ‘주식 빌려주는 시장’을 따로 만드는 일이다. 공매도 거래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어떤 종목이든 90일까지만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다시 주식을 사들여 갚아야 한다. 그런데 기관과 외국인들은 그 제한이 없다. 그래서 정부는 기관과 외국인도 90일 후에는 주식을 사들여서 갚도록 하향 평준화를 해버렸는데 잘못된 처방이다. 그렇게 해도 기관과 외국인은 90일 후에 어딘가에서 빌려 주식을 갚고 원래 공매도하던 주식은 계속 공매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왜 개인들은 90일까지만 공매도를 할 수 있게 제한했는지 그 유를 알아야 한다. 주식을 빌려 파는 공매도의 특성상 주식을 빌려주는 쪽 있어야 한다. 들은 시장에 위험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그 주식을 회수해 매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나 기관이 빌려간 주식은 회수 요청을 하면 언제든지 돌려줄 수 있다. 거래 상대방 많은 외국인이나 기관은 연기금이든 대주주로부터든 어쨌든 ‘다른 곳에서 급히 빌려’ 돌려주면 되기 때문다. 그런데 개인들은 ‘다른 곳에서 급히 빌려’ 돌려주는 게 어렵다. 갑자기 주식을 어디서 빌려오겠는가 말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국인이나 기관이 거래하는 ‘주식 빌리는 곳’을 개인들에게도 공개하고 공유하도록 하면 된다. 어려울 것은 없다. 주식을 빌려주려는 의지가 있는 주식 보유자는 무조건 증권예탁결제원이나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주식 빌려주는 시장’에 빌려줄 물량으로 등록하고 호가창에 올려놓도록 하고, 주식을 빌리려는 공매도 투자자들은 개인이든 외국인이든 계좌를 개설해 그 주식 빌려주는 시장의 호가창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주식시장에서 매수와 매도가 일어나듯 주식 빌려주는 시장에서 빌려줌과 빌림이 일어나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개인투자자들도 자기가 빌려 공매도한 주식을 원래 소유자가 급하게 상환하라고 하면 그 ‘주식 빌려주는 시장’에 가서 요구받은 수량을 구해 돌려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관과 외국인은 공매도용 주식을 더 쉽게 빌릴 수 있다는 차별도 없앨 수 있고 공매도 기간의 차이에 따른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다. 주식을 빌려가면서 물어야 하는 이자도 빌려주는 쪽에서 정하고 이자가 싼 물량부터 호가를 잘 쌓아놓으면 이자가 싼 물량부터 팔려나갈 테니 어려울 게 없다.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공매도가 밉고 싫다고 그냥 공매도를 없애버린 가슴 아픈 사건이긴 하지만 그걸 계기로 공매도용 주식이 모든 투자자에게 골고루 평등하게 전자식으로 배분되는 세계 최초의 주식 임대 시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br>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