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미래, ‘세계화’에 달렸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5.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기의 노동계, 향후 노선 놓고 열띤 논쟁 … “자본의 총공세 꺾는 길은 초국적 연대뿐”
지금 우리 팀(노동조합)은 축구화를 신고 스케이트장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벌이고 있다. 몇몇 선수는 이미 퇴장당했고 나머지 선수는 부상한 상태다. 게다가 심판(국가)을 자기 편으로 갖고 있는 상대편(자본)과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한 노동운동가는 최근 노동조합이 처한 현실을 이렇게 비유했다.

한국 노동운동에는 미래가 있는가? 노동조합은 갈수록 자신들의 숨통을 죄고 있는 현실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6일 서울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이같은 의문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지난해 9월 노동운동 진영은 경기 침체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자본 공세 앞에서 위축되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이 어떤 노선을 추구해야 할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논쟁을 부른 이는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김부소장은 〈노동 사회〉 9월호에 실린 ‘민주 노조 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에서 “이제 노조운동이 새로운 도전을 이겨내고 전체 노동자 대중과 국민에게 꿈과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노조 운동의 이념으로 ‘사회적 조합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97년 9월 남아프리카노동조합협의회(COSATU)의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셉템버 위원회’가 노조운동의 최적안으로 권고한 이념이다. 사회적 조합주의는 노동 조건 개선 같은 단기적이고 개별적인 이익 추구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을 목표로 삼아 사회적·정치적 쟁점에 광범위하게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와 함께 사회주의를 목표로 내건다. 이 이념은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 사이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진보 정당 결성·내부 개혁 등 대안 모색 활발

이에 대해 진보 진영의 대표적 학자인 노중기 교수(한신대·노동경제학)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에서 “교섭력과 자주적 계급 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국가와 자본이 양보할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사회 개혁과 제도 개선을 꾀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노교수는 또 섣부른 정책과 경영 참가는 정부와 자본의 노동자 통제로 이어질 것이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노사정위원회가 좋은 예가 아니냐고 공박했다(김부소장은 노사정위 활용론을 폈다).

이 논쟁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박성인 사무처장이 합류했다. 박처장은 “전세계적으로 자본 과잉 축적의 위기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가 ‘개혁’의 이름으로 거부되는 현실에서 정부 또는 자본과 무엇을 논의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라며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운동의 미래는 ‘자본의 발전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극복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며, 투쟁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의 노동운동 노선을 비판한 김부소장은 정확하게 ‘찍지는’ 않았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의 주류 노선을 ‘모세 조합주의’로 보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모세 조합주의는 자본측과 영원한 반대 입장을 취하며, 매우 전투적인 외양을 띤다. 대중 행동으로 모든 장애물을 공격하려 드는 것이다. 김부소장은 또 전략적 사고 없이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이른바 ‘지그재그 조합주의’나, 단체 교섭 등을 통해 조합원의 직접적 이익과 요구를 관철하는 데 주력하는 ‘실리적 조합주의’ 경향에 대해서도 공격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모세 조합주의 일변도로 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파업 시도를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밀릴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의 발로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타당해 보인다. ‘셉템버 보고서’를 탐독한 민주노총 김영대 부위원장은 “우리와 고민의 지점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일방적 수세 국면에서 과연 참여를 시도해야 하는가, 참여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참여하고 대립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것은 복잡한 퍼즐을 푸는 일과 같다. 결국 노동과 자본 세력 간에 힘의 팽팽한 길항 관계가 만들어져야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노조운동가들이 민주노총을 주축으로 4월18일 진보정당창당추진위원회를 띄운 것도 경제 위기와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노동조합만으로는 ‘힘’을 복원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망을 열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중심 고리가 노동자 중심의 정당 건설이다’(정치 세력화와 진보 정당 건설 토론회에서)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들이 설사 11월에 당 간판을 내걸게 되더라도 그 앞에는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우선 과거 진보를 표방한 정당들이 의석 하나 얻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한 요인, 즉 운동 진영의 심각한 분열 양상이 되풀이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결국 표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 정치에서 대중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저성장·고실업이라는 사회적 조건, 사회 안전망 확충을 바라는 국민의 잠재적 욕구 등이 진보 정당의 활동 공간을 마련해 줄 수는 있다(국민승리21 이상현 조직위원장).

진보 정당 결성이 자본측의 총공세에 맞선 외향적 움직임이라면, 결속과 조직력을 확충하려는 논의들은 내향적 개혁 바람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기업별 노조 체계를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고 정규직 중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같은 미조직 노동자들을 감싸안으려는 논의가 대표적이다. 이런 논의 자체는 10년 전부터 있어 왔지만,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은 자본측의 공세가 격렬해지면서 더 미룰 수 없는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사실상 개별 기업 노조 단위에서 교섭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경제 위기 이후 이른바 ‘양보 교섭’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조합원과 국민 신뢰 얻는 노력도 중요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가 선호하는 대안이지만, 이는 기업별 노조를 산업별 형태로 뭉뚱그렸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방식과 조직 원리를 밑뿌리부터 달리해야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이은숙 연구기획실장).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대기업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현실적 저항 요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한국노총 이정식 정책기획조정국장).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같은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작업 역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조직 혁신 작업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는 노조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신뢰를 얼마나 얻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노조 지도부의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인 조직 운영이나 귀족주의 성향은 그동안 상당수 조합원들의 불만을 샀다. 노조 지도부의 도덕성 확보는 노조 내부 역량을 결집하는 동시에 노조 밖의 일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대안만으로 자본측에 기울어진 저울추를 평평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우선 80년대 이래 가속화하고 있는 ‘생산과 금융의 세계화’라는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산 비용을 떨어뜨리기 위해 자본측은 임금과 노동 기준이 낮은 지대를 경쟁적으로 찾아갔다. 국가 권력 역시 투자자(자본)의 입맛에 맞는 경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임금을 떨어뜨리고 정리 해고 허용 같은 노동 시장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는 이른바 ‘사회적 덤핑’으로 화답한다. 분규 조짐이 일 때마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등을 돌려 경제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며 위협을 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생산의 세계화는 개별 국가 노동운동의 교섭력과 정치적 역할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이주희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노동운동 진영이 초국적 연대에 관심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1∼2년 사이 세계화한 자본에 걸맞는 초국적 노동 연대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일고 있는 것은 이런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오랫동안 직무 통제와 임금 인상에 치중한 경제적 노조주의의 중심지였던 미국 노동총연맹(AFL-CIO) 존 스워니 위원장이 97년 가을 집회에서 세계 노조주의의 필요성을 주창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세계 노동운동을 초죽음 상태로 몰고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앞에서 한국 노동운동 역시 절체 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 상황에서 각국 노조가 내부 투쟁에 진력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자본의 세계화’에 대해 노동계가 ‘노동의 세계화’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영원히 밀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