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논란’ 소음 속에서도 선진국 증시 ‘훨훨’ 날았다
  • 조홍규 前 삼성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0: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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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닷컴버블 때와 유사” vs “주가 추가 상승 가능” 
반도체·IT·AI 등 기술주 중심 성장주 주목할 필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증시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S&P500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올해에만 8.6% 상승했고, 지수는 5100포인트를 넘어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상 초유의 유동성이 공급됐던 2021년 12월의 역사적 고점인 4700포인트와 비교해서도 10%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연초 이후 전 세계 증시 중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도 닛케이 지수 기준 20% 상승하며 4만 포인트를 돌파했다. 1989년 12월 역사적 전고점을 34년 만에 경신한 것으로 전 세계 언론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종료됐다는 신호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유럽 증시도 올해에만 10% 이상 상승하며 선진국 증시 강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유로스탁스 50 지수는 5000포인트를 상회하며 전고점이던 2007년의 4500포인트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 증시의 성적표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올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중국 상하이 지수도 3.7% 상승에 그치고 있다. 역사적 전고점과 비교했을 때는 선진국 증시와의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코스피 지수는 2021년 6월 3300포인트에 비해 20% 하락한 2600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 지수도 2007년 고점인 6000포인트의 절반인 3000포인트 수준에서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증시가 최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해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가 위치한 월스트리트 도로 표지판 ⓒAP연합

美·日·EU 뛸 때 韓·中 증시 제자리, 왜?

주가 하락을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현재 주가가 너무 고평가돼 있다고 우려한다. 2000년대 닷컴버블 시대와 유사하기 때문에 큰 폭의 조정에 매우 취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줄어들면서 시장금리가 다시 상승하고 있는 것은 주식시장에 부정적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올해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는데, 시장 투자자들은 과도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공지능(AI) 관련 빅테크 주식에 대한 쏠림이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증시 상승은 7대 빅테크 기업인 ‘매그니피센트7(M7)’이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해 80.5% 급등했고, 메타의 주가도 40.2% 상승했다. 일본도 반도체 관련 주식이 증시 강세를 견인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장비 기업인 도쿄일렉트론의 주가는 올해 28% 상승했고, 반도체 검사장비를 제작하는 어드반테스트 주가도 37.8%나 치솟았다.

버블론에 대한 반대 시각도 있다. 기업 실적, 잉여현금 흐름, 인수합병(M&A) 등 시장 흐름을 고려할 때 현재 시장 상황이 닷컴버블 때와는 다르고, 빅테크 등 기술주의 가치 역시 펀더멘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헤지펀드 투자자인 레이 달리오도 “M7의 밸류에이션은 현재와 미래 이익을 고려하면 약간 비싸지만 강세 심리가 과도하지 않다”면서 주가의 추가 상승을 전망했다. 그는 미국 증시의 버블을 측정하는 6가지 지표에 대해 분석하면서 현재를 버블의 52% 수준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관련 빅테크 중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2000년대 닷컴버블로 주가의 급등락을 겪었던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를 비교해 보자. 1998년 10월 이후 시스코의 주가는 고점까지 640% 상승했다. 이후 시스코 주가는 80달러에서 2002년 10월 8.6달러까지 폭락했다. 엔비디아 주가도 2022년 10월 이후 550% 상승했다. 최근 2~3년간 주가 상승 속도는 1990년대 대장주 시스코와 2022년 이후 엔비디아가 유사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처럼 엔비디아에 대해서도 주가 급락을 우려하는 것이다.

당시 시스코의 매출과 이익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 혁명과 Y2K에 대한 우려로 급증했다. 그런데 2001~02년 시스코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적자로 반전됐고, 매출 증가율도 크게 둔화됐다. 즉, 시스코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단지 주가가 많이 올라서가 아니라 매출과 이익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2000~02년 이후 시스코 매출은 정상화됐으나, 주가는 좀처럼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매출을 넘어서는 주가 급등 후 하락하는 경우에는 주가가 다시 반등하기 어렵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시세판을 확인하고 있다. ⓒAFP연합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시세판을 확인하고 있다. ⓒAFP연합

선진국 중심 해외주식 비중 확대할 시기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시스코가 겪었던 실적 둔화 조짐을 지금 엔비디아에서는 찾기 어렵다. 엔비디아 실적은 2017년 이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챗GPT가 출시된 이후 엔비디아의 실적 증가는 가속화되고 있다. 엔비디아 주가 상승 속도가 매출 증가 속도를 조금 넘어서고 있으나 매출 둔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향후에도 엔비디아 주가가 과거와 같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긴 어렵지만 기업 실적을 감안할 때 급락을 전망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닷컴버블 당시 대표주들의 밸류에이션 부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주가 급락 직전에 시스코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5배를 넘어섰다. 오라클의 주가수익비율은 168배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수익비율도 73배까지 상승했다. 현재 밸류에이션 부담은 당시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주가수익비율이 2023년 여름 247배까지 오르긴 했으나, 실적이 개선되면서 현재는 89배까지 낮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수익비율도 36~40배 수준이다. 지금도 낮은 밸류에이션은 아니지만 닷컴버블 당시와는 정도가 다르다.

단기간에 급등한 시장은 다소 조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 및 기업 실적에 대한 전망, 향후 금융정책 등을 감안할 때 버블을 예견하는 것은 다소 성급해 보인다. 2023년 말에 올해 시장을 전망하면서 반도체, IT, 인공지능 관련 주식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의 경기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물가 하락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어 올해 기준금리는 당초 예상보다 더디게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금리 인하는 주식시장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특히 밸류에이션이 높은 가치주보다는 기술주 중심 성장주에 더욱 우호적이다. 연초 추천 섹터에 대한 견해를 유지한다.

정부가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해당 정책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선진국 해외기업 중심으로 주식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을 당분간 추천한다.

조홍규 前 삼성자산운용 센터장
조홍규 前 삼성자산운용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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