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에게 방독면을 씌울 수도 없고…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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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오염, 소아 천식 부채질…기관지·폐 기능 크게 손상
“오늘처럼 오존주의보가 내리는 날이면 애가 심하게 기침하면서 숨쉬기 힘들다고 호소해요. 시내로 나가면 더하죠. 그렇다고 방독면을 쓰게 할 수도 없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과에서 만난 백 아무개씨(39)가 하소연했다. 백씨는 아이의 천식이 악화하지 않으려면 환경이 쾌적해야 하는데 공기가 나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틀째 오존주의보가 발령되던 7월6일 소아과는 천식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오존 때문에 천식이 발병한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존 농도가 높아지거나 대기 오염이 심하면 천식 환자의 발작이 많아지고 증세가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연세대 이기영 교수(소아과 알레르기 및 호흡기 담당)가 설명했다.

오존과 천식은 함수 관계이다. 오존 농도가 올라가고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서 천식 발병률이 껑충 뛰었다. 지난해 대한알레르기학회지에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소아 천식이 1981년 5.1%에서 1990년 10.1%, 1998년 14.5%로 늘어났다. 성인의 경우 정확한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호흡기 내과 전문의들은 10 명 중 1명이 천식을 앓거나 앓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오존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호흡기인데, 호흡기가 손상되어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병이 천식이다. 사람은 쉬고 있는 상태에서 하루에 공기 1만ℓ를 들이마신다. 활발하게 움직일 때에는 이보다 4~5배 가량 더 들이마신다. 이 많은 공기가 모두 호흡기를 통해 우리 몸 속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 함유된 오존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대도시 길거리에서 흔히 눈이 따갑거나 목이 매캐하다고 느낄 때 우리 몸은 이미 오존을 적지 않게 들이마신 것이다. 오존을 지속적으로 들이마실 경우 기관지와 폐는 마치 염산에 덴 것처럼 빨갛게 부어오르고 염증이 생긴다. 염증이 생기고 부어오른 기관지는 좁아지고 짙은 가래가 많아져서 공기가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없다. 좁은 통로로 숨을 쉬다 보니 피리 소리처럼 쌕쌕거린다. 기침과 통증이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폐세포에 염증이 생기면 수축력이 떨어져 조금만 움직여도 헉헉거리고, 세균이나 유해한 물질이 침투하기 쉬워 폐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국 환경보호국의 호워드 케를 박사팀은 천식 환자가 오존에 노출됨으로써 폐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증상이 가벼운 천식 환자를 농도가 0.16ppm인 오존에 7.6시간 노출시킨 후에 폐 기능을 측정했더니 20%나 줄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의과대학 존 피터스 박사(예방의학)도 오존 농도가 높은 지역에 살면서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남자 어린이가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폐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역학 조사를 통해 입증했다. 스모그로 악명 높은 캘리포니아 남부 12개 지역의 어린이 5천명을 10년 동안 조사해서 밝혔다.

폐 기능이 손상되면 1,000m를 달리던 사람이 800m밖에 달리지 못하게 된다. 또 손상된 폐는 쉽게 회복되지 않고, 기형적으로 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아이들이 지금처럼 만성적으로 오존에 노출될 경우, 작고 예쁜 꽈리 모양의 폐는 시든 잎처럼 축 늘어져 숨쉬기조차 힘들어질지 모른다. 또 많은 아이들이 여름철마다 컥컥거리며 ‘가슴이 답답하다’고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호흡기 환자 10명 중 1명은 오존이 죽인다

국내에서도 오존이 천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권호장 교수(단국대 예방의학교실)의 연구에 따르면, 오존 농도가 0.1ppm일 경우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10 명 중 1명이 사망했다. 오존으로 인한 정상인의 사망률도 6% 이상 늘어났다. 연세대학교 이종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오존 농도가 0.05ppm 늘어날 때 서울의 경우 사망자 수가 2% 늘었다. 서울 거주자 사망률 가운데 사고사를 제외한 평균 사망률이 하루 100명 선이니 매일 2명이 오존 때문에 더 죽는 셈이다.

서울대 국민보건연구소 특별연구원인 전상일씨의 연구에서도 오존 농도가 0.02ppm 증가할 경우 천식을 앓고 있는 65세 이상 환자의 입원율이 최고 27.8%까지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0.02ppm이면 비릿한 오존 냄새를 겨우 맡을 수 있는 낮은 수치이다. 오존주의보가 내릴 때뿐 아니라 평상시 대기 상태에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상일 박사는 “대기 오염 허용 기준은 경제성과 보건성을 함께 고려하여 설정하기 때문에 허용 기준을 지키는 것만으로 건강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오존주의보 발령 기준보다 훨씬 아래 단계인 0.08ppm에서도 폐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허용 기준보다 낮은 상태에서도 우리 건강이 서서히 나빠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기 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는 숨을 쉬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전박사는 강조한다.

선진국들이 일찍부터 오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까닭도 오존이 그 어떤 것보다 많은 사람의 건강을 한꺼번에 위협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면역이 약한 어린이의 건강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울 백병원 함세창 박사는 “어린이는 야외 활동이 왕성해 오존에 노출될 기회가 많고, 어른에 비해 세포가 더 약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오존에 노출되면 일찍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라고 말했다. 소아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독한 약으로 매주 치료를 받아도 1∼3년 걸린다는 것이 함박사의 설명이다.국내 오존 피해 연구 보잘것없어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오존에 의한 건강 피해 사례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오존 피해의 심각성이 충분하게 인지되지 않았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일부 종합병원에서 조사 연구된 어린이 천식과 호흡기 질환자 증가 자료만이 오존의 피해 사례로 뒷받침되고 있을 뿐이다. 이진홍 교수(충남대·환경공학과)는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오존의 피해를 과학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오존을 낮추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문제의 심각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기 오염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천식조차 알레르기 요인으로만 분석하고 처방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라고 주장했다.

일반인은 물론 의사들까지 오존 피해를 충분하게 자각하지 못하다 보니 오존주의보가 내려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존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오존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오존은 태양빛이 강하고 공기 이동이 적을 때 많이 발생하므로 여름철이나 정오에는 외출을 삼가야 한다. 특히 오존 경보가 내려지면 실외 활동을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오존이 인체에 해로운 것은 체내에서 강력한 유해 산소를 발생시켜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므로 항산화작용을 지닌 비타민을 평소에 충분히 섭취할 필요가 있다. 비타민 C와 E는 오존에 자극된 폐에서 일어나는 염증 반응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오존에 의한 조직 손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비타민은 성인보다 폐가 한창 발육하는 어린이의 오존 피해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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