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김상현, 또 ‘큰 일’ 내려나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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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의원, 영수회담·정부조직개편안 합의 막후 주도…민추협 동지 접촉 활발
김종필 총리 인준이 난항을 겪고 있던 지난 2월26일,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가 소속 의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슬쩍 말을 흘렸다. “우리 중진 가운데 탄탄한 대야 창구가 있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국민회의 의원들의 관심은 그 중진이 누구냐에 쏠렸다. ‘이름이 알려지면 협상이 깨질 수 있다’며 박총무가 끝내 밝히지 않은 그 중진은 다름 아닌 김상현 의원.

김의원은 지난 2월27일 성사된 여야 영수회담의 막후 산파였다. 김의원은 한나라당이 총리 인준을 위한 국회 본회의를 최초로 보이콧한 2월25일부터 영수회담이 성사된 2월27일까지 3일간 조 순 총재와 서너 차례 만나고 전화 통화도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의원은 또 김대통령과도 수시로 연락해 영수 회담에서 논의할 내용을 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원이 꽁꽁 얼어붙었던 여야 관계에 해빙 무드를 조성한 사례는 또 있다.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지난 2월16일. 김의원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50분까지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를 비롯한 각 계파 보스와 국민신당 이만섭 총재에게 릴레이 전화를 해 당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예산 담당 부처를 기획예산위원회(청와대 직속)와 예산청(재경부 산하)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끌어냈다. 이원화에 반대하는 김대통령을 만나 정부조직개편안을 통과시킬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며 설득한 사람도 김의원이었다. 이 날은 그가 한보사건 1심 공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날이었다. 그래서 김대통령 주변에서는 ‘후농(김상현 의원) 참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보 사태 연루’는 넘어야 할 벽

대선 이후 거대 야당이 김대통령을 애먹일 때마다 김의원이 해결사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후농식 너른발 정치’가 있었다. 김의원의 98년도 수첩에는 1월3일부터 2월 말까지 아침·점심·저녁 식사를 함께한 정치권 인사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한나라당 의원만 53명이고 자민련 김종필 명예 총재와 박태준 총재, 국민신당 이인제 상임고문과 이만섭 총재, 그리고 이수성 전 총리도 포함되어 있다.

여와 야, 계파를 가리지 않는 후농의 너른발 정치가 김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가 정계 개편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김의원이 ‘민추협 동지’로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한나라당 민주계 의원들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가장 원심력이 강한 계파로 분류되고 있다.

84년 민추협 결성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DJ를 대신해 민추협 공동의장 대행을 맡아 YS를 맞상대했던 그는 요즘 ‘민추협 정신으로 다시 뭉치자’는 기치를 내걸고 민주계 의원들과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김의원은 민추협 결성 14주년을 맞는 오는 5월18일 민추협 동지 간의 유대감을 다질 대규모 행사를 열 생각이다. 한나라당 김명윤 의원과 공동 의장을 맡고 있는 민추협기념사업회 활동도 보강할 계획이다. 여차하면 민추협 출신이 헤쳐 모일 수 있도록 미리미리 밭갈이를 해놓겠다는 속셈이다. 만약 동교동과 상도동의 대연합이 성사된다면 그 원동력은 바로 후농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의원의 한 측근은 한 발짝 더 나아가 후농이 국민회의 대표를 맡게 되면 정계 개편은 훨씬 더 국민회의에 유리한 쪽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미 김의원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대표 경선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김의원이 정계 개편을 주도하려면 ‘한보’라는 장애물을 먼저 뛰어넘어야만 한다. 의원 직을 잃게 되면 그간 쌓은 공이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DJ 불가론’을 내세웠던 김의원이 그간의 침체를 딛고 김대중 후계자로 떠오를 수 있을지, 아니면 한보 사태의 덫에 걸려 나락에 떨어질지, 또 다른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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