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제거’로 완성된 민주당의 사당화 [채진원 쓴소리 곧은 소리]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2 10:20
  • 호수 179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변호사’ 5인방 등 측근들은 본선에 대거 진출
1인 지배 정당 무리하게 추진하다 정당 민주주의와 공당의 역할 저버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선을 두 번이나 치르는 이례적인 일을 겪었음에도 22대 총선의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박 의원은 서울 강북을 경선과 재경선에서 이재명 대표의 자객공천으로 추천된 정봉주 전 의원에 이어 조수진 변호사에게 패배했다.

박 의원은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에 가해지는 ‘경선 득표의 30% 감산 벌칙’과 경쟁자인 조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여성·신인 25% 가점’,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전국 권리당원 70% 투표 방식 등 ‘3중 족쇄’를 안고 경선에 참여했지만 ‘비명횡사’ 파고를 넘어서지 못했다. 박용진에게 적용된 경선룰은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불공정한 것으로 ‘박용진 찍어내기 룰’로 평가됐다.

박용진의 공천 탈락은 ‘대장동 변호사’ 5인방과 대조적이다. 대장동 사건 등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변호·관리하는 호위무사로 불리는 ‘대장동 변호사’ 5인방(박균택·양부남·김기표·이건태·김동아)과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및 경기도 출신 인사들은 본선에 대거 진출했다.

민주당의 공천이 친명-비명 편가르기식 계파공천에 따라 작동되었다는 것은 여러 정황과 사례로 입증됐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원내·외 인사들은 일찌감치 단수·전략 공천이 확정된 반면 비명계에 대해서는 현역 지역구 경선 또는 공천 배제라는 엄중한 잣대가 사용됐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당내 경선에서 조수진 변호사와 맞붙어 탈락한 박용진 의원의 3월18일 전북도의회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히틀러 시대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생각나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20%’를 통보받은 김영주·이수진·박영순·설훈 의원 등은 민주당을 떠났고, 떠나지 않은 전해철·김한정·박광온·송갑석·윤영찬 등은 경선에서 모두 탈락했다. 이 대표의 대권 경쟁자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친문 좌장 홍영표 의원은 컷오프를 당했다.

이렇듯, ‘비명계는 죽고, 친명계와 이재명은 살아서 당을 장악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비명횡사’와 ‘이재명 사당화’에 대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를 쓴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보았을까?

브레히트는 왜 파시스트 히틀러의 광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친구들이 꿈속에서 자신을 향해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내 자신이 미워졌다’고 고백한 것일까? 히틀러를 피해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동료들을 남겨놓고 떠나왔던 브레히트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오히려 그런 현실 앞에서 움추린 자신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브레히트는 ‘이재명식 생존방식’을 긍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강하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뭐가 강한 것이고, 어떻게 해야 강한 것일까? 그에게 그것은 강한 이미지로 살아남을 수는 있었으나 지속 가능한 생명과 승리까지 보장하지 않는 강함이다. 왜냐하면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에게 강함은 양면적이어서 강함에 열광하는 층만큼이나 강함의 독(毒)에 반감을 느끼고 이탈하는 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아마 ‘비명횡사, 친명횡재, 대장동 공천’으로 비명계를 학살하고 친명계를 공천해 ‘이재명 1인 사당’으로 살아남았지만 민주당의 민주주의가 실종된 것과 공(公)을 버리고 사(私)를 취한 이재명의 리더십에 대해 슬퍼했을 것이다.

민주당 공천이 ‘박용진 제거’로 마무리되고 ‘이재명 사당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됨에 따라 202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박용진 의원이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던 이 대표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게 되었다.

이재명은 왜 그렇게 집요하고 무도하게 경쟁자들과 박용진을 제거해야만 했을까? 이 대표가 ‘1인 사당화’를 꾀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이재명의 급박함’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뭐가 그토록 급박했을까. 두 가지다. ‘방탄’과 ‘대권’이다. 자신에 대한 사법 리스크 방어가 첫째이고, 차기 대권 경쟁에서의 승리가 둘째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자신과 생사를 같이할 계파의 규합이 먼저라고 보고 경쟁자들을 숙청하는 것에 몰입하면서 정당 민주주의와 공당의 역할을 저버린 것으로 보인다.

 

‘사법 방탄’과 ‘대권 도전’에 마음 급한 듯

많은 국민은 ‘이재명식 시스템 공천’이란 게 얼마나 허울뿐인 것인지 목도했다. 비명계만 콕 찍어서 배제하는 이런 시스템은 ‘비명계 감별기’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이재명식 사천’이다. 사천은 ‘계파정당’을 넘어 ‘성숙한 국민공당’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저버린 정치 퇴행이다. 이런 불공정한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정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재명식 시스템 공천’의 하나인 비명계 하위 20%의 컷오프는 지난해 12월에 이재명 대표 중심의 당권파들이 ‘현역의원 하위 20%에게 적용되는 감점비율을 30%로 강화’하는 안을 강행처리함으로써 예상된 일이다. 이것은 현역의원을 역차별하는 불공정과 불평등을 야기하면서 공정과 상식을 상징하는 시스템 공천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즉각 폐지해야 한다.

특히, 이 방안은 현역의원에 대한 역차별을 넘어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참정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 또한 이 방안은 정당의 인위적인 규제로 인해 유권자들이 후보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의원들도 의원 경력을 내세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이 방안은 군대를 현역으로 제대한 남성들에게 가점을 준 공무원시험제도가 위헌 판정을 받은 것과 비교할 때, 그 정반대의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평등권을 침해한다. 여성, 청년 등 신진 후보에게 가점을 주면서 반대로 현역의원 하위 20%에겐 최대 30%의 감점을 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리하라’는 평등원칙에서 벗어난다.

그렇다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안적인 공천 방식’은 뭘까? 대안으로 2002년 16대 대선 때 그리고 17대 총선 때 실시된 ‘국민참여경선제도’가 경험적으로 볼 때, 가장 공정한 시스템 공천으로 보인다. ‘이재명식 시스템 공천’을 폐지하고 이것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찐명팔이’라는 계파 줄서기로 공천을 받아 의원배지를 달면, 이들이 과연 민의와 민생을 대변할 수 있을까? 의원 자율성이 낮기에 민의와 민생보다는 온갖 특권과 특혜만을 취하면서 ‘이재명 사당화와 방탄’에만 앞장설 것이 뻔하다. 계파 보스와 강성 지지층에 의해 공천이 결정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1인 보스에 충성하고 민의를 배신하는 의원들의 줄서기 정치행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br>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