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JP "정계 개편하자"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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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충청땅 짚고’ 강원까지 대약진… 구 여권 세력 끌어들일 힘·명분 확보
6월27일 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내내 신중한 모습이었다. 초반부터 충청남북도와 강원도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크게 앞서나갔으나 그는 말을 아꼈다. 밤 10시가 지나면서 조간 마감 시간에 쫓긴 기자들이 선거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고 몇 차례나 요청했지만 그는 좀처럼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자민련 5층 총재실에서 측근들과 바둑을 두면서 텔레비전을 지켜보았다. 그는 성화를 부리던 기자들이 지쳐 늘어진 오전 1시30분께 비로소 지하 1층 상황실에 내려와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민자당에서 뛰쳐나와 자민련을 창당한 것은 지난 3월30일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석달 만에 자민련은 초고속 성장을 했다. 신민당과 당을 합쳐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 제3당 위치를 굳혔으며, 이번 6·27 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과 똑같이 광역단체장 자리를 4개나 따냈다. 아성인 충청남북도의 기초단체장 자리는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동안 그는 당 조직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지방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석달 동안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집념을 갖고 매달렸다. 선거 전에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그와 자민련의 미래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돌파해 나갔다. 그는 석달 동안 거의 거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동안 충청도 전지역을 세 바퀴나 돌았다.

그는 특유의 뚝심으로 불리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다.

‘DJ와의 연대’재고할지도

어떻게 보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알찬 수확을 거둔 것은 자민련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도 이번 선거의 핵이라고 할 서울시장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것은 이미 선거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김대중 이사장이 직접 지원 유세를 해야 했으며, 그 때문에 민자당과 원색적인 용어가 오가는 거친 싸움을 벌여 상처를 입었다. 자민련은 민자당과 민주당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에 찰과상조차 입지 않고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게다가 강원도지사라는 부수입도 챙겨 지역당을 벗어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현재 김총재는 풍성한 식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자민련이 내년 총선에서 충청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강원도와 대구·경북 지역, 그리고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도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민자당 의원들이 대거 탈당할 것이라고 한 그의 장담이 맞아 떨어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적어도 민자당내 충청 지역 의원들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다. 자민련이 출범하자 민자당내 충청 지역 일부 의원들의 마음은 당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다. 그들의 탈당은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각제를 선호하는 세력들이 마음놓고 모여들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는 데도 성공했다. 민자당내 민정계, 그리고 제도권 정당 밖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구여권 세력들을 끌어당길 힘과 명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그들을 품에 안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그와 김대중 이사장의 관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와 김이사장은 그동안 반김영삼 진영의 연대라는 큰 목적 아래 무언의 협력을 계속해 왔다. 이번 선거로 두 사람은 1차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의 선전으로 그는 김이사장과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예상 밖의 전과를 올린 그는 김이사장과의 연대를 재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민자당 대표 시절부터 만약 김이사장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해 왔다. 그는 차기 대권에 도전하려는 김이사장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세력의 대표 주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설정해 가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특유의 한 박자 느린 행보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한 발짝 한 발짝 옮겨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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