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배터리·철강 기업 울고 빅테크·5G·정유 기업 웃는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30 07:35
  • 호수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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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 가시권에 들면서 국내 기업 셈법도 복잡해져

1월15일(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공화당의 첫 번째 대선 경선(코커스)이 열렸다. 이변이 없는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점치는 시각이 많았다. 뚜껑을 여니 분위기가 더했다. 트럼프는 61.4%의 지지율로 2위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12.0%)와 3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10.7%)를 누르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막연하게만 여겼던 ‘트럼프 2.0’ 시대의 출범 역시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뿐 아니라 국내 증시도 요동을 쳤다. IT와 정유, 대북 경협주 등 트럼프 수혜주들은 주가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바이든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정책 효과를 기대했던 전기차와 이차전지, 신재생에너지 관련주들의 주가는 경선 이후 내리막길를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기업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라면서 “트럼프 재집권 여부에 국내 산업계 지형 역시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사진은 2022년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연설을 마친 후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의 첫 경선 승리 후 증시 요동

국내 증권사들도 현재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계산에 여념이 없다. 관련 보고서도 최근 잇달아 발표됐다. 유진투자증권의 ‘미국 대선과 산업정책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미 대선 이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자동차 연비 규제 등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기존 정책이 유지되거나,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관련 정책이 폐지되거나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례로 오바마 행정부 때 배기가스 배출 벌금을 5.5달러에서 1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 이 규제가 잠깐 사라졌다가 바이든 행정부 때 부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배기가스나 연비 규제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미국의 환경 및 연비 규제는 연평균 5~10%씩 강화됐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1%와 비교된다. 때문에 트럼프 2기 내각 출범 시 배기가스 및 연비 규제는 철회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이런 기조를 엿볼 수 있다. 그는 “CAFE(기업평균연비규제)가 강화되면서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2000억 달러의 비용을 지불했다. 관련 일자리도 11만7000여 개나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RA 등과 관련해서도 “전기차는 사기다. 모든 전기차는 중국에서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GM, 포드를 제치고 판매량 기준 첫 2위를 기록했던 현대차나 기아차에는 트럼프 2기가 악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내 공장 증설 계획도 발표한 상태여서 우려가 더하다. 물론 현대차그룹 측은 “대응책이 마련돼 있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우리는 내연기관부터 하이브리드, 친환경차까지 모든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미국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펼치는지 따라 이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트럼프 재임기간이었던 2019년과 2020년 미국 전기차 시장은 각각 -13%와 -3% 역성장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21년과 2022년 각각 97%, 52% 성장한 것과 비교된다. 그렇다고 내연기관 차를 밀기도 애매하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차체가 크고 연비가 낮은 고급차나 대형 SUV 판매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픽업 비중이 높은 미국 완성차 업체에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차전지(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와 신재생에너지(한화솔루션, 씨에스윈드 등) 등 기업 역시 ‘트럼프 2.0’ 시대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배터리 3사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IRA에 발맞춰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거나 건설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함께 미국 테네시에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가동 예정일은 올해 1분기다. SK온과 포드가 합작해 조지아와 테네시에 건설 중인 공장과 삼성SDI-스텔란티스 합작 공장 역시 2025년 가동 예정이다. 이들 회사가 미국에 투자한 돈만 45조원 규모여서 대선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정학적 변화 따라 투자도 달라져야

재계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도 공언한 대로 IRA 등의 폐기를 강행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위치한 곳이 대부분 인디애나와 켄터키, 테네시주 등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공약을 이행해 전기차나 배터리 관련 사업의 실질적인 위축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도 철강 업종 역시 트럼프 2기 집권 시 피해가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시 10%의 보편적 관세 부과를 주장해 왔다. 반덤핑과 상계관세 등으로 여러 차례 철퇴를 맞았던 철강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실제로 전경련(현재 한경협)이 지난 30년간(1998~2018년) 국내 주요 산업별 수출 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출 성장률 변화 폭이 가장 큰 산업이 철강 업종이다. 대선 다음 해에 수출 성장률이 떨어진 분야도 철강이어서 우려가 나온다.

이들 기업과 반대로 트럼프 재집권 시 수혜가 기대되는 업종도 있다. IT(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빅테크(네이버, 다음, 넷마블), 정유(현대오일뱅크, 에스오일, GS칼텍스 등), 5G(케이엠더블유) 기업이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각각 반독점과 친환경을 이유로 이들 기업의 성장을 규제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면 빅테크 관련 규제 완화와 함께 기존 에너지 기업 친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원유운반선 등 선박 발주가 증가하면서 조선(삼성중공업, HD현대, 한화오션 등) 업계 역시 일정 부분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의 5G 서비스 시장은 2020년부터 연평균 2.5%씩 성장해 왔다. 2026년 시장 규모는 504억 달러(약 67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대북 경협주가 다시 떠오를지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아이오와 코커스부터 최근의 뉴햄프셔 경선까지 트럼프 관련주들의 희비가 엇갈린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의 전략 역시 이런 지정학적 변화에 따라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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