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치닫는 의·정…낙담한 환자들 “정말 가혹”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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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미복귀 전공의 처분 돌입…면허정지 후 취소까지
환자 “낭떠러지 떨어진 기분…수술 연기될까 조마조마”
3월4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가 무인 수납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3월4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가 무인 수납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정부가 의료 현장에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과 사법처리 절차를 본격화한다. 연휴 직후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던 정부의 공언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사 간 벼랑 끝 대치가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한숨은 날로 짙어지고 있다.

4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모두발언에서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 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오늘부터 미복귀한 전공의 확인을 위해 현장 점검을 실시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현장 채증을 통해 업무개시명령 위반 사실을 점검하고, 확인된 전공의에게는 사전 통지를 내린 뒤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행정절차법상 정부 등은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내릴 경우 처분 근거를 통지한 뒤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할 의무가 있어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사전 통지 후 의견 청취 결과, 전공의가 내놓은 의견이 타당하지 않고 납득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처분이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복지부가 면허정지를 3회 이상 내리면 재판 없이도 ‘면허취소’가 가능하다. 의료법 개정에 따라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제한된 결격 사유가 모든 범죄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최후통첩’과 강경 기조에도 전공의 복귀 움직임은 미미한 상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복귀 시한이었던 2월29일 오전 11시 기준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8945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복귀한 전공의 수는 565명에 그친다. 이탈자의 6% 정도만 의사 가운을 다시 입은 셈이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가 3월4일 가톨릭중앙의료원으로부터 받은 임용발령 문자. ⓒ류옥씨 제공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가 3월4일 가톨릭중앙의료원으로부터 받은 임용 발령 문자. 류옥씨는 2월29일부로 인턴 계약이 종료됐고, 이후 레지던트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류옥하다씨 제공

“환자 생사 다툴 때 의사·정부 싸움이 웬 말"

2주간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환자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원만히 합의될 것으로 믿었던 의·정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더 이상 못참겠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이아무개(65)씨는 간암 수술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이씨 배우자 박아무개(60)씨는 “몸과 마음이 힘든 와중에 낭떠러지에 떨어진 기분”이라고 운을 뗐다.

박씨는 “남편이 치료에만 집중해도 버거운 상황”이라며 “혹시나 수술이 연기될까 봐 조마조마하고 있다. 당장 수술 인력이 충분한지 병원 측에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환자가 생사를 다투고 있는데 정부와 의사는 싸움만 해서야 되겠느냐”면서 “마음 편히 치료받고 싶은 것뿐인데, 정말 가혹하다”고 울먹였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는 3월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는 3월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당뇨·고지혈증 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임아무개(68)씨도 “(전공의가) 다 돌아왔느냐”고 묻더니 이내 낙담했다. 임씨는 “의사는 환자를 내팽개치고, 정치권은 타협할 생각을 하지 않아 서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뉴스를 보면 답답하고 화나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를 지지하는 입장도 있었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왔다는 이아무개(76)씨는 “의대 증원을 하려고 했다가 의사 반발로 무산된 전례가 있지 않느냐. 여기서 (정부가) 무너지면 이제 증원은 없다고 봐야 한다”며 “법대로 처분하겠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가 의사를 탄압하는 방식으로는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신중론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환자는 “집단 휴진할 만큼 의사들이 반발할 정도면 정부가 그 이유를 충분히 수렴했어야 한다”며 “정부가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지 면허 박탈은 과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편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인턴과 의대 졸업생도 임용 포기 의사를 속속 밝히고 있다. 이들은 이달 1일 자로 각 병원에 레지던트 1년 차·인턴으로 임용될 예정이었다. 매해 3월에 들어와야 하는 신규 인력이 수혈되지 않으면 서울시내 주요 병원은 초유의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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