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해바라기' 위작 구별하기
  • 조명계 미술시장 분석 전문가(전 소더비 아시아 부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3 13:0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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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다 해바라기’ 약 4000만 달러에 팔려 명성 떨쳐
고흐 해바라기 그림은 11점이 전부…'진품보증서'도 주의해야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해바라기’는 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이 주어진다면, 독자는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내게 이런 행운이?” 또는 “혹시 위작 아닐까?” 등의 감정으로 무척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빈 센트 반 고흐 초상화 ⓒ조명계 제공

고흐가 해바라기 그림에 매달린 이유

필자는 수년 전, ‘진품’이라는 네 점의 해바라기 작품을 접한 적이 있다. 그중 한 작품은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였으며, 다른 세 작품도 출처 불명의 보증서가 첨부돼 있었다. 보증서가 첨부된 이미지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한눈에 봐도 위작으로 보였다. 기초적 미술사 지식만 갖추고 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눈(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첨부된 보증서였다. 보증서에 따르면, 이 작품은 고흐가 35세 때 그린 것으로 1955년께 암스테르담의 고서점에서 열린 고흐 작품 전시 도록 47쪽에 ‘도리안 그레이’의 작품과 함께 발견됐다고 적혀 있다.

스위스의 ‘르누아르’(프랑스 화가) 전문가인 프랑수아 돌테(1924~1998)가 발급한 진품증명서도 첨부돼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진품증명서가 위조된 것으로 보였다. 진품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편리한 방법인 ‘진품증명서’를 갖다 붙인 것이다. 이 작품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선 세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첫째, 암스테르담 고서점에서 열린 작품 전시 도록의 실제 여부를 조사해야 하므로 암스테르담 도서관을 방문해야 한다. 둘째, 실제 돌테의 서명과 대조 작업을 통해 서명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참고로, 돌테의 서명을 확인하기 위해선 적잖은 노력과 시간이 소비된다. 끝으로는 반 고흐 미술관에 질의해 작품의 진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해당 작품을 놓고 위에 열거한 세 가지 확인 작업 절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위작으로 보였으므로, 그저 작품 위에 그려진 해바라기가 몇 송이인지 개수를 셌는데 12송이다. 해바라기가 몇 송이인지 숫자를 세어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고흐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1888년 여름, 프랑스 ‘아를’에 도착한 고흐는 묵을 월세방을 둘러보고는 답답해했다. 방이 모두 하얗게만 칠해져 있던 것이다. 내부 인테리어를 통해 방을 어떻게 밝게 만들 수 있을지 고심했다. 머지않아 친구인 ‘고갱’도 올 것이고, 함께 묵으며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흐는 방 안에서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고흐는 아티스트가 되고부터 계속 꽃을 그려왔다. 이유가 있다.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모델’에게 지불할 돈이 늘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던 모델 비용 부담이 컸던 것이다. 고흐는 자신의 방에서 고갱이 올 때까지 해바라기 작품을 부지런히 그렸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교향곡으로 방을 구성하고자 했고,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점을 완성했다. 원래는 10여 점을 그릴 계획이었다고 한다.

해바라기는 고흐의 모든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하다. 네덜란드에 있는 고흐 미술관에서는 해바라기 엽서가 갤러리 아트숍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이다. 해바라기 작품이 근대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가 그린 해바라기는 꽃병 또는 꽃꽂이에 꽂혀있는 작품이 대다수다. 바닥에 놓여있기도 하다. 꽃병에 있는 해바라기는 ‘정직’을 의미한다. 고흐는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는 모습부터 시들 때까지의 모습을 그렸는데, 흡사 인간 삶의 여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더욱이 당시 새로 발명된 유화 재료가 미술시장에 나와 ‘황색 스펙트럼’ 사용을 가능케 했다. 

1888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들 ⓒ 조명규 제공
1888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들 ⓒ 조명계 제공
1888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들 ⓒ 조명규 제공
1888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들 ⓒ 조명계 제공
1888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들 ⓒ 조명규 제공
1888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작품들 ⓒ 조명계 제공

출처 불명의 진품보증서 주의해야 

1987년 일명 ‘야스다 해바라기’(현 솜포미술관 소유)로 불리는 작품이 당시 금액으로 약 4000만 달러에 팔렸다. 그러나 곧바로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이 위작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를 분석하는 논문까지 나왔다. 가장 큰 논란의 원인은 작품이 아닌 액자였다. 고흐가 해당 작품을 그릴 당시만 해도 늘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큰 작품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 상단에 나무를 덧대 스스로 캔버스를 키우곤 했다. 야스다 해바라기가 나무를 덧대어 키운 캔버스에 그린 작업이라 고흐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에밀 슈페네커(Emile Schuffenecker)에 의해 캔버스가 키워졌다고 보는 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이 때문에 위작 논란이 제기됐던 것이다. 더 나아가 슈페네커 또한 고흐의 작품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자, 당시에도 다양하게 고흐 작품을 복제한 인물이므로 이러한 추론을 가능케 했다. 오랜 논란 끝에 결론은 고흐의 진품으로 판정이 내려졌다. 이 와중에 야스다보험은 파산했고 작품은 일본 보험회사들의 구조조정으로 탄생한 신생 법인 솜포의 소유가 되면서 도쿄 솜포미술관에 현재 전시 중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에는 두 시리즈가 있다. 파리 버전과 아를 버전이다. 쉽게 이해하자. 1887년 파리에서 그린 해바라기는 바닥에 놓여있는 그림들이다. 화병에 있는 해바라기는 1888~89년 아를에서 그린 작품이다. 즉 고흐의 해바라기는 파리에서 그린 4점과 아를에서 그린 7점, 도합 11점이 전부다.

1887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4송이 ⓒ 조명규 제공
1887년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4송이 ⓒ 조명계 제공

필자가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해바라기 송이를 세어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반 고흐는 평생 87개의 해바라기 송이를 그렸다. 먼저 아를에서 그린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 송이가 몇 개씩인지 세어보자. 3개짜리 1점, 5개짜리 1점 그러나 소실, 12개짜리 2점, 15개짜리 3점으로 모두 7점이 존재한다. 불행히도 한 점은 2차 세계대전 중 소실됐다. 세상에 남은 것은 단 6점뿐이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들 6점 외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보게 되면 본능적으로 해바라기 송이를 세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 속에서 3, 12, 15 이외의 해바라기 송이 숫자는 일단 믿지 않게 된다. 더욱이 위에서 열거한 6점이 아닌, 새로운 화병에 놓인 해바라기 작품이 등장한다면, 일단 위작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위작에는 출처 불명의 진품보증서가 첨부돼 있다. 위작의 약한 고리다. 일반인들은 이를 구분해 내지 못한다. 작품을 보고 위작을 판별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품보증서를 앞세운 작품을 잘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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