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월급 870만원짜리 한직…연구보고서 대신 출마용 책 쓰는 연구검사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07:3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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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연수원 검사 연구위원, 20여 년간 공개한 연구보고서 달랑 ‘15건’…한동훈 위원장도 미공개
출마 선언한 이성윤·신성식 전 검사장, 1년 반 넘게 연구위원 맡았지만 미발간 보고서조차 ‘0’건

‘전(前) 고검장’ 혹은 ‘전 검사장’은 있지만 ‘전 연구위원’은 없다. 한때 대검 검사급 검사(고검장·검사장)의 승진 코스로 여겨졌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자리가 어느새 무인도 취급을 받고 있다. 전임 직책을 쓸 때 아예 거론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게다가 문재인·윤석열 정부 들어 검사 연구위원의 연구보고서는 딱 한 건만 공개됐다. 최근에는 이성윤·신성식 전 연구위원이 법무연수원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해 ‘연수원이 정계 진출을 위한 정거장이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법무부 산하 교육기관이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법무연수원이 정치검사 양성소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시사저널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2002년 1월부터 올 2월까지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연구보고서 목록(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제외)을 확인했다. 2002년은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됐던 김대웅 광주고검장이 연구위원으로 전보돼 법무연수원에 유배지란 오명이 씌워진 첫해로 알려져 있다. 파악한 보고서는 22년간 총 54건인데, 이는 법무연수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학, 기업, 민간연구소 등 외부 기관에 용역을 맡긴 보고서는 34건으로 집계됐다. 연수원이 직접 발행한 보고서는 나머지 20건이었다. 보고서 수만 놓고 보면 자체 연구 역량보다 외부 기관에 더 의존하는 모양새다.

2020년 3월23일 오전 충북 진천군 법무연수원 정문. ⓒ 연합뉴스
2020년 3월23일 오전 충북 진천군 법무연수원 정문 ⓒ연합뉴스

22년간 연구보고서 공개한 검사는 11명뿐

직접 발행한 보고서 20건 중 검사 연구위원이 작성한 것은 저자가 특정되지 않은 보고서를 제외하고 15건으로 나타났다. 대검 수사담당관 출신 김종률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가 집필본과 번역본을 포함해 3건의 보고서를 써냈다. 발간 횟수가 가장 많다. 다음으로 서울고검 검사를 지낸 심동섭 전 소망교도소 소장(14기)과 서울중앙지검 단장을 역임한 이용 변호사(20기)가 각각 2건씩 냈다. 그 밖에 김학근(13기)·최찬영(14기)·김태희(14기)·정병대(15기)·이호철(16기)·이광수(18기)·구본진(20기)·안영규(23기) 전 연구위원이 한 건씩 집필했다.

2010년 이전까지 검사 연구위원의 보고서는 두 해만 거르고 매년 발간됐다. 반면 그 이후부터는 눈에 띄게 발간 빈도가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인 2015년에 2건(구본진·이용),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에 1건(안영규)씩 낸 게 전부였다. 2017년 이후 검사 연구위원이 공석이었던 건 아니다. 법무연수원은 이례적으로 연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교수와 직원들의 이름은 모두 나와 있지만 연구위원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법무부 검찰 인사를 살펴보면 연구위원직을 거쳐간 역대 검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박상기 초대 법무부 장관은 김재구(24기)·윤영준(24기)·안미영(25기) 검사 세 사람에게 2018년 7월 연구위원직을 맡겼다. 이들은 모두 1년 이상 연구위원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발간한 보고서는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도 연구위원을 지냈다. 2020년 6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언유착 의혹을 받던 한 위원장을 부산고검 차장에서 연구위원으로 발령 냈다. 이후 한 위원장은 2021년 6월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전보되기까지 1년 동안 법무연수원이 있는 충북 진천군에 머물렀다. 그러나 한 위원장 역시 연구위원으로서 남긴 족적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법무부 장관으로 부임한 한동훈 위원장은 2022년 5월 ‘친문(親文)’으로 통하는 이성윤(23기)·이정수(26기)·심재철(27기)·이정현(27기) 검사를 연구위원으로 보냈다. 곧바로 다음 달에는 같은 자리에 신성식(27기)·고경순(28기)·이종근(28기)·최성필(28기)·김양수(29기) 검사를 무더기 전보 조치했다. 지방검찰청과 검찰 수뇌부를 좌우하던 고검장·검사장 9명이 몽땅 짐을 싸서 진천으로 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이성윤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사진자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이성윤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사진자료

연구위원 붙잡힌 이성윤·신성식, 출마 강행

이성윤 전 연구위원의 경우 1년 반 넘게 직을 유지했다. 그사이 공개한 연구보고서는 없다. 대신 그는 자서전을 썼다. 지난해 11월 《꽃은 무죄다》란 책을 내고 연달아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각종 방송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2월23일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로 뽑힌 후 전북 전주을 후보로 확정되면서 예측은 기정사실화됐다.

이 전 연구위원이 자의(自意)로 직을 고수한 건 아니다. 그는 연구위원으로 전보되기 직전인 2022년 4월 처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공무원이 징계사유가 있으면 퇴직이 불가하다’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반려됐다. 그는 2021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무마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올 1월8일에는 공직자 출마 시한을 사흘 남기고 다시 사직서를 냈지만 역시 수리되지 않았다. 결국 2월27일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해임 조치됐다. 배경이 이렇다 해도 정치적 행보가 합리화되는 건 아니다. 출마 당시 이 전 연구위원의 신분은 자의든 타의든 공직자였기 때문이다.

공직자로서 급여도 꼬박꼬박 받았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검사보수법에 따라 수사 검사 때와 동일한 봉급을 받는다. 고검장급인 이 전 연구위원의 월급은 별도 수당을 제외하고 878만원이었다. 연봉으로 치면 1억원이 넘는다. 국민 세금으로 사실상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은 형사사법 권력을 행사해 정치적 중립성이 더 강하게 요구된다”며 “검찰 조직 내부에서 강력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전 연구위원도 이성윤 전 연구위원과 일치되는 행보를 걸었다. 그는 지난해 12월6일 사표를 냈지만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중이라 수리되지 않았다. 이후 12월20일 자서전 《진짜 검사》를 내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윽고 올 1월18일 민주당 소속으로 전남 순천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옷을 벗은 건 법무부가 해임안을 의결한 2월14일이다. 그 전까지 검사장급 월급 877만원을 받아왔다. 신 전 연구위원은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정치적 중립을 깨뜨린 연구위원도 문제지만, 보직에 대한 정부의 시각부터 정치적 중립 위배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동훈 위원장이 이성윤·신성식 전 연구위원을 비롯해 검사 9명을 2022년 5~6월 연달아 인사 이동시킨 배경에는 그사이에 이뤄진 시행령(대통령령) 개정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을 의결했다. 골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중 검사 정원을 기존 4명에서 9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잦은 인사가 연구 방해한다” 지적도

정부는 그 이유에 대해 “법무 행정 연구기능 강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반윤(反尹)’ 성향 검사들을 솎아내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법무연수원 사정에 정통한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는 “결과적으로 권력 입맛에 맞지 않는 검사장을 좌천시킬 자리를 넉넉히 확보하게 된 것”이라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윤 변호사는 25년 검사생활 동안 법무연수원 부원장·교수·대외협력단장 등 연수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친 바 있다.

잦은 인사 이동이 연구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위원은 통상 1년 동안 연구과제 1~2건 수행을 지시받는다. 그런데 장기 과제가 많다 보니 완수하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다는 것이다. 윤 변호사는 “연구위원이 한직이라고는 해도 공무원인 이상 매일 출근해 사무실을 지켜야 한다”며 “그중에는 성실하게 연구하는 분도 있는데 몇 년씩 매달려도 결론 내기 어려운 과제를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고서가 함량 미달이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법무연수원 관계자는 ‘미발간 보고서도 있기 때문에 발간량을 근거로 업무성과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이어 법무부는 미발간 보고서 목록을 시사저널에 따로 제공했다. 여기에는 2016~23년 8년간 검사 연구위원 7명이 맡은 연구과제 13건이 나열돼 있었다. 류장만 연구위원(25기)이 7건으로 최다를 기록했고, 전 정권 인사로 분류된 차규근 연구위원(24기)과 정진웅 대전고검 검사(29기)도 한 건씩 담당했다. 이성윤·신성식 전 연구위원과 한동훈 위원장은 여기에도 이름이 없었다. 차규근 연구위원은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관여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발탁됐다. 정진웅 검사는 ‘한동훈 독직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지만 2월28일 정직 2개월 징계에 처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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