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21세기 한국 정치 이끌 지도자
  • 徐明淑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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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감·정치 개혁 추진·인기 부문 ‘3관왕’
밀레니엄 리더십.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올 한 해 정치권에 유행처럼 번진 구호였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이 구호를 자신과 일치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섰다. 이는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의 불만과 정치권의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 흐름을 의식한, 자구(自救)의 몸부림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권의 21세기를 이끌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과연 누구에게서 21세기 한국 정치의 비전을 찾는 것일까. 〈시사저널〉이 이번 여론조사에서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가는 데 가장 적합한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은 그 대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김민석이 21세기형 정치인으로 꼽힌 이유

응답자들이 지목한 21세기형 정치인은 김민석 이회창 이인제 김근태 노무현 이부영 정몽준 한화갑 홍사덕 김홍신. 이들 10명의 명단이 던지는 정치적 사인은 한마디로 ‘21세기는 3김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형 정치인으로 지목된 10명 가운데 3김씨의 가신이나 측근으로 분류되는 정치인으로는 한화갑 국민회의 사무총장만이 유일하게 거명되었다. 나머지 9명은 모두 3김씨와 맞서거나, 독자 행보를 걷고 있거나, 나름으로 독자성을 발휘하는 정치인이다. 여기에서 전문가들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30대 정치인 김민석 의원. 김의원은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히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이인제 국민회의 당무위원(48쪽 관련 기사 참조)을 제치고 21세기형 정치인 1위로 지목되었다(16.0%). 김의원은 ‘정치 개혁에 가장 도움이 되는 정치인’(18.4%)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12.9%) 항목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9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골수 운동권 출신인 그가 금배지를 단 것은 지난 15대 총선. 거물급 나웅배 후보와 두 번째로 맞붙어 역전 신화를 만들어내고 국회에 진입했다. 97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텔레비전 광고와 지원 유세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모았고, 98년 한보 청문회에서는‘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신당 대변인으로 신당 창당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그동안 김의원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쌓아올린 지명도와 참신한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구세대에 대한 정치권의 염증과 신선한 젊은 세대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학 교수는 “이번 결과는 21세기 정치를 신선한 젊은 세대가 주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민석 세대에 대한 기대감이 그 세대의 상징적인 인물을 통해 표출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차기 주자인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당무위원의 뒤를 이어 4위(9.9%)로 꼽힌 인물은 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좋아하는 정치인’(9.2%, 3위) ‘정치 개혁에 도움이 되는 정치인’(16.5%, 2위)으로도 거론되었다. 김민석 의원이 정치권에서 학생운동권을 대표하는 주자라면, 김부총재는 재야 운동권의 대부 격인 인물. 김부총재는 지난 9월께부터 이인제 위원·이종찬 부총재와 더불어 여당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9월6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에서 여당 인사들이 언급하기 꺼리는 ‘당내 민주화’를 역설했다. 그는 신당이 전문 인사를 영입하는 것을 둘러싸고 개혁이냐 전문가 위주의 안정이냐 하는 노선 갈등이 벌어지자 ‘지속적 개혁을 통한 고도의 안정’이라는 제3의 길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총재의 입김이 좌우했던 기존 공천 행태를 개선하려면 예비 선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21세기 정치 지도자로 지목된 데에는 이런 일련의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5위로 지목된 노무현 국민회의 부총재는 88년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스타 의원으로 떠오른 이후 지난 10여 년간 각종 언론 매체의 여론조사에서 대표적인 차세대 주자로 오르내린 인물. 그는 ‘21세기형 정치인’ 항목 외에도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2.3%, 7위)와 ‘좋아하는 정치인’(6.9%, 5위) ‘정치 개혁에 도움이 되는 정치인’(7.2%, 5위) 항목에서도 고루 거명되었다.
노부총재가 한국 정치 현실에서 관심을 끄는 핵심 코드는 지역 구도 타파에 있다. 그는 DJ가 이끄는 정당에서 두 번이나 부산 지역에 도전해 실패했으면서도, 16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하기 위해 일찌감치 부산으로 내려갔다. 군사 정권과 3김 정치가 빚어낸 완고한 지역 구도와 DJ 정권에 대한 이 지역 민심을 감안할 때 그의 도전은 좌절로 귀결되리라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법칙은 통하는 법. 노부총재가 PK 정서의 벽을 깨뜨리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이부영은 정치 개혁 디딤돌이자 걸림돌

공동 5위 이부영 한나라당 총무도 김부총재와 노부총재처럼 재야 영입 케이스로 정치권에 진입한 인물이다. 그 역시 ‘좋아하는 정치인’(5.5%, 6위) ‘정치 개혁에 도움이 되는 정치인’(8.1%, 4위) 항목에서도 고른 응답률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21세기형 정치인’ 베스트 5명이 긍정적인 항목에만 등장한 것과는 달리 ‘정치 개혁에 걸림돌’(1.8%, 10위)이라는 부정적인 항목에도 이름이 올랐다. 동일한 인물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는 까닭은, 개혁적이고 참신한 개인 이미지와 비교적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당론을 대변하는 강성 총무라는 이미지가 뒤섞여 있기 때문인 것 같다.

7위 정몽준 의원과 9위 홍사덕 의원은 3김씨와 무관하게 행보해 온 무소속 의원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의원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3.2%, 6위)로도 꼽혔다. 정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한축구협회장인 정의원이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차기를 노린다는 관측이 무성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92년 대선에서 좌절된 자신의 꿈을 아들인 정의원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재벌 2세라는 현실은 정의원의 디딤돌이자 걸림돌이기도 하다. 정의원의 장래는 재벌 2세라는 프리미엄에서 벗어나 얼마나 확고하게 자기의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한편 ‘21세기에 얼마나 정치 풍토가 개선되리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의 58.2%(‘많이 개선될 것(16.2%)+어느 정도 개선될 것(42.0%))가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런 낙관론이 현실로 이어진다면, ‘한국판 토니 블레어’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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