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사냥꾼 도우미’ 오명 쓴 메리츠증권의 두 얼굴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5 07:30
  • 호수 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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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메리츠증권 투자기업 18곳, 주권 거래 정지 
사채업자가 담당해온 세력들의 ‘쩐주’ 역할 꿰찼나

메리츠증권이 무자본 인수합병(M&A)과 주가조작 세력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된 기업들에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투자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메리츠증권은 특히 CB나 BW 발행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이나 채권 등을 담보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원금을 보장받으며 높은 수익을 올려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 하락이나 소액주주 보호는 뒷전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을 부른 대표적 사례가 이화그룹에 대한 투자다. 메리츠증권은 2021년 이화전기(BW 400억원)와 이아이디(BW 1420억원), 이트론(CB·BW 650억원) 등 이화그룹 계열사들이 발행한 CB와 BW에 총 247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증권업계에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화그룹 내에서는 그동안 무자본 M&A와 주가조작, 횡령·배임 등 부정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메리츠증권의 투자 직전에 소명준 전 이화전기 대표는 김영준 이화그룹 회장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기도 했다.

메리츠증권이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서울IFC 3 건물 ⓒ시사저널 이종현

기업사냥꾼 소유 기업에 대규모 투자

사채업자 출신인 김 회장은 20년 이상 M&A 시장에서 활동해온 거물급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무자본 M&A 방식으로 수십여 기업을 차명 보유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횡령과 주가조작 등 혐의로 수차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2002년 주가조작을 통해 수백억원대 시세차익을 챙긴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로 지목돼 복역했고, 2015년에는 이화전기공업 주가조작 혐의로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5월에도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같은 해 12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화그룹에 대한 메리츠증권의 투자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건 주식 매각 시점 때문이다. 메리츠증권은 투자한 CB와 BW를 장기간 보유해 오다 김 회장 구속으로 거래가 정지되기 직전에 주식으로 전환해 장내 매도했다.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메리츠증권이 이화그룹으로부터 확보한 미공개 정보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일로 최희문 당시 메리츠증권 대표는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야 했다. 국감장에서 그는 미공개 정보 활용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메리츠증권의 매도 시점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며, 김 회장의 이력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메리츠증권의 미공개 정보 이용 매도 의혹 사건을 패스트트랙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메리츠증권과 이화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이래 최근까지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메리츠증권이 ‘세력’의 자금줄 역할을 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4000억원대 배임 혐의로 수배를 받고 해외 도피 중인 배상윤 KH그룹 회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2022년 KH그룹의 강원 알펜시아리조트 인수를 위해 KH필룩스(350억원), IHQ(350억원), KH건설(150억원), KH전자(150억원) 등이 발행한 1000억원 규모의 CB에 투자했고, 같은 해 IHQ(200억원), KH건설(100억원) 등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기도 했다. KH그룹에 대한 메리츠증권의 메자닌투자는 총 32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메리츠증권은 에디슨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한아무개씨에게 자금을 융통해 주기도 했다. 메리츠증권은 2022년 에디슨모터스 계열사인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즈)가 인수한 유앤아이(현 이노시스)가 한투오와 여의도글로벌투자 등을 대상으로 발행한 600억원 규모의 CB 전량을 발행 당일 장외에서 인수했다. 그리고 CB 80%에 대한 콜옵션을 한씨 등이 지배하는 와이에스에이치홀딩스에 넘겼다. 이후 와이에스에이치홀딩스는 80%의 콜옵션을 행사해 CB 대부분을 가져갔다. 한씨는 에디슨모터스의 쌍용자동차 인수 추진 과정에서 허위 정보로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 밖에도 세원이앤씨(800억원), 휴센텍(500억원), 얍엑스(500억원), 비케이탑스(300억원), 노블엠앤비(300억원), 금호전기(300억원), 에이치앤비디자인(270억원), 장원테크(250억원), 세종메디칼(200억원) 등에 대한 메리츠증권의 투자도 기업사냥꾼들의 무자본 M&A 자금으로 활용된 정황이 포착된다.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된 이들 기업 중 대다수는 거래가 정지되거나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실제로 이용우 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투자한 CB와 BW 발행사 중 대주주의 횡령이나 부실 등으로 주권 거래가 정지된 기업은 모두 18곳이었다. 이들 기업에 대한 메리츠증권의 투자액은 7800억원 규모였다.

이처럼 투자한 기업들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메리츠증권은 아무런 손실을 입지 않았다. 우선 이화그룹의 사례처럼 주식 거래 정지 직전에 주식을 매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메리츠증권은 300억원 규모의 CB에 투자한 노블엠앤비 주식 거래가 정지되기 전인 2022년 말에도 CB 전환청구권을 행사한 후 장내 매도한 바 있다. 또 투자금을 크게 상회하는 담보를 잡기도 했다. 메리츠증권은 KH그룹에 3200억원 규모의 메자닌투자를 하면서 알펜시아리조트와 하얏트호텔 지분투자 상품 등 1조원 상당을 담보로 설정한 바 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메리츠금융그룹 제공

사실상 원금 보장 투자

담보물이 마땅치 않은 경우에는 기업이 CB 전액에 상당하는 채권을 사도록 했다. 메리츠증권은 휴센텍이 발행한 CB에 500억원을 납입한 직후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채권을 매입하도록 하고 담보로 잡았다. 메리츠증권은 2022년 휴센텍의 상장폐지 이슈가 불거지자 담보권을 행사해 원금을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는 최소 32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금융권에서는 메리츠증권이 사실상 원금이 보장되는 ‘무늬만 투자’를 통해 기업사냥꾼들을 지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투자 방식은 메리츠증권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실제 메리츠증권은 2022년 고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증권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는 상황에서도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해 영업이익 1위 증권사에 등극했다. 반면, 기업들의 주식 거래 정지나 상장폐지로 인한 손실은 모두 소액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렇다면 최근 수년 사이 메리츠증권이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된 기업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배경은 무엇일까. M&A 업계에서는 기업사냥꾼들의 전통적인 자금줄이 모두 막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기업사냥꾼들은 주로 명동이나 강남 사채업자들로부터 무자본 M&A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왔다. 사채업자들은 메리츠증권과 마찬가지로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을 담보로 잡은 후 리스크 없이 수익을 올려왔다. 사법 리스크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동안 대부분의 무자본 M&A 사건에서 사채업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기소되더라도 세력의 종범으로 판단돼 상대적으로 경미한 처벌을 받아왔다.

상황은 2021년부터 달라졌다. 그해 기업사냥꾼들에게 자금을 대준 사채업자가 단독범으로 기소돼 중형을 선고받은 최초의 판례가 나왔다. 사채업자 서아무개씨는 기업사냥꾼에게 40억원을 빌려준 후 담보로 받은 주식을 매각해 7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벌금 35억원과 부당이득금 70억원 추징 명령까지 내려졌다. 이 판결 이후 사채업자들이 기업사냥꾼에 대한 자금 지원에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는 2023년 10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뉴스1
최희문 메리츠증권 대표는 2023년 10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뉴스1

“소액주주 보호 위한 적극 개입 필요”

일부 저축은행도 사채업자와 함께 기업사냥꾼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은 2019년 상상인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이뤄진 이후 기업사냥꾼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은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등 상상인그룹 계열 저축은행들이 기업사냥꾼들에게 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사채업을 했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 사채업자나 저축은행이 맡아온 기업사냥꾼들의 자금 조달책을 증권사가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투자 자체가 적법하더라도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양산할 우려가 있는 만큼 금융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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