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유례없는 위성정당 선거, 이게 민주주의인가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6 10:00
  • 호수 179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명, 7번 약속 어기고 “위성정당 창당”…유인태는 이해찬 겨냥해 “천벌 받을 짓”
총선 후 각 위성정당 본당으로 합당, 유권자 선택권 침해하고 거대 양당체제 강화돼

한 사회의 제도는 규칙과 절차의 집합으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전개되는 틀을 제공한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거제도는 정치게임의 기본 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있느냐에 따라 선거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가령, 선거제도 자체가 왜곡되어 거대 정당이 소수 정당보다 유리하거나, 정당이 얻은 득표만큼 의석이 배분되지 않거나,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보다 불리하면 선거는 제대로 기능한다고 볼 수 없다. 공정과 비례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0년 총선부터 ‘준연동형 비례제’라는 참으로 낯설고 기형적인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만큼 배분하는 제도다.

2020년 4월 총선 전 당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대회 에 참석해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20년 4월 총선 전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앞줄 맨 오른쪽은 민주당 송영길 당시 의원 ⓒ연합뉴스

‘옥중 송영길’ ‘유죄 조국’의 코미디 같은 창당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표적이다. 각 정당의 의석수가 비례대표 선거(정당투표)의 득표 결과에 따라 먼저 정해지고, 정당은 정해진 의석수로부터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의석수를 빼고 남은 의석수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받는다. 가령 A 정당이 정당투표에서 10%를 득표하고 지역구에서 20석을 얻었다고 가정하자. 그럴 경우, 전체 300석 중 10%인 30석을 배당받는데 이 중 지역구에서 얻은 20석을 뺀 나머지 10석을 비례대표로 배분받는다. 그런데 모자란 의석수의 50%만을 비례대표로 채워주기 때문에 ‘준연동형‘이라고 명명한다. 이 제도의 최대 약점은 거대 정당들의 위성정당 창당 가능성이다. 그 이유는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에서 단 한 석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투표에서 33.4%를 득표했고, 지역구에선 163석을 얻었다. 연동형에 따르면, 민주당은 원래 100석(300석×0.334)을 얻어야 하는데 지역구에서 훨씬 많은 의석을 얻었기 때문에 비례대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런 맹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주당은 지역구 선거에만 후보를 내고, 비례구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고. 동시에 비례대표 선거에만 참여하는 ‘꼼수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민주당 위성정당이 더불어시민당이다. 마찬가지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도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총 47석 중 더불어시민당이 17석, 미래한국당이 19석을 차지했다. 반면 군소 정당인 정의당은 5석, 국민의당과 열린민주당은 각각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위성정당은 치명적인 폐해를 가져온다. 첫째, 선거제도의 기본 취지를 훼손한다. 준연동형제는 비례성을 높이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통해 다당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그런데 위성정당은 오히려 거대 양당체제를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총선 후에 각 위성정당은 본당으로 합당되기 마련이다. 거대 양당의 의석수를 늘리면서 다당체제는 와해되고 극단과 배제의 양당체제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처럼 왜곡된 현상을 경험하면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든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향해 “천벌을 받을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2월5일 광주에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거대 양당 한쪽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패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맞은편 역시 대응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동안 위성정당 방지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를 7번 약속해 놓고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신뢰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시민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파괴된 민주주의 구해야

둘째, 유권자의 투표 결정권이 제약을 받는다. 과거에는 지역구 선거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정당에 투표하고, 비례선거에선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준연동형제에선 표 계산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 자신의 한 표가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잘 모른다. 이에 대해 민주당 허영 의원은 “국민들은 그 산식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자신의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투표를 하라는 것은 국민 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셋째, 정상적으로 원내에 진입하기 힘든 인사들의 우회 수단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비례 위성정당인 이른바 ‘민주개혁진보연합’은 반윤 결집을 내세우며 천안함·광우병 괴담 세력, 반미 좌파 단체들과 정책연합 추진을 명분으로 이들이 국회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당대회 돈봉투 혐의로 구속된 송영길 전 대표가 옥중에서 창당하는 정치검찰해체당도 민주당 선거연합에 참여할지 모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운동권 특권 세력이 더 많이 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입시 비리로 1심과 2심에서 유죄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월13일 “무능한 검찰독재정권 종식을 위해 싸우겠다”며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법과 민주주의를 우습게 아는 우울한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조국 신당’은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은 “민주당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저는 제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총선 때 ‘친문(친문재인) 정당’을 표방하며 비례대표 3석을 배출했던 열린민주당을 모델로 삼는 것 같다.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아도 비례대표 투표에서 어느 정도 득표만 하면 비례의석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준연동형제가 정당이 정치적 면죄부를 얻기 위한 개인적 욕망과 자신의 서바이벌 게임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정당정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준연동형제라는 괴물 제도로 ‘위성정당’과 여야의 비례정당을 자임하는 이른바 ‘참칭(僭稱) 정당’이 쏟아질 수 있다. 이건 선거 민주주의가 아니다. 거대 양당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깨어있는 시민의 현명한 판단만이 작금의 기형적이고 해괴한 선거제도로 파괴된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