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보니 죽어있어”…직접 증거없던 ‘바둑 살인’ 사건, 法 판단은?
  • 박선우 객원기자 (capote1992@naver.com)
  • 승인 2024.02.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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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이웃주민, 혐의 전면 부인…제3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 주장
法, 징역 15년 선고 “옆호실서 ‘너 죽을래’라는 말 들었다 진술”
법원 로고 ⓒ연합뉴스
법원 로고 ⓒ연합뉴스

함께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둔 이웃주민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해당 남성은 재판 과정 내내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진재경 부장판사)는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A(69)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A씨는 작년 7월8일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본인 거처에서 60대인 B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건물서 각각 홀로 생활하던 A·B씨는 사건 당일 처음 만나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A씨의 거주지에서 술자리를 이어갔다. 이날 A씨와 바둑을 뒀던 B씨는 가슴 및 목 등에 총 9곳을 찔린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일명 ‘바둑 살인사건’의 시작이었다.

수사기관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A씨가 B씨와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다 B씨를 수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는 판단이었다. 사건 당시 B씨와 함께 있던 사람이 A씨 뿐이었던 점이 판단의 주된 근거였다. 시신에 방어흔이 남지 않은 이유 또한 B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항거 불능 상태에 가까운 0.421%였던 점으로 설명된다고 봤다. 

반면 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니 사람이 죽어 있었다”면서 “너무 무서워서 휴대전화를 찾다 주인집에 올라가 ‘신고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A씨 측 변호인 또한 A씨에게서 뚜렷한 살해 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 제3자의 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점 등 이유를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 측 또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건 현장의 간접 증거 및 정황 등을 종합할 때 A씨가 B씨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먼저 재판부는 외부인 침입 가능성 관련 주장에 대해선 “그럼 범인이 피고인(A씨)은 그대로 둔 채 피해자만 살해하고 어떤 금품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건 현장에) 침입 흔적은 없었다”면서 “그렇다면 CCTV를 피해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뒤 은밀하게 빠져나왔다는 건데, 그런 가능성을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만일 (A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면 용의주도한 사람일 것이고, 범행을 철저히 계획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피해자가 혼자 있을 때가 아닌 다른 집에서 피고인과 함께 있을 때 살해했다는 것이다. 신속히 범행한 뒤 현장을 이탈한 것도 아닌, 피고인이 옆에서 자고 있는데도 화장실 세면대에서 혈흔까지 닦아냈다는 것은 (그의) 용의주도함과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실제로 범행 도구로 보여지는 흉기에선 A·B씨 두 사람의 유전자(DNA)만 검출됐고, 화장실 등에선 B씨의 혈흔을 닦아낸 것으로 추정되는 미세혈흔이 발견됐다.

여기 더해 재판부는 “해당 건물은 방음이 잘 안된다”면서 “옆 호실 거주자가 피고인이 목소리를 깔고 ‘너 죽을래. 내가 너 못 죽을 것 같느냐’고 하는 말을 듣고 섬뜩함을 느껴 처음으로 문을 잠그고 잤다고 진술했다”고 짚었다. A씨가 B씨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범행 수법이 극도로 잔인하다”면서 “피고인이 이 사건 전에도 상해치사를 비롯해 사소한 시비로 폭력을 행사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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