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춘설 내리던 날, 육근병은 백남준을 불러냈다
  • 심정택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3 11: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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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첫눈 온 날 도쿄에서 백남준과 첫 만남
최근 완성한 《백남준》은 과거와 현재 연결하는 영매 역할

미디어아트 작가인 백남준(1932~2006)과 육근병(67)은 1991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1992년 카셀 도큐멘타 본전시에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육근병의 초대가 확정된 직후였다. 백남준이 육근병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도쿄에 와줄 것을 요청했고, 첫눈이 내리던 날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백남준은 1989년 육근병이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언론은 육근병을 ‘제2의 백남준’이라고 불렀다. 백남준은 육근병의 젊은 모습에 약간 놀란 듯했다.

ⓒ육근병 제공
1991년 11월 도쿄에서 첫 만남을 가진 육근병과 백남준(오른쪽) ⓒ육근병 제공
ⓒ시사저널 임준선

음악으로 연결된 백남준과 육근병

하지만 작품세계는 달랐다. 그는 1992년 독일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앞 광장 한가운데에 부풀어 오른 흙무덤 봉분을 세우고, 그와 마주한 빌딩 입구에는 대형 원주를 세운 후 그 안에 움직이는 눈의 영상을 설치해 각각 ‘동양의 눈’과 ‘서양의 눈’이라고 명명했다. 육근병은 양식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범주화하기 어려운 작품을 던져놓은 것이다.

‘백남준과 육근병’ 조합의 공통점은 바로 음악이었다. 아티스트, 즉 미술가인 백남준과 육근병의 설치 및 영상 작업들은 음악(소리)이 핵심 조형 언어다. 백남준은 일본 도쿄대학 미술사학과 졸업논문으로 ‘쇤베르크 연구’를 써냈다. 1956년 독일 뮌헨대 철학과에서 음악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던 중 프라이부르크 음대로 옮겼다. 지도교수가 작품을 요구하니 백남준이 가방에서 도끼를 꺼내려 했다. 피아노 부수는 소리를 음악으로 본 것이다.

1958년 9월 독일 다름슈타트 음악축제에서 존 케이지(John Cage·1912~1992)가 4분33초 동안 공연을 했다. 3악장 악보엔 ‘조용히(tacet)’라는 악상만 적혀있었다. 4분33초 동안 연주는 없고 관객의 기침 소리, 연주장의 정적만 있을 뿐이었다. 이 공연에서 자극받은 백남준은 이후 시간예술인 음악에 시각적 공간성을 도입하게 된다.

한편으로 백남준은 TV를 현대 파시즘의 강력한 수단으로 예견했다. 1992년 서울, 김용옥과의 대담에서 “TV는 정보 전달 방식이 일방적이다. TV야말로 현대사회 최대의 독재자이며 반민주의 상징이다”고 말했다.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도 그는 “TV는 낙하산처럼 독재적인 매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냥 듣고 ‘예’라고 답한다. 대답은 대화로도 가능하다. 대화야말로 민주주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육근병 역시 경희대 재학 시절에 사범대 미술교육과 학생들 중심으로 밴드 칸잔(KANZAN)을 만들어 리드 기타를 겸한 보컬을 맡았다. 그는 공연을 신체에서 스스로를 해방되는 매개로 삼았다. 스튜디오에서 작곡을 배웠고 음향 기술을 익혔다. 육근병에게 청각으로 감응되는 소리는 회화로 치면 물감이었다.

육근병의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에 박힌 ‘눈’ 작업은 “사람이 죽어 무덤에 누워있다고 사라진 게 아니며 산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일상의 발견에서 시작됐다. 작품 속 눈동자가 관객에게 대화를 걸어온다. 육근병은 ‘독재적인 매체’ TV에 쌍방향의 기능을 부여했다. ‘눈’은 육신이 사라진 영적 존재,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는 영적 심성을 상징한다. 작가는 ‘눈’을 세상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역할보다 나와 타인이 서로 공감하는 상호 소통의 창구로 보았다.

ⓒ육근병 제공
칸의 귀환을 위한 드로잉-페인팅전 단계, 2023 ⓒ육근병 제공
ⓒ육근병 제공
메신저의 초상을 위한 드로잉-페인팅전 단계, 2023 ⓒ육근병 제공

평생의 예술 언어가 된 ‘눈’

1995년 12월,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에서 발표한 《생존은 역사다(Survival is History)》는 길이 8m, 지름 254cm의 원통에 빔프로젝트로 소녀의 눈을 쏘는 영상 설치작품이다. 1945년 이후 약 5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큰 사건들을 서사적 시각으로 만들었다.

《생존은 역사다》는 2018년 서울 아트선재센터 전시 제목이 된다. 이때 전시된 작품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랑데부》의 메시지는 ‘역사적 사실들은 눈의 각막에 각인돼 뇌 속에 칩처럼 저장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였다. 어린 시절에 이웃집 나무대문 관솔 구멍으로 엿보던 너머의 세계는 ‘시선으로 맺은 만남’이었다. ‘눈’ ‘본다’는 것이 자신의 평생의 예술 언어가 됐다.

이미지들을 합성하거나 연출한 가상의 이미지들을 현실로 보여주는 게 영상 예술이다. 육근병의 작업은 ‘관념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다. 가상의 세계를 영상이라는 현실로 보여준다. 마르셀 뒤샹(1887~1968)은 1917년 레디메이드 변기를 사용해 예술작품의 ‘존귀함’과 ‘독창성’을 조롱하며 미술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서구 모더니즘이 전성기에 이르지 못한 때였다.

근대의 잔존과 현대가 맞부딪쳤던 한국의 1970~80년대를 지나온 육근병이 30여 년 전에 처음 내놓은 《무덤+눈》은 지금도 여전히 관념적 사고의 경계 너머로 안내한다. ‘예술작품이 텍스트로 바뀌는’ 포스트모더니즘 시절을 지나온 지도 제법 됐다.

《숨쉬는 게르니카(Breathing Guernica)》, 454.6×181.8cm acrylic on canvas 2023 ⓒ육근병 제공

2022년 전북 전주 갤러리 아트이슈프로젝트에서 처음 발표한 《숨쉬는 게르니카(Breathing Guernica)》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직접 영감을 받았으며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오마주했다. 춘설(春雪)이 내리던 날, 양평 스튜디오에서 최근 완성한 《백남준》은 가톨릭의 성화 제작 방식을 따르려 했다. 굿판의 무당 갓을 쓴 백남준은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는 매개자, 영매(靈媒)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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