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조롱 보며 출근” 현수막 공해에 지쳐가는 시민들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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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변·가로수 곳곳 정당 현수막 점철…“서민에 무슨 도움되나” 
‘현수막 공해 방지법’ 27일 법사위 통과…내년 1월 적용 전망
1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시사저널 강윤서
1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시사저널 강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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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 앞은 ‘현수막 전쟁’이 한창이다. 국회 입구를 덮은 현수막들은 가벽을 세운 듯 시야를 막는 ‘공해’가 됐다. 출퇴근길, 등굣길 등 일상 곳곳에서 ‘말의 전쟁’을 지켜봐야 하는 시민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한다.   

27일 오전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 지하철역을 빠져 나오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단연 현수막이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면 사실상 사방이 현수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진보단체나 야당이 “윤석열 탄핵”을 내걸면 보수단체 또는 여당은 정부 정책과 예산 편성으로 맞불을 놓는다. 가로수와 도로 표지판 기둥은 조롱과 비판, 욕설·비하로 점철된 현수막 전쟁의 최일선이 된 지 오래다.  

횡단보도 신호를 대기하면서 건너편을 보면 ‘탄핵’, ‘굴욕’, ‘살인’, ‘깡통’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눈에 박힌다. 오른쪽 측면과 왼쪽 옆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여 개의 현수막을 내건 각 단체들은 빨강, 파랑, 초록 등 눈의 잘 띄는 색깔을 활용해 비방 내용을 더욱 강조한다. 

1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시사저널 강윤서
1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시사저널 강윤서

시민들은 현수막에 잠식 당한 일상에 피로감을 토로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이아무개(남·40)씨는 “출근길 역에서 나오면 현수막을 끝도 없이 지나칠 때가 있다”며 “안 그래도 피곤한 아침에 조롱·비방하는 글을 보면 기분이 좋진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조은우(여·39)씨는 “너무 과하다”며 “똑같은 말을 여러 장 만들어서 (거리에) 도배하니까 보기가 불편하다. 최대한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버스를 타고 마포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한 40대 직장인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예산 확보·절감한 걸 자랑하려고 막대한 돈을 들여 경쟁적으로 현수막을 내거는게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며 “그 돈으로 생산적인 다른 걸 하는게 서민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송파구 주민 김유경(여·31)씨는 “미관을 해치는 문제가 크다”며 “특히 외국인이 많이 오는 관광지는 (현수막이) 좀 철거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1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시사저널 강윤서
12월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 시사저널 강윤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당과 시민단체의 현수막 내걸기 경쟁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7일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정당 현수막 설치 개수를 읍·면·동 단위별 2개 이내로 제한하고, 설치 장소를 보행자·교통수단의 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선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앞서 행정안전위원회는 정당 현수막 난립을 막기 위해 해당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법사위에서 읍·면·동별 면적 차이로 인해 일률적인 설치 개수 제한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처리가 지연됐다. 

이에 행안위는 이날 읍·면·동 면적이 100㎢가 넘는 경우 1개의 현수막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도록 수정안을 제시했다. 해당 개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28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1월부터 현장에 적용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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