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박지은·김수현 콤비 또 일냈다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30 14:00
  • 호수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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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드라마 비튼 반전 설정과 기막힌 연기력으로 흥행몰이

흥행의 세계는 안갯속이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만들었어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는 게 흥행이다. 특히 드라마는 많은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협업하기 때문에 온갖 변수가 발생한다.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혼란 속에서 안정적으로 히트 행진을 이어간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기적을 현실화하고 있는 콤비가 실제 있어 주목받고 있다. 바로 박지은 작가와 김수현이다. 이들은 2013년작 SBS 《별에서 온 그대》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김수현은 광해군 시대 조선에 불시착한 외계인 도민준 역할로, 톱스타 천송이 역할의 전지현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얼마나 파장이 컸던지, 극 중에서 주인공이 즐긴 ‘치맥’(치킨과 맥주)까지 유명해져 이 단어가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공식 등재됐다. 옥스퍼드 사전 측은 치맥을 ‘맥주와 영어 단어에서 빌려온 튀긴 닭을 뜻하는 치킨의 합성어…프라이드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해설했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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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9년 만에 박지은 작품 출연 

이 엄청난 성공 이후 김수현의 차기작이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그의 선택은 놀랍게도 2015년 KBS 2TV 《프로듀사》였다. 박지은 작가의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시트콤 소품 같은 느낌이었다. 김수현 정도 되는 슈퍼스타라면 한류 대작을 선택할 거라는 기대가 컸는데 의외로 소박해 보이는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국도 아닌 예능국에서 제작했기 때문에 더 이벤트성 소품 같아 보였다. 

하지만 《프로듀사》는 전국 시청률 17.7%로 그해 방송된 KBS 미니시리즈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김수현은 이 작품으로 2015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능국 작품이 연기대상을 석권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랬던 김수현이 9년 만에 박지은 작가와 다시 만났다. 이번엔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다. 시골 이장집 아들로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재벌 3세녀인 홍해인(김지원 분)에게 장가간 변호사 백현우 역할이다. 《별에서 온 그대》에선 초능력 등 압도적 능력과 조선시대부터 쌓아온 거대한 부까지 가진 완벽남으로 등장했었다. 그랬던 김수현이 《프로듀사》에서 평범한 신입 PD 역할을 선택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는데 이번에도 비교적 평범한 역할이다. 물론 명문대 출신 변호사라는 고스펙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시골 출신으로 재벌 처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신세다. 

보통 한류 로맨틱 드라마에선 남자주인공이 부와 능력을 모두 갖춘 완벽남으로 그려진다. 그런 완벽남이 평범한 집안 출신 또는 가난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 구도다. 아마 김수현에게도 그런 역할 제안이 무수히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프로듀사》에서 약간 ‘찌질’에 가까운 평범남으로 나오더니 《눈물의 여왕》에서도 그런 느낌인 것이다. 제목은 《눈물의 여왕》이지만 작품 초반엔 처가에 치여 사는 백현우가 서러워 우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다. 

이렇게 여성 시청자들이 동경할 만한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님 캐릭터가 아닌데도 호응이 크다. 첫 회는 5.9% 시청률로 무난하게 시작했지만, 상승세가 이어지더니 6회에 14.1%를 찍었다. 한국갤럽이 3월19일부터 21일까지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영상 프로그램’ 순위에서 방송 2주 만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직전까지 1위였던 《미스트롯3》가 종영과 함께 2위로 물러난 후 《눈물의 여왕》이 왕좌의 새 주인이 된 것이다. 

넷플릭스에선 3월 넷째 주에 글로벌 비영어권 TV부문 TOP10에서 4위에 올랐는데, 특히 일본 넷플릭스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플릭스패트롤(글로벌 OTT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차트에선 미국, 싱가포르, 인도,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50개국에서 10위 안에 진입했다. 국내에선 인기가 터졌고 해외에선 향후 인기 상승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로맨틱 드라마의 설정을 뒤집는다. 보통은 남주인공이 성격 까칠한 부자인데 여기선 여주인공이 까칠한 부자다. 보통은 남주인공에게 마음의 상처가 있는데 여기선 여주인공에게 상처가 있다. 또 보통 서로 다른 배경의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진 후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하면서 드라마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눈물의 여왕》은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드라마가 시작됐다. 일반적인 로맨틱 드라마에서 결혼은 영원한 사랑의 완성으로 이상화된다. 반대로 《눈물의 여왕》에선 주인공 부부가 권태기를 겪고 있다. 남주인공은 이혼하는 게 소원이다. 하지만 재벌 처가로부터 보복당할까 봐 무서워 전전긍긍하는 것이 초반 설정이었다. 

앞에서 백현우의 결혼을 장가갔다고 표현했는데 글자 그대로 그는 처가로 들어갔다. 데릴사위로 살며 무시무시한 ‘처월드’에서 숨도 못 쉬고 산다. 보통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시월드’에 치여 사는 걸로 나오는데 그걸 뒤집은 것이다. 재벌인 홍해인 집안은 조선 왕실에선 제사를 남자들이 준비했다며, 제사 음식 준비를 사위들에게 전담시킨다. 남주인공은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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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수준의 신선함이 주효 

남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전도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헬기 타고 찾아간다. 헬기는 백마의 변형으로 일반적으로 남성의 몫이었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 앞으로 얼굴을 갖다 대자 남주인공이 키스를 기대한 듯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 것도 여주인공의 일반적 행태다. 

이런 반전 설정과 그걸 구현하는 김수현의 연기력으로 이 작품은 신선함, 통쾌감, 웃음을 주고 있다. 그런데 모든 걸 다 뒤집지는 않았다. 로맨스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멋있고 로맨틱한 남주인공’의 성격은 그대로 담았다. 여주인공을 사랑하면서 그녀가 힘들 때마다 살펴주는 성격 말이다. 위험하면 구해 주고, 쓰러지면 안아 올려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준다. 여주인공이 모를 때도 남주인공은 여주인공만을 바라보며 그녀를 지켜준다. 전형적인 멜로 남주인공이다. 

만약 로맨스물의 모든 설정을 다 뒤집었다면 인기가 없었을 것이다. 관습을 어떤 건 뒤집고 어떤 건 지키며 정확하게 최적의 타협점을 찾았다. 그래서 딱 적당한 수준으로만 신선하다. 이게 박지은 작가의 장기다. 그 뒤집힌 캐릭터와 관습적 캐릭터 두 가지를 모두 김수현이 생생하게 표현하니 흥행이 빵빵 터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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