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보다 경기방어주에 당분간 주목해야 [재테크_금융]
  • 조홍규 前 삼성자산운용 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6 11:00
  • 호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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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틸리티·금융·통신·커뮤니케이션 등 1월 수익률 가장 높아
고금리 환경 속에서도 기업 가치 변화 제한적

희망찬 기대 속에 푸른 청룡의 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매년 1월에는 자연스럽게 ‘희망찬’ ‘밝은 새해’ 같은 미사여구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2024년 1월 한국 증시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첫 거래일의 반짝 상승을 뒤로하고, 8거래일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종합주가지수가 한때 2400을 위협받기도 했다. 지난 연말부터 저가매수 기회를 찾던 투자자는 연초 한국 증시 부진과 상대적으로 강세를 이어간 미국, 일본 등 선진 주요 증시의 상승 랠리 사이에서 진입 시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증시의 무기력한 침체 반복이 투자심리를 냉각시켰고, 개인 매도가 하락 폭을 더욱 키우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나라 코스피는 1월 한 달 동안 5.9% 하락했다. 코스닥 역시 5.5% 하락하는 등 한국 증시는 전반적인 약세 흐름을 보여줬다. 반면 세계 증시는 미국 증시의 강세에 힘입어 1월 한 달 동안 1.5% 상승했다. 특히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S&P500 기준으로 3.3% 상승하는 등 한국 증시와 디커플링(탈동조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같은 기간에 중국 증시의 상하이지수는 4.9% 하락하며 한국 증시와 커플링(동조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한국과 미국 증시의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월 한 달 동안 한국과 미국 증시의 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미국과 한국 증시 디커플링 확대, 왜?

한국 증시의 디커플링에 영향을 미친 대내적인 원인은 기업 실적 부진과 이차전지 업종의 불확실성이 꼽힌다. 삼성전자와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간판 기업들의 기대에 못 미친 실적이 한국 증시 부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15년 만에 6조원대로 떨어지고, 증권사 전망치보다 1조원 하회하는 등 ‘어닝 쇼크’를 기록한 파장이 컸다. 실적 전망치 역시 대형 종목을 중심으로 일제히 하향 조정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시총 상위 20개 종목 중 최근 한 달 사이에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가 하향 조정된 종목이 14개로 전체의 70%에 달했다. 작년 4분기 실적에 대한 ‘어닝 쇼크’로 인해 상장사 전반에 대한 영업이익 전망치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차전지 업종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불거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업종 주가지수는 최근 2년래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약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전기차와 이차전지 산업의 미래 성장성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한국 증시에서는 이차전지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글로벌 증시에 비해 크게 높아 변동성 확대가 우려된다. 국내 이차전지 업종의 비중이 14%인 반면, 글로벌 전기차 업종의 비중은 1.8%에 불과하다. 다만, 국내 이차전지 업종의 12개월 선행 PER이 글로벌 전기차 업종 수준까지 내려오면서 고평가 논란이 해소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대외적 원인으로는 중국 경기 부진의 장기화를 꼽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향’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중국의 경기 부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중국 증시와 동조화된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면서 해외 직접투자도 감소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제에 대응한 소비 촉진과 3월 양회 이후 정책 대응으로 불확실성이 개선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또 다른 대외적 요인으로 장기화하는 중동 분쟁, 대만 총통 선거 이후 양안 갈등 우려, 한반도의 긴장 고조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 등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 통화 및 증시 약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 증시와 함께 연초부터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시장은 일본이다. 일본 증시는 닛케이지수 기준으로 올해에만 7.8% 상승하며 전 세계 주요 시장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 강세 요인은 NISA(Nippon Individual Saving Account) 제도 변화에 따른 소액투자 활성화와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의 합작품이다. 국내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제도와 유사한 일본의 NISA 투자한도가 올해 1월부터 2배 이상 상승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지난 12월 일본 도쿄 물가상승률은 2.4%로 전월의 2.7%보다 낮아졌다. 물가상승률이 하락하면서 일본 통화정책 정상화 시점이 늦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졌고, 지난해 말에 강세를 나타냈던 엔화도 재차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증시 강세의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주주 환원 정책을 들 수 있다. 일본 주식의 배당수익률은 2024년 1월 기준 2.2%로 국내 주식의 2.0%보다 높다. 일본 금리가 0~1%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채권 대비 주식시장의 매력도가 꽤 높아진 것이다. 배당수익률이 높아진 이유는 높은 수익성과 주주 환원 정책 영향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줄곧 한국 기업들의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일본을 웃돌았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일본 기업의 ROE는 9.1%로 한국의 8.6%보다 높아졌다. 배당성향도 일본이 33.6%로 한국의 23.8%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 커져

일본 주식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는 공급망 전환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대중 수출이 17.6조 엔 감소한 반면 대미 수출이 19.9조 엔 늘어났다. 대미 수출이 호전된 덕분에 기업들의 실적 기대가 개선되고 있다. 대표적인 업종이 자동차, 반도체, 일반기계 등의 업체들이다. 일본 도요타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10% 이상 올랐고, 히타치 주가도 올해 16% 이상 올랐다. 도쿄 일렉트론을 비롯한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일본 증시에 비해 유럽 증시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경기도 최악은 통과했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다. 작년 독일 경제는 3년 만에 역성장했고, 유로존 전체로 봐도 0.5% 성장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성장률 전망도 0.5%에 불과하다. 다만 몇 가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대란이 정점을 지나면서 소비자들의 기대인플레가 안정화됨에 따라 소비심리가 최악을 통과하고 있다. 물가 전망의 하향으로 ECB(유럽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이 비둘기적으로 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PMI(구매관리자지수)도 각종 악재에도 바닥 탈출 조짐을 보인다. 미국 중심으로 형성된 AI(인공지능) 테마 관련 기업인 ASML, SAP, 공급망 재편 관련 슈나이더 일렉트릭, 사프란, 지멘스 등 시총 상위주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ECB의 정책 방향성, 밸류에이션 매력 등을 감안할 때 유럽 증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한국 증시의 1월 수익률을 살펴보면 경기방어주가 선두에 나서고 있다. 유틸리티, 금융, 통신, 커뮤니케이션 등의 공통점은 고금리 환경 속에서 기업 가치 변화가 제한적이며, 수익성 지표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성장성보다는 안정성 측면에서 경기방어주가 선호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홍규 前 삼성자산운용 센터장
조홍규 前 삼성자산운용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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