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장수 기업 되기 어렵다
  • 이영면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6 10: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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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장수 기업의 비결들…유한양행, 순위 높지 않아도 존경 받아
기업에 위협이 될 리스크 관리와 함께 수익 창출 핵심 역량 갖춰야

우리나라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적지 않다. 경방, 동화약품, 두산, 메리츠화재, 몽고식품,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이 있는데 두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대기업으로 많이 회자되진 않고 있다. 그만큼 100년 역사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2년만 지나면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도 100년 기업이 된다. 유한양행이라고 하면 재계 순위는 높지 않지만 존경받는 기업, 윤리경영,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에서 가장 인정받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12월20일 중소기업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중소기업역사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12월20일 중소기업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중소기업역사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평균수명 30년, 100년 역사 대단한 일”  

글로벌 차원으로 시각을 넓혀보자. 서기 578년에 설립된 일본의 ‘공고구미(金剛組)’라는 건설사가 현재 세계 최장수 기업으로 꼽힌다. 1446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외에 서기 1000년 전후에 프랑스의 와인 제조회사 ‘샤토굴랭’, 1288년 스웨덴 광산 운영으로 시작한 ‘스토라’, 1541년 영국의 모직물회사 ‘존브룩’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인 ‘일경 비즈니스’는 일본의 100대 기업 변천사를 연구한 결과, 기업의 평균수명이 30년 정도라고 했다. 세계 500대 기업도 10년이 지나면 3분의 1 정도가 바뀐다. 1960년대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룹은 삼성과 LG이며 삼호, 개풍, 대한, 동양, 극동, 동립산업, 태창방직 등은 그룹의 영화가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에는 국제, 명성 등이 사라졌고,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우, 미도파, 쌍방울, 한보, 해태 등이 사라지거나 다른 기업에 팔렸다.

막강한 재력을 과시했던 그룹들도 사라지는 치열한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100년을 버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책임, 즉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야 문제가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는 등 계속되는 불경기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태영건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한다. 지속적인 혁신과 우수 인재 확보, 고객과의 신뢰 구축 등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지켜야 할 숙제는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기업에 위협이 될 위험을 확실하게 관리해야 하고, 핵심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위기를 극복하고 장수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공고구미’는 절과 성을 건축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특화된 기술을 가진 건설회사인데, 1995년 1월27일 진도 7.2의 강진이 고베시를 강타했을 때도 이 회사가 지은 사찰의 대웅전은 그대로 유지됐다고 한다.

두 번째는 법적인 책임이다. 법을 잘 지켜야 오래갈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엔론’ 사건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에 본사를 둔 엔론은 1985년 에너지·물류기업으로 시작해 2001년에 파산하기까지, 가장 혁신적이고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유명 회계법인 앤더슨과 함께 저지른 회계부정이 밝혀지고, 주가가 80달러에서 1달러까지 곤두박질한 이후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당분간은 선두를 달릴 수 있지만 오래가긴 어렵다.

셋째는 윤리적인 경영이다.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법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지만, 윤리적으로 경영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비윤리적이라고 해서 잡혀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받고 존경받지 못하면 100년 장수 기업이 되기 어렵다. 윤리경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경주 ‘최부잣집’은 1600년대 초반에서 1900년 중반까지 300년 넘게 12대에 걸쳐 부를 누렸지만, 나라가 망하자 마지막 최부자는 재산을 정리해 상해임시정부에 독립군 자금으로 보냈으며 광복 후에는 남아있던 재산을 대학 설립에 활용했다.

이른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300년 넘게 부를 지킨 비결 중 최부잣집 가훈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 가훈은 ‘흉년에 양식을 풀어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였다. 나눔의 정신이 새겨진 가훈이다.

 

수익보다 윤리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아야

유한양행 설립 초기에 한 관리자가 유일한 박사에게 “중국에서 수요가 많고 이익도 많이 남는 마약을 팔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했다가 크게 혼났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에는 마약 판매가 불법은 아니었지만, 돈벌이에 눈이 멀어 마약을 팔았더라면 지금의 유한양행은 없을 것이다. 물론 유한양행도 완벽하지 않고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도 보도된 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창업자의 정신이 살아있는 기업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수익률이 높더라도 고객은 물론 종업원들에게 윤리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장수 기업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우리 기업들은 ESG 경영이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중시하고 이러한 활동을 지속가능보고서로 발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속가능성보고서 발간이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지 않다. 왜 큰 비용을 들여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할까.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서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는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다. 기업은 다면체이기에 아름다운 내용도 있고 훌륭한 내용도 있지만, 부족한 내용이나 잘못한 내용도 있다. 굳이 그걸 숨길 필요가 있을까 싶다. 100년을 넘기려면 잘못한 내용도 밝히고, 다시 잘못하지 않겠다는 용기 있는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이영면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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