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내 취미 생활"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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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나 오토바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다. 비행기나 배도 취미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도 취미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지난 8월23일 있었던 도시철도공사 경영 세미나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초청되었다. 아버지뻘 되는 경영진 앞에서 요모조모 지하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 세미나라는 점잖은 자리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들은 바로 ‘지하철에 미친 아이들’로 알려진 하이텔 동호회 ‘지하철 소모임’과 인터넷 다음 카페 ‘지하철에 목숨 건 사람들’의 회원들이었다.
그들이 세미나에 초청된 것은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도시철도공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민원 사항에 대해 그들은 해박한 지식으로 관리자보다 앞서 답변을 올려놓곤 했다.

이 날 특별한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그 동안 그들은 설움도 많이 당했다. 지하철과 관련된 것을 문의하면 ‘네가 뭔데 그런 것을 알려고 하느냐?’는 식이었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도 되돌아오는 것은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핀잔이었다. 친구들로부터도 사이코라는 놀림을 당해야 했다. ‘도대체 왜 지하철에 관심을 갖느냐’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지하철 노선도를 방에 걸어놓고 승차권을 모으며 안내 방송을 녹음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하철에 갖는 관심은 각별했다. 그들은 지하철과 관련한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 환승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출입구가 몇 개나 되고 어디로 나 있는지, 역명 표기가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일반인에게는 도저히 취미가 붙지 않을 것들에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

10년째 지하철과 관련한 모든 기사를 스크랩하고 있는 사람, 초 단위까지 표기된 지하철 시간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지하철이 정확하게 도착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사람, 지하철을 이용한 통근자의 지각 가능성 여부를 계산하는 사람 등 근성도 대단했다. 북한에 가서 평양 지하철을 타보겠다며 자료를 모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임 대표인 이재원씨(22)와 이정석씨(20)는 요즘 특별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 바로 지하철 관련 시민단체를 만드는 일이다. 취미 차원의 관심을 넘어서 지하철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하철 시민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래서 잘못된 점을 좀더 체계적으로 지적하고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도 펼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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