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총선에 정치 테러…박근혜 “오버하지 마세요”
  • 전영기 편집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5 09:05
  • 호수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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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흉기 피습은 충격적이다. 테러를 자행한 후 범인의 일성이 “이재명을 죽이려 했다”(경찰 발표)였고 실제 이 대표는 “경정맥 손상…대량 출혈 우려”(민주당) 상태에서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수술 치료를 받았다. 이 땅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한 셈이다. 이런 극단 정치를 계속 두고 볼 것이냐 하는 묵직한 질문이 유권자들에게 떨어졌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성구도 있지만 집권을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정치라면 그게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혹은 무정부 상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  

부산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중 흉기로 습격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중 흉기로 습격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땅에서 정치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하나

세상을 놀라게 한 유사한 유혈 테러는 1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벌어졌다. 괴한은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의 오른쪽 뺨에 길이 11cm, 깊이 0.5~1cm의 자상을 입혔다. 박 전 대통령의 얼굴엔 아직도 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 끝에 일부 흉터가 남았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의 유일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유영하 변호사는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이 터진 1월2일, 유튜브 시사저널TV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세상이 처음 듣는 얘기를 꺼냈다. 사건이 터진 날 병원에 갔는데 자정 넘겨 마취에서 깨어난 박 전 대통령이 주변 참모들의 걱정을 듣고 한 첫 번째 말이 “오버하지 마세요”였다는 것이다. 

치명상에 가까운 정치 테러를 당한 후 최초 발언이 ‘오버하지 말라’였다니 박근혜 전 대통령답다는 생각이 든다. 유영하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그게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세가 취약한) 대전은요?”라는 언급은 “오버하지 마세요”라고 한 다음에 나온 얘기였노라고 기억했다.   

“오버하지 마세요”는 정치 테러를 당한 2024년 한국 총선에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각 당의 지지층, 유권자들이 자중자애해야 할 때다. 말과 행동이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을 필요가 있다. 사실 카톡, 유튜브, 페북, 인스타그램, X 등이 지배적인 매체가 되면서 개개인이 상식과 합리와 동떨어지고 자기가 듣고 싶은 정보만 편식하는 현상이 극성하고 있다. 과거엔 정치인과 정치집단에 한정됐던 거짓과 조작의 문제가 지금은 유권자 전반에 퍼져 나가고 있으니 이 문제에 대한 일대 각성과 대안이 요구된다. 이재명 대표 공격자도 배후나 공범이 없다면 무책임하게 펼쳐지는 외골수 정치 유튜브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묻지마 팬덤’이나 ‘외로운 늑대’들을 지그시 밀어내고 제압할 ‘상식과 합리’로 무장된 다수 인구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테러 피해자가 소속한 정당이 거의 대부분 압승

둘째, 정치인과 정당, 국회 등 정치 공급자들이 과장해서 말하고 과잉 반응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 이 대표 테러 사건이 나자마자 민주당의 홍익표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언행 절제령을 내리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원들에게 “내가 피습당했을 때처럼 생각해 달라.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고 발언한 것은 상황에 알맞고 적절했다. 그런 조치로 인해 양당의 극단파들, 즉 습관성 과잉행동증후군 환자들의 악성 영향력이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었다. 한국 정치는 폭력과 테러가 일상화된 정치의 길목에 위태롭게 서있다. 생각하는 유권자와 반성하는 정치인이 다수가 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아수라의 세계로 빨려들 것이다. 

마지막 하나. 정치 테러로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유념할 게 있다. 테러 피해자나 희생자가 소속된 정당이 거의 예외 없이 선거에서 압승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이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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