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한다고 통신비 내릴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0 10:00
  • 호수 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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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도입 10년 지났지만 통신요금 인하 효과 미미
폐지 여론 높으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정부가 민생을 위한 핵심 규제 완화 정책의 하나로 단통법 폐지를 발표했다.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을 낮추려면 경쟁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단통법은 이를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단통법의 공식적인 이름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 도입됐다. 당시 휴대전화 구입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정보에 밝은 일부는 저렴한 가격으로 신제품을 살 수 있는 반면, 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는 비싸게 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최근 민생 핵심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단통법 폐지 의사를 밝히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휴대폰 판매점 ⓒ연합뉴스
정부가 최근 민생 핵심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단통법 폐지 의사를 밝히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휴대폰 판매점 ⓒ연합뉴스

이통 3사 영업이익 4년째 4조원대

단통법을 시행한 것은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어느 곳에서 구매하든 같은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단통법의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 1항의 금지규정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단통법은 보조금 차별 지급이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본다.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불투명한 단말기 할인 보조금 대신에 공시지원금 제도가 도입됐고 상한선도 정해졌다. 마케팅 재원을 차별 없이 쓰게 한다는 취지로 25% 선택약정할인 제도도 도입됐다. 이통사와 일정 기간 사용 약정을 맺으면 통신비를 할인해 주는 제도다.

이 단통법을 도입한 지 10년이 지났다. 과열됐던 번호이동은 눈에 띄게 안정화됐다. 매달 100만 명을 웃돌던 번호이동 건수가 지금은 50만 명 전후다. 이용자 차별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해소됐다. 일부 소비자만 과한 혜택을 받던 역차별은 많이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하지 않았고, 뒤를 이은 문재인 정부도 단통법을 유지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용자 차별 해소라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요금을 인하하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시장이 안정되면서 대신 이통사 간 경쟁이 사라졌다. 통신 3사의 요금할인 경쟁으로 통신비가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가입 유형에 따른 이용자 차별 금지는 보조금의 가입자 획득 기능만 줄여놓았다. 번호이동 건수가 감소한 것도 사실은 경쟁 위축의 결과다. 지원금 지급 한도가 제한되면서 가입자 유치를 위해 비용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어졌다.

경쟁이 제한되자 자연스럽게 이통 3사의 점유율은 고착화했고 이익은 크게 늘어났다. 2014년 모두 합쳐 1조6000억원 수준이던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계속 증가해 2021년 이후부터 3년째 4조원을 넘고 있다. 늘어난 영업이익은 요금 인하나 서비스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불투명한 유통구조도 사실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특히 이통사의 판매장려금 차등 지급은 지금도 남아있다. 유통채널 간 차별은 오히려 심해졌고 이는 다시 이용자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고 있어 격차는 앞으로도 줄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단통법은 근본적으로 좋은 법이 아니다. 정부가 보조금 규모까지 직접 개입하고 있다. 이례적이고 과도한 규제로 기업의 자율적인 경쟁을 제한한다. 세계적으로 단말기 보조금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를 하는 나라는 드물다. 물론 일반적으로 가격 차별(price discrimination)은 소비자보다는 판매자에게 더 많은 이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보조금 상한제를 통해 경쟁을 제한하면서 소비자의 이익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단통법 시행으로 전체적인 이용자 후생이 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장에서 부족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정보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의 불이익을 줄이고 싶었다면 보조금을 평준화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었을 것이다. 경쟁 촉진을 위해서라면 보조금 한도에 대한 규제는 철폐하는 것이 낫다.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은 어려운 계층을 돕는 데 좋은 방법이 되기도 어렵다.

과도한 통신비를 줄여 국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목표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가계통신비 부담에 대한 완화 요구는 과거보다 더욱 커졌다. 정말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단통법을 폐지한다고 해서 통신사들의 시장 과점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통신사가 단말기를 싸게 팔려면 규제도 문제지만 재원이 문제다. 지원금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공동 분담하고 요금할인은 이통사가 100% 부담한다. 결국은 제조사나 통신사의 마케팅 재원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롭게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다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아니다. 단통법 폐지의 핵심은 공시지원금의 30%로 돼있는 추가지원금 상한의 폐지다. 그러나 이통사가 기본 지원금을 낮게 책정하면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단통법이 도입되던 때와 달리 현재 5G 보급률은 70%에 육박한다. 이미 과점 체제가 고착화한 시장에서 통신사들은 예전만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지금도 기본 지원금은 각 이통사가 원하는 만큼 책정할 수 있다. 2017년 단통법 개정을 통해 기본 지원금에 상한을 두는 조항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통 3사의 지원금 경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단통법 도입 이전에 10조원을 넘던 통신 3사의 마케팅 비용 합산액은 지금은 연간 7조원 수준이다.

 

경쟁 활성화 위한 대안 마련 시급

단말기 시장의 경쟁 상황도 달라졌다. 단말기 가격이 내리려면 먼저 다양한 중저가 단말기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통신사와 마찬가지로 제조사도 가격을 경쟁할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98%에 이른다. 제조사가 한정된 시장은 공격적인 가격 할인의 유인을 줄여놓았다. 현재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많은 소비자가 공시지원금보다 선택약정 25% 할인을 택한다. 선택약정 할인으로 받는 혜택이 더 클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단통법이 폐지되면 지원금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크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단통법의 목표는 투명하고 공정한 유통 환경으로 자율경쟁을 촉진하고 차별을 제거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단통법은 결국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나 목표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제4 이동통신 회사도, 알뜰폰 사업도 경쟁 활성화를 통해 통신비 부담을 줄여 소비자 후생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경쟁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부터 만드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정부는 곧 단말기 유통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단통법 폐지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당장 처리되기는 어려운 만큼 법 폐지 이전에 시행령부터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개별 제조사와 통신사에 직접 단말기 지원금 확대를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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