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맨·현대맨 함께 일 못한다?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8.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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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기업 문화 차이 커 ‘정체성 혼란’ 심각할 듯
‘삼성맨은 지적이고 치밀하며 형식을 중시한다. 반면 현대맨은 감정적이고 단순하며 실속을 중시한다. LG맨은 가장 개방적이고 혁신적이다.’ 3년 전 한국경영학회가 5대 그룹 기업 문화를 조사한 뒤 내린 결론이다. 당시 조사 작업을 주도했던 조영호 교수(아주대·경영학)는 현대와 삼성의 기업 문화가 가장 대조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현대자동차 전무와 삼성자동차 부사장을 지낸 강명한씨의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얼마 전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현대맨은 ‘경영형 관리자’이고 삼성맨은 ‘행정형 관리자’라고 규정했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것이 현대맨들의 특징이라면, 삼성맨들은 최고 경영자가 결정한 사항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평균 수명은 40년 정도이다. 기업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을 기업력이라고 한다면, 기업력은 자금력·기술력·판매력을 골고루 갖출 때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도 어떤 기업은 흥하고, 어떤 기업은 망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바로 기업 문화에서 나온다.

기업 문화는 보통 △기업 총수의 경영 철학 △사업 구조 △기업의 연혁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총수가 어떤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지도력을 발휘하느냐가 기업 조직과 인사·의사 결정 방식을 정한다. 또한 사업 구성이 제조업 중심으로 되어 있을수록 기업 문화가 적극적이고, 역사가 오랜 기업일수록 보수적이고 통합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삼성과 현대의 기업 문화가 대조적인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50년 이상 역사를 갖고 있는 두 회사는 성장 과정과 총수의 경영 방식이 판이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삼성맨이 현대맨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할까. 최근 대기업 간의 ‘빅딜’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상이한 기업 문화를 극복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현재 논의되는 시나리오는, 삼성자동차를 현대자동차가, 현대석유화학을 LG화학이, LG반도체를 삼성전자가 인수하는 것이다. 직장인 처지에서 보자면, 삼성맨이 현대맨이 되고, 현대맨이 LG맨, LG맨이 삼성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수천 명이 회사 배지를 바꾸어 달고 경쟁사였던 회사의 직원으로 변신해야 하는 것이다.

대량 감원이 일상화한 뒤로 ‘평생 직장’ 개념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직장에 대한 충성심도 약해졌고 기업 문화도 흐릿해졌다. 이미 많은 사람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고, 그것이 하등 새로울 것이 없게 되었다. 오히려 제발로 걸어나간 사람일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빨랐다.

그러나 정부의 힘에 떠밀려 억지로 경쟁 회사 배지를 달아야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변화가 아니고, 다니던 직장이 망한 것도 아니다. 강제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다고 해서, 기존 직장에 대한 충성심을 버릴 리 만무하다. 소속은 바뀌었지만, 삼성맨은 삼성맨, 현대맨은 현대맨, LG맨은 LG맨으로 그대로 남을 공산이 크다. 직원의 정체성과 직장이 뒤죽박죽되는 혼란상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빅딜, 신중히 추진해야 성공

순전히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대기업 간의 빅딜은 당분간 상승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제품이 대부분 중복되는 데다 내수마저 뚝 끊겨 실익이 거의 없다. 굳이 이익을 꼽으라면 장기적으로 과잉 생산 문제를 완화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까지 넘겨 주면 삼성자동차를 인수하겠다거나, LG그룹이 외자를 유치해 반도체사업을 계속 끌고 가겠다고 나서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빅딜을 해 보아야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라고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굳이 대기업 간의 업종 교환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내 주력 산업 전체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은 없을까. 빅딜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경제학자들도,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산업 합리화 조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조건 서두를 것이 아니라, 주력 산업에 경쟁력을 불어넣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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