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난청 방치하면 언어 발달도 지체된다
  • 박효순 전 경향신문 의학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2 16: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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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에 대한 낮은 인식과 부정적 시선 여전…“보청기는 안경이나 마찬가지라는 사회적 인식 필요”

3월3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청각의 날’이다. 이날을 즈음해 난청 등 청각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법 실천, 청각 건강을 위한 관심 확대 등을 위한 국내외 캠페인이 벌어진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난청으로 의심되는 환자의 귀를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대한이과학회 제공
이비인후과 의사가 난청으로 의심되는 환자의 귀를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대한이과학회 제공

갑자기 안 들리는 ‘돌발성 난청’ 젊은이 늘어

청각(聽覺)은 소리를 느끼는 감각이다. 청각질환의 대표 격인 난청은 청력이 떨어지거나 손실된 상태를 말한다. 난청의 증상인 이명, 난청의 주요 원인인 중이염도 청각질환 범주에 들어간다. 귀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비인후과 의사들의 학술·연구 단체인 대한이과학회에 따르면, 난청은 소리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의사소통에 장애를 초래한다. 이뿐만 아니라 소아에서는 성정 발달과 학업을 저해하고, 청장년층에는 직업상 문제를 유발하며, 노인에게는 사회적 고립이나 인지 기능 저하를 가져온다. 심할 경우 우울증 등을 유발하며, 심지어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등 건강과 삶의 질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청력 장애는 작은 소리(20~39dB·데시벨)가 잘 안 들리는 경도(10% 정도 청력손실), 보통 소리(40~69dB)에 문제가 있는 중도(50% 정도 청력손실), 큰 소리(70dB 이상)도 제대로 못 듣는 고도(70% 이상 청력손실) 등 3단계로 구분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난청 및 관련 질환 진료 통계를 보면, 난청의 연간 진료 인원은 2018년 58만7637명에서 2022년 73만9533명으로 많이 늘어났다. 이명은 2018년 32만5466명에서 2022년 34만3704명으로 약간 증가했다. 그런데 중이염은 2018년 213만6259명에서 2022년 133만6004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중이염의 경우 코로나19 여파가 반영된 결과다.

최근 열린 ‘청각 보조기기 지원과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이과학회는 보청기 지원을 통해 난청을 겪는 노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청각 보조기기에 대한 접근성과 국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65세 이상 가운데 중등도 난청으로 보청기가 필요하지만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하는 인구는 약 130만 명으로 추산된다. 박시내 이과학회 차기 회장은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이 청력에 문제가 있으면 보청기를 해야 한다. 즉 보청기는 안경과 같은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재정 때문에 급여 적용 기준을 단번에 완화할 수 없다면 노인성 난청 환자부터 단계적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보청기에 대한 낮은 인식과 부정적 시선이 여전하다. 게다가 급여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것이 보청기 착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순음청력검사를 통해 청력 역치(감각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 자극의 세기)가 41dB만 나와도 중등도 이상 난청인데, 현재 양측 귀로 60dB 이상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만 보청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

국내 신생아 및 유소아에서 중등도 이상의 난청 유병률은 1000명당 3~6명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유병률은 높아져 18세 이전 소아·청소년의 난청 유병률은 1000명당 31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한다. 정재윤 이과학회 공보위원장은 “특히 아이들에게 난청이 있는데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고 난청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아이들의 청력뿐만 아니라 언어 발달에도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거나 학습 능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청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 이후에도 관리 필요

신생아·소아·노인뿐 아니라 정상 청력을 유지하던 젊은 층에서도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돌발성 난청’ 또한 늘어나고 있어 문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돌발성 난청 연간 진료환자는 8만4049명에서 2022년 10만3474명으로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에 20대는 8240명에서 1만1557명으로 껑충 뛰었다. 돌발성 난청은 빨리 치료하면 청력을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살릴 수 있지만 늦으면 영구적으로 청력을 잃는다.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하는 청력검사는 난청 예방과 국가적 관리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18년 하반기에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를 받는 신생아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2019년 출생한 신생아 중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를 시행한 비율은 90.3%에 달한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와 이과학회가 공동 운영하는 ‘생애 귀-청각관리위원회’는 ‘청각의 경우 진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난청이 있는 유아와 소아의 청각 재활 및 난청에 대한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난청은 단지 소리를 못 듣는 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고 유아기와 소아기의 언어 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언어장애·학습장애·정서장애 등 심각한 이차 장애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동희 위원장은 “아이의 언어 청각 발달은 3세까지 80% 이상 완성된다. 이 시기에 소리 자극이 제대로 청각 뇌에 전달되지 못하면 청각언어중추 영역이 발달하지 못하게 되고 언어 장애가 발생한다. 그에 따라 교우관계·학교생활·사회생활이 어렵게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의 도움 없이는 독립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청력검사를 포함한 귀-청각 관리는 임신부터 노년까지 일관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생아 시기에는 모두 청각 선별검사를 하고, 청력 향상과 언어 발달을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조기 청각-언어 중재(보청기, 인공와우, 청능-언어치료 등)가 필요하다. 또 소음성 난청 위험에 많이 노출되고 난청에 대한 자기 인식이 낮은 소아 시기에는 학교 귀-청각 검진을 통해 모든 소아의 청력을 관리해야 한다. 최재영 이과학회 이사장은 “국가적인 귀-청각 관리를 위해 신생아 청각 선별검사를 통해 진단받은 신생아 및 영아들을 국가건강데이터에 등록하고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든, 이들을 돌보는 많은 관계자(가족, 의료인, 교육자, 청각사, 청능-언어재활치료사 등)의 자료가 서로 공유되고 일관되게 관리되는 국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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